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히타이트에 주목하는가?
구약 성서 속 ‘뜻밖의 제국’, 세계사의 전면에 나서다
히타이트는 고대 오리엔트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겨우 100여 년 전이다. 히타이트는 몰락한 지 불과 몇 세기가 지나자 거의 모든 기록에서 사라져, 그리스인과 로마인조차 하투샤에 살았던 이 제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이렇듯 히타이트는 고대 역사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잊혀진 제국’으로 남았다. 그 결과, 아나톨리아를 포함한 후기 청동기 시대의 역사는 오랫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서양에서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였다. 그전까지 히타이트에 대한 정보는 구약 성서에서 "헷 족속"으로 간략히 언급된 것이 전부였다. 성서에서는 이들이 강대국이 아니라 소수 민족 중 하나로 등장하지만, 몇몇 구절에서 이집트의 파라오와 히타이트 왕이 나란히 언급되며, 히타이트가 당시 주요 강대국 중 하나였음을 암시한다. 오늘날 우리는 고대 오리엔트 문명이 없이는 인류 문화사를 논할 수 없게 되었으며, 서양 문명의 기둥이 된 종교, 법, 철학 등도 고대 오리엔트 세계에서 기원했음을 알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튀르키예(당시 소아시아 또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고고학 발굴은 히타이트의 수도이자 거대한 성채 도시였던 하투샤(현재 보아즈쾨이)의 유적을 세상에 드러냈다.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 언어학자들의 헌신적인 연구 덕분에 구약 성서에 묻혀 있던 히타이트는 3만여 개의 점토판 문서와 수많은 유적지 발굴을 통해 ‘잊혀진 세계사’에서 이제는 중요한 역사적 퍼즐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바빌론을 점령하고 이집트와 우열을 다툰 고대 제국 히타이트.
정치, 경제, 종교, 생활,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찬란하고 신비스러운 이야기
이 책은 도시 국가로 시작한 히타이트의 건국에서부터 주변 강대국들과의 치열한 전쟁, 속국들의 형성과 제국의 확장, 그리고 빛나는 문화와 법 제도를 통해 백성을 통치한 제국의 흥망성쇠까지, 그 장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한 천여 개의 신을 섬기고 소를 중시하고 빵과 맥주와 포도주를 사랑한 히타이트인의 생활과 독특한 문화도 흥미롭게 그려진다. 최근의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정리된 역사 서술과 해석은 3,0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 고대 문명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실질적인 초대왕으로 시리아까지 정복한 하투실리 1세, 즉위 직후부터 적극적인 원정으로 에게해까지 세력을 넓힌 히타이트 제국 중흥의 아버지 투드할리야 1세, 아나톨리아의 패권을 되찾으며 고대 오리엔트의 대국으로 만든 수필룰리우마 1세와 같은 뛰어난 군주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왕위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 다툼, 전염병의 창궐, 물건 가격에서부터 민법과 형법까지 다룬 히타이트 법전, 지주와 소작농 간의 분쟁, 연이은 흉작과 생산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이르기까지 히타이트 제국의 흥망성쇠를 이끌어온 여러 이야기들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외에도 저자는 튀르키예 유적지 발굴 조사에 참여했던 체험을 바탕으로 점토판 해독과 유적 발굴 조사 과정에 얽힌 생생한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3,000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히타이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들을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며, 독자들은 박물관에서 히타이트 유물을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