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는 신라의 정치, 사상 개혁의 산물로 법흥왕 때 탄생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풍수는 언제 무엇을 계기로 발생 또는 도입되어 정착하고 확산한 것인가?
중국에서 발생한 풍수가 신라 말 도선(827~829년)과 그 제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도입되어 널리 보급되고 뿌리를 내렸다거나,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자연 환경에 풍수가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토속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지만 민간에서부터 풍수가 형성되어 받아들여졌으며, 풍수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동아시아 또는 우리나라의 자연관으로 보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인식이라면 역사적 ‘계기’를 묻는 앞의 질문이 생소할 듯하다.
조선의 수도 서울은 역성혁명에 의한 왕조 교체의 정당성이 집약된 공간이다. 어떤 이는 유교 이념으로 만들어진 도시였다고 여기지만 착각이다. 입지 선택부터 풍수가 가장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이 『조선왕조실록』에 너무나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전통 문명에서 왕조 교체의 정당성을 어떤 사상이 뒷받침하려면 임금이 하늘의 명을 받아 세상 또는 국가를 다스린다는 상당히 세련된 논리 구조를 갖춰야 한다. 토속신앙이나 민간에서 시작된 사상이 그럴 수 있을까? 물론 풍수를 연구하거나 믿는 사람들은 조선의 수도 서울에 구현된 풍수에서 ‘하늘’을 보지 못했으니 그런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풍수도시인 서울의 입지, 구조, 상징 풍경, 정원의 특징을 담았던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1편과 2편의 후속 작이다. 필자는 앞의 두 책에서 풍수가 ‘권위 있는 공간 찾기 이론’이며, 서울에서는 ‘임금이 하늘의 명을 받아 세상 또는 국가를 다스린다는 이데올로기를 구현한 사상 또는 이론’임을 체계적으로 보여 드렸다. 하지만 이런 풍수가 언제 왜 발생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조선의 수도 서울에 이르게 되었는지까지 담을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그 과정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책에서 완결성을 갖춰야 한다고 여기는 독자였다면 답답함을 느꼈을 것 같고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내용 중간중간에 풍수의 탄생은 신라 편에서 알려드리겠노라고 썼고, 이제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풍수는 경전을 읽어 봐도, 풍수 전문가로부터 설명을 들어 봐도 어렵고 알쏭달쏭하며 난해하다. 어떤 때는 이렇고 어떤 때는 저렇기도 하다. 믿기도 그렇고 안 믿기도 그런 애매한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이것은 인간이란 존재의 인식을 초월한 신이나 영험한 힘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형성된 모든 종교에 공통적인 것이지, 풍수에만 특별하지 않다. 비종교인이 종교의 기원과 변화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여러 현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경전이나 종교인의 설명을 참조는 하되 완전히 벗어나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