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가을 숲에 가자꾸나
마침내 충분히 살았다
이윽고 지고 있는 것들 보여주마
물이었으니 물로 돌아가고
흙이었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모르겠어요
딸아, 가을 숲에 가자꾸나
후툭 후투툭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빗소리, 바람소리, 낙엽소리, 벌레소리, 새소리, 짐승의 울음소리
들려주마 마침내 모든 소리
허이 헤이허 오호호호 오 오행
만가輓歌로 화음됨을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가엾은 것 두려워하지 말거라
이것은 숲이 겨울을 준비하고 봄을 맞이하는 즐거운 놀이란다
언제고 아빠도 가을 숲이 될 것이야
그러니 딸아,
그때가 되면 슬퍼할 일이 아니라
오늘 이 놀이를 기억해야 할 것이야
즐거운 놀이를
모르겠어요 자꾸 눈물이 나요 이젠 집에 가고 싶어요
- 「즐거운 놀이」 전문
그리고 ‘모두가 터부시하는 죽음을 귀히 대접하는 자들이 바로 시인’이라고 강조한다. 비록 시집 밖의 시인들은 시답잖아 보이지만, 시집 안의 시인들은 그렇게 귀(鬼)하고 귀(貴)한 존재들이라고 또한 강조한다.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다시 살려낸 그의 문장들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시집은 생생히 보여준다.
모월 모일 날씨 우울, 시베리아를 건너온 북서풍이 골목을 휘돌아 나가고 있음, 이렇게 시작하자
몇 건의 계약이 취소되고 직원 월급을 위해 은행 대출계에 다녀온 이야기는 빼버리자
다음 달이면 회사 문을 닫을 수 있다는 말도 진부하다
오늘도 어제처럼 퇴근했고
몇 개의 골목길을 지나 집에 돌아왔다고
말들이 매립된 헌책방
시간들이 파업 중인 시계방
구두가게의 저, 길 위에서 닳지 못하고 세월 속에서 낡아진 구두들
그리하여 좌판 너머 풍화되고 있는 표정들만 지나면
그래 저 골목길만 지나면
거기 나의 집이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기록하자
생生이 휘발되었다는 불길한 이야기는 쓰지 말자
모월 모일 영구차 한 대가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 「모월 모일」 전문
「모월 모일」은 20년 전에도 지금도 20년 후에도 여전히 모월 모일로 존재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