언론에 대한 공격이 당연한 듯 보이는 이유
한국의 언론 소비자들은 언론에 불만이 많다. 언론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언론 보도를 허위조작이라고 주장하거나 기자를 ‘기레기’ 운운하는 식으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특이한 일은 전현직 언론인 중에도 그런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언론인들 스스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언론사나 기사, 특정 언론인 등에 대해 함부로 말을 하니 언론 소비자들로서는 언론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당연한 듯 여겨진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도 언론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사회적으로 퍼지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비판 보도가 나오면 일단 ‘가짜뉴스’라고 공격한다.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애용하던 방식이다. 혹시 자기 잘못이 드러나도 언론 보도에 의도가 있다거나, 취재나 보도 과정에서 언론윤리를 위반했다고 비판하고, 이도저도 아니면 과잉보도라고 공격한다. 이성적으로 보면 억지를 부리는 것에 불과한데, 실제로 현실 속에서는 이런 식의 대응이 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보도가 대체로 사실이라도 조금이라도 틀린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집중 부각해서 언론중재도 신청하고 소송도 내면서 강력하게 대응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렇게 하면 애초에 문제를 취재해 보도했던 언론은 위축되고, 다른 언론은 눈치를 살피게 된다. 일반 뉴스 소비자들은 언론중재 등에서 사소한 부분이라도 정정이나 반론을 하라는 결정이 나오면 별 잘못도 없는데 엉터리 보도를 했던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높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보도가 쏟아지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도 많지만, 사회적 쟁점이 될 만한 사안에 대한 다른 언론의 후속 보도를 막아버리는 것은 큰 문제다. 일부 언론이 어떤 쟁점을 발굴해 보도하더라도 다른 언론이 외면하게 만들면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슬그머니 넘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애초의 보도가 잘못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항상 ‘개혁’ 대상으로 꼽히는 언론
이러니 한국에서 언론은 항상 개혁 대상으로 꼽힌다. 언론의 고발 보도 대상이 된 사람은 오히려 보도한 언론이 문제라고 공격하고 나서기 때문이다. 2021년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가 너무 미약하다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언론 신뢰도가 매우 낮다거나,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서라도 잘못된 언론을 고쳐야 한다는 몇몇 여론조사 결과가 정치권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진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심지어 2024년 국회의원 총선 과정에서는 일부 야권 후보들이 언론개혁을 내세우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장했는데, 그중에는 집중적인 검증 보도의 대상이 된 후보도 있었다. 일부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22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법안을 냈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언론 문제에서 자유를 얘기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공적 책임’과 ‘규제’를 강조하는 목소리만 높아졌다. 언론 규제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득권의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언론의 권력 비판을 정치적 공격이라고 보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하며 개혁 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이다.
언론은 분명히 사회적으로 권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실을 말하는 데서 오는 반사적인 영향력이다. 언론은 뭔가를 만들어 내거나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저 지켜보고, 관찰하고, 그 결과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더구나 원칙적으로 어느 한쪽을 편들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평소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르면 당장 내일이라도 바로 비판하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언론: 정파적 언론 생태계, 현실과 해법〉에서 언급한 것처럼 언론은 누구에게나 조심스럽고 불편한 존재이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언론이 뭔가 영향력을 갖고 있고 또 권력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누군가 사실을 숨기려 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을 때이다. 언론이 하는 일은 어딘가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고 거짓말을 검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언론을 두려워할 일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언론윤리 문제조차 정치적 쟁점처럼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시기에도 가짜뉴스와의 전쟁, 징벌적 손해배상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관련 언론 보도 등이 사회 전체를 흔드는 쟁점이 되었다.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채널A〉 기자가 구속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계속 언론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되었다. 역시 가짜뉴스가 문제가 됐고, 대선 과정에서의 몇몇 보도에 대한 수사가 여러 갈래로 진행됐다. 똑같은 공영방송을 놓고 어떤 이는 이전의 보도가 문제였다고 하고, 어떤 이는 지금 보도가 문제라고 한다. 여야 정치권력은 서로가 공영방송을 장악했다고 공격한다. 공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22대 총선 기간 내내 공정성 시비와 정치 심의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은 우리에게 언론은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언론윤리는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차분하게 돌아볼 것을 요구한다. 언론이 무엇인지, 언론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언론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면 언론에 대한 평가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AI·SNS 시대에 언론윤리는 구성원 모두의 책임
이 책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언론의 본질과 언론윤리에 관심을 가진 일반 뉴스 소비자를 위한 것이다. 물론 언론인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또 언론윤리의 기본 원칙이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점검해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의 언론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언론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언론 문제를 공급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일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의 주도권은 사실상 소비자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제1부에는 언론의 기능과 언론윤리의 기본 원칙과 함께 언론 문제에서 차지하는 소비자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담았다.
