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다양성의 하나-조강훈 예총 회장
강위덕, 그는 누구인가? 나는 그의 예술세계를 보며 호모 아리텍스 논리를 연상했다. 호모 아리텍스는 르네상스 시대의 만능 예술가들처럼 오늘날에도 그런 특별한 예술가들이 종종 출현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을 지칭한다. 강위덕, 그는 종합예술을 하면서도 주종은 그림이다. 음악과 조각, 문학은 미술을 하기 위해 보조 역할을 하는 분야라고 말한다. 더욱이 그가 저술한 SF소설을 보면 최첨단 물리학을 능숙하게 다루고 12차원의 공간, 다양한 세계의 실상을 파헤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작곡 세계는 책-리퍼버릭, 폴란드, 불가리아. 뉴욕 맨해튼 등 여러 나라에서 10차례 교향곡 발표를 한 바 있다
강위덕은 ‘토털 아티스트’이자 ‘표현하는 인간’-장두이 연극인
강위덕 선생은 필자가 뉴욕에서 활동할 때, 천운(天運)으로 특별한 만남을 가졌던 예술 세계의 선배로서 지금도 창작의 열의에 있어 귀감(龜鑑)이 되는 분이다. 늘 겸허하고 한순간도 생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 열정으로 집념의 예술 작업을 계속 이어오는 강 화백님은 진실로 존경하는 ‘토털 아티스트’이자 ‘표현하는 인간’의 표상이다. 화가로서 선생은 1980년대 초반 현대예술의 도시 뉴욕에 정착하여, 유서 깊은 ‘College of Art Student League’에서 크로키, 점묘, 회화, 조각 작업으로 이미 인정받으며 국제적 입지를 이루었고, 국내는 물론 미국과 대만 등지에서 30여 차례의 초대 개인전으로 동양화와 현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큰 의미의 아름다움을 지향하여 광대무변(廣大無邊)의 도전에 앞장서 오셨다. 특히 선생은 회화뿐만 아니라, 평소에 미술 작업과 함께 영적(靈的) 감성(感性)을 나누던 음악 세계에도 몰입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Julliard 음악학교’에서 10여 년간 작곡을 전공해 뉴욕 ‘카네기홀(2017년)’과 LA ‘Zipper Music Hall(2018년)’, 그리고 서울 ‘예술의전당(2019년)’에서 작곡발표회를 열어, 직접 작곡한 수십 편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펼치신 바 있다
경계를 초월한 예술의 세계-강화석 전시평론가
강위덕 화백을 종합예술가로 부르는 것이 화가의 정체성을 위해 보탬이 될지, 반대로 누(累)가 될지 적절히 판단하기는 어렵다. 분명 그는 보통의 작가들처럼 한 영역의 예술가로 규정하기에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 매우 넓고 깊은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이러한 구분에 대해 고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예술가라고 하겠다. 당연히 활동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만으로도 일반적인 범주와 사고의 패러다임을 초월하고 있는 셈이다.
예술가 강위덕은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또한 작곡가로서 다수 교향곡을 포함한 수많은 곡을 지은 음악가인 동시에 시를 쓰고 시집을 펴낸 문학가이기도 하다. 당연히 다양한 영역의 예술 활동을 해온 그의 삶은 남다른 역정(歷程)과 예사롭지 않은 심연을 가진 예술의 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 40년 이국(異國)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작업한 작품들을 국내에 전시하고자 한다. 대략 60년을 넘어서는 화력(畵歷)을 지닌 그의 작품들을 모두 볼 수는 없겠지만, 그의 전 생애를 통한 성장과 변화의 흔적이나 결실을 읽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법하다.
강위덕 화백은 1980년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2019년 고국에서 작곡발표회를 하기 위해 귀국하기까지 40년의 세월 동안 국내에서의 활동 이력이 없으니, 국내 화단에서는 낯선 예술가로 인식될 만하지만, 또한 상당한 기간 국내 화단의 동향과 동떨어진 환경에서 작업을 지속하였으므로 분명 남다른 화풍과 차별적인 감흥을 유발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강위덕 화백은 산수(傘壽)를 훌쩍 넘긴 노장이다. 그동안 회화 작품이든 음악 작품이든 문학의 시 작품이든, 수많은 작품을 통해 대중과 교류하며 영향력을 선사하면서, 형식과 장르에 구애받음이 없이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정신과 사상을 전달하여 예술가로서 인상적인 이미지와 위치를 구축해 왔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