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숙 작가는 소설을 통해 엇갈린 인연과 뒤틀린 현실에서 과거의 묵은 상처와 마주하는 이들의 삶의 갈피를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처럼 과거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그리곤 안개가 드리운 듯한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새로 시작할 가능성을 찾도록 이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지나간 인연들에 대한 기억과 가부장제의 유습에서 자유롭지 않다. 표제작인 「숨은그림찾기」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때 첫 키스를 나눈 ‘재영’을 종종 기억하지만, 악몽 같은 어느 날 이후로 그 인연을 이어가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남편과 직장 동료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와 ‘재영’의 재회.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그에게 대답도 해주지 못한다. 한편 「달빛」에서는 작은엄마와 30년 만에 연락이 닿은 ‘내가’ 어린 시절 삼촌의 죽음 이후 쫓겨나듯 집을 나간 작은엄마의 어두운 기억을 떠올린다. 「열쇠」에서는 평생 바람을 피우면서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의 기억으로 고통 받던 주인공이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우연히 만난 한 여인의 삶을 통해 누군가를 기다리는 삶의 모양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는 사회와 불화하는 우리들의 내면과 현실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끝내 찾을 수 없었던 숨은그림찾기의 나머지 한 조각을 찾아내기 위해 기꺼이 손을 뻗는다.
■작품 세계
가수 조용필이 1982년에 발표한 노래 〈못 찾겠다 꾀꼬리〉에서 우리는, “나는야 오늘도 술래, 나는야 언제나 술래”라는 화자의 자기 인식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최명숙 소설을 읽는 독자도 그의 소설에서 마치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처럼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인물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대체로 지난 시간의 기억에 자유롭지 못하고, 무엇보다 오래전 맺었던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묵은 상처이기도 하고, 상흔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최명숙 소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기억과 관계가 끊임없이 연결된 순환의 고리이기도 하다. 오래전 관계를 맺었으나 인연으로 연결되지 못했던 이들과 조우하거나 혹은 술래처럼 그들을 찾아 헤매는 인물이 많다. 기억은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억이란 한 주체가 자신의 과거를 현재와 관련짓는 정신적 행위이며, 시간 경험이다. 우리는 이 시간 경험 속에서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한다.
최명숙 소설의 인물은 하나같이 마음의 상처가 간단치 않다.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삶은 현재의 삶과 만난다. 중요한 것은 이 만남에서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대체로 타자에 대한 연민과 세계의 모순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로 귀결된다. 갈등이 증폭되어 파멸에 이르는 대신 상처를 껴안고 화해로 끝난다. 작가의 성정이 그러하기 때문인데, 이는 소설을 읽어가면서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중략)
최명숙 소설은 이렇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기억과 관계가 끊임없이 연결된 순환의 고리에 있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고 비슷한 상처를 지닌 인물을 껴안아 마침내 자신의 상흔을 치유하는 회복의 서사로 가득하다.
이는 세상을 대하는 따뜻하고 순정한 작가의 성정을 드러낸 것으로, 모순과 마주하고 그것과의 대결을 통해 세상을 바꿔보려고 사투를 벌이는 여타 서사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어느 쪽이 올바르고 바람직한가를 따지는 것은 따라서 의미 없다. 중요한 것은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따스함이 차가움을 녹이고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 믿음일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