일반 독자들로서는 소비자가 언론의 수준과 품질을 결정한다는 필자의 주장이 매우 불편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언론 개혁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 언론에 대한 공적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언론 상황은 오로지 공급자가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은 언론 시장은 이미 소비자가 주도권을 행사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수많은 디지털 매체, 나아가 유튜브 등 개인 미디어까지, 지금 우리 앞에는 기존의 전통 언론이 중심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언론 시장이 펼쳐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심층 기사를 써도 시청자와 독자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표피적일 뿐만 아니라 편향적인 기사를 대충 써놓아도 조회 수가 폭발하는 현실은 공급자들에게 뉴스 생산 방식을 바꾸게 만든다. 언론을 향해서 온갖 비난을 퍼붓는 시청자, 독자들이 사실은 언론이 그런 보도나 콘텐츠를 생산하도록 이끌고 있다는 역설적이고도 불편한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소수의 인원으로 확실한 정파적 콘텐츠만 생산해도 매년 수십억 원의 흑자를 내는 몇몇 사례는 언론 시장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제2부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언론윤리 쟁점인 명예훼손 문제에서부터 초상권과 사생활 보호 등 주요한 취재·보도 쟁점을 12개의 장으로 나눠 살펴보았다. 각각의 쟁점을 깊게 들어가면 끝이 없겠지만 일반 독자들이 꼭 알아두면 좋을 정도의 내용만 추렸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 유튜브 시대를 맞아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현실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소비자이면서 한편으로는 생산자가 되기도 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자신이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행위를 통해 어떤 문제에 노출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AI, 유튜브 시대에 언론윤리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이다.
마지막 제3부는 조금은 실용적인 내용을 담았다. 명예훼손과 초상권 문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한 것인데, 이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았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릿해진 상황에서, 자신의 글이나 사진으로 명예훼손, 초상권 침해 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실무적인 지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언론 관련 불만을 처리하는 방법도 간단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런 절차는 언론 활동을 하는 사람도 조금 체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언론인들은 언론사에 직접 연락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을 매우 고마워해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하는 것이 좋다. 그런 불만을 적극적으로 해소해 주는 것이 취재와 보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책의 구성은 이렇게 나누어 놓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어떤 특정한 순서에 따라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읽고 싶은 부분을 찾아보면 그만이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기는 하지만 혹시 대학이나 언론 교육 현장에서 언론윤리에 관한 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장과 절을 나누었고, 분량도 적절히 조정하였다. 주석을 달고 색인 표시를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논쟁적인 부분에서 판례 등의 경향과 생각이 다른 부분은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혀 놓았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자
언론 관련 책을 내는 것은 지금의 출판 시장 상황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시장성과 무관하게 이런 언론윤리 관련 책을 내자고 먼저 손을 내밀어준 한국문화사에 특별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특히 편집자 강인혜 님은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언론윤리에 관한 책을 독자들이 쉽게 펼쳐 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정성을 기울여 주었다. 교양도서 저술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 독자들을 위한 언론윤리를 책으로 정리하는 것을 지원해준 한국연구재단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언론에 대해 진지한 고민 없이 쉽게 말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퍼진 데에는 언론인과 언론 연구자들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어떻게든 언론에 대한 존중과 진지한 논의를 위한 토대를 만들기 위해,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이 그런 노력을 위한 작은 디딤돌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