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헌석 문학평론가의 해설에서 따옴)
#1 담장을 넘는 라일락 꽃향기
위만 보고 오르느라
숨도 찼겠다
누가 봐주지 않는다고
위로만 올라갔니?
단 하루의 화려함으로
목숨 떨구는 안타까움.
-「능소화」 전문
이성자 시인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분입니다. 그 중심에는 꽃이 있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있고, 끝없이 존재하는 자연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때때로 애절하리만큼 슬프기도 하지만, 오히려 슬퍼서 시인은 아름다운 사물에 집중합니다. 6행의 단형시 형식으로 형상화한 「능소화」, 능소화는 지주목(支柱木)을 타고 위로만 올라갑니다. 꽃을 피운 능소화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하여 위로만 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서사와 묘사를 생략하고, 〈하루의 화려함으로/ 목숨 떨구는 안타까움〉이라는 역설로 간결미를 생성합니다. 이성자 시인은 간명한 형상화에 능숙하지만, 섬세한 필치로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데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입니다.
#2 바위 곁에 맴도는 시냇물 동그라미
작은 바위 물풀 사이에
멈춰 선 시냇물
강물 따라 바람 따라
흘러온 긴 여행
-----〈중략〉-----
시냇물 얕은 바위에
맴도는 동그라미.
-「여정」 일부
이성자 시인의 「여정」은 흐르는 시냇물을 통하여 ‘사람살이’를 비유합니다. 상류에서 보이는 시내는 작은 바위나 돌이 놓여 있고, 그 사이사이에 다양한 물풀이 자랍니다. 도랑물이 시내를 이루고, 다시 여러 시내가 모여 강을 이루는 여정이 작품의 중심을 이룹니다. 강변에서 바위를 만나면 바위에 부딛혀 물보라를 흩날리기도 하고, 때로는 〈새벽강을 건너는/ 곤고한 삶의 철썩이는 소리〉도 만들고, 넓은 수평선에 낭만의 배를 띄우기도 하는 것, 즉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작품의 백미(白眉)는 강을 이루기 직전의 시내를 묘사한 부분입니다.
#3 포도밭에 핀 보랏빛 웃음처럼
포도밭에 핀 보랏빛 웃음
농부의 땀방울이 배인
촉촉한 이랑에
어제 뿌린 정담들이
향기로 흩날린다
-「포도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일부
시인이 직접 포도 농사를 지었는지, 관찰자 입장에서 시를 빚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현실의 어려움보다 아름다운 서정을 작품에 반영하기 위해 애씁니다. 〈포도밭에 핀 보랏빛 웃음(열매의 은유)〉을 위하여 농부의 땀방울을 소환합니다. 그 땀방울이 배어들어 이랑이 촉촉하게 젖었다고 상상합니다. 땀방울이 촉촉이 밴 이랑에 농부들이 정담들을 뿌립니다. 이러한 비유적 표현이 시인의 특출한 언어감각과 조화를 이룹니다. 또한 어제 뿌린 정담들이 향기로 흩날린다는 비유 역시 시인만의 개성 넘치는 표현입니다.
#4 가슴에 담은 별 하나처럼
장마가 왔습니다
130㎜ 이상의 큰비가 예고되어 있습니다
날씨가 성질을 세게 부립니다
폭우가 대단합니다
그러나 두려워 말게 해주십시오
-「두려움 없습니다」 일부
이성자 시인은 마음이 약해질 때에 시인은 기도합니다. 〈천둥의 두드림과 번개의 불화살도 두려워 말게 해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합니다. 앞개울의 황토물이 범람하여 집 앞의 마당이 진흙탕이 되어도 두려워 말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동시에 시인은 다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찾아가 도와주실 것을 기도하며 주청(奏請) 드립니다. 이와 같이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는 시인이어서 지치지 않는 용기를 내었을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