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무비Road Movie, 길 위에서 시를 줍다
- 조동례 시집 『빗방울이 마음을 두드리는 저녁』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본적(本籍)을 버리고 무적(無籍)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이 길에서 저 길로 오로지 길 위에서 평생 드난살이 삶을 살고 있는 조동례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빗방울이 마음을 두드리는 저녁』(달아실 刊)을 냈다.
이번 시집이 나오기까지의 여정에 대해 조동례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이렇게 얘기한다.
“사랑을 해도 불안한 이 시대에 산 하나 넘으면서 『어처구니 사랑』(2009)을 만났고, 두 번째 산에서 『달을 가리키던 손가락』(2013)이 칼에 베인 뒤, 절필을 생각하며 『길을 잃고 일박』(2023)했다. 허기를 양심으로 때우며 『빗방울이 마음을 두드리는 저녁』까지 왔으니, 이제 시를 쓰지 않아도 살아지거나 사라질 것이다.”
조동례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길을 잃고 일박』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박명순은 조동례 시인을 일러 “세상에서 가장 먼 만행(萬行)을 꿈꾸는 맹물의 시인”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시편마다 ‘길’의 끝없는 변주이니 사랑으로 탄생했다가 이별과 만남으로 흔들렸다가 다시 철새와 텃새로 등장한다. (중략) 그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먼 만행(萬行)을 꿈꾸는 시인으로 발을 딛는 중이다.”
“누군가는 조동례 시인에게서 ‘백석 시의 가지취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필자는 거기에 하나를 보태 ‘맹물의 시인’이라 부르고 싶다. (중략) 그는 가공되지 않은 힘으로 살며 시를 쓴다. 운명을 받아들이되 나를 지키면서 만나는 새로움이다.”
시인 김규성은 추천사를 통해 이번 네 번째 시집을 이렇게 평한다.
“조동례의 시적 정조는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선구先驅 중, 단연 소월의 계보를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끓어오르는 정한을 초인적 인고, 치밀한 함축과 절제로 다스려 꽃피운 감성미학은 그가 성취한 일련의 금자탑이다. 그동안 시적 대상을 향한 지극한/지독한(?) 절실함은 생사를 담보로 할 만큼 끈질긴 천형이었다. 이번 시집도 그 에너지원인 간절함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다만 종전과 달리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는 혼자만의 깊이에서 서툰 체념을 낯익은 달관으로 상쇄하고 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달의 거리에 낀 어처구니 사랑’의 실체는 무엇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눈동자 속에 갇혀버린 눈먼 사랑을 꺼내면 그 눈은 또 얼마나 아플 것인가.’(「하루살이 사랑」) 그렇게 그는 ‘배롱나무 꽃상여가 너울너울 여름을 건너고 사랑을 해도 불안한 이 시대에 살아지거나, 사라지는’(「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아니 ‘말 이전의 말, 생각 이전의 말’로, ‘달을 가리키던 손가락이 칼에 베인 뒤 절필을 생각’하던 ‘타자적 운명’의 질긴 사슬에서 담담히 벗어나고 있다. 이름 그대로(東禮) 우주의 공간, 그 첫 임지에서 자신에게 예禮를 다하는 견자적 장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편, 이번 네 번째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오민석 교수는 “사건 혹은 진리 절차로서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조동례의 시집은 사랑을 통하여 세계의 진리에 다가가며, 예술적 글쓰기로서의 시 자체를 통하여 진리를 구현한다. 조동례에게 이 시집은 ‘사랑을 해도 불안한 이 시대에// 산 하나 넘으면서/ 어처구니 사랑을 만나’(「시인의 말」) 쓴 것들이다.”
“이 시집 전편에 사건으로서의 사랑이 검은 씨앗들처럼 흩뿌려져 있다. 이 시집은 사랑이라는 씨앗이 어떻게 발아하여 ‘차이의 진리’를 드러나게 하며 그를 통해 어떻게 세계의 진리를 구축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랑을 안 하니까 세상 편하더라
비구니 같은 노 시인의 저 거짓말
상사화 꽃 진 자리 새잎 올리듯
거짓말 뒤에는 참말 있지
사랑을 안 하니까 편하다는 말
뒤집어 생각하면
뒤틀린 마음에 속엣말 같아서
달뜬 힘으로
참말 같은 속엣말을 믿기로 한다
마른 풀잎이 봄눈 녹이듯
다시 사랑을 믿기로 한다
-「다시 사랑을 믿기로 하다」 전문
“사랑을 하지 않으면 사건도 없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세상 편하더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곳은 없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곳에, 진리 절차가 발생하지 않는 곳에, 어떤 주체의 밀도도 변하지 않는 곳에선, 존재의 죽음이 일어난다. 사건이 없는 곳에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것은 마치 사막을 정지된 공간으로 오해하는 것과 같다. 생명이 사라진 공간엔 침묵과 죽음의 바람이 분다. 먼 대기에서 이 죽음과 침묵의 공간에 사랑의 씨앗이 날아오기도 한다. 이곳에서도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을 안 하니까 세상 편하더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죽음 뒤에는 ‘새잎’이 올라오고, ‘뒤틀린 맘’이 사랑의 에너지를 막지 못한다. 편한 자리에 머물겠다는 말은 사랑의 재선언이 가져오는 모든 위험과 불편을 마다하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보라. 죽은 것 같은 ‘마른 풀잎’이 ‘봄눈’을 녹인다. 모든 거짓말의 배후엔 ‘참말’이 있다. 살아 있는 주체에게 ‘다시 사랑을 믿’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존재는 멈추어 있지 않다. 그것은 움직이며 사랑의 동기(動機)들과 마주치고 사건 속으로 휘말리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의 절차를 겪는다. 사건으로서의 사랑은 원래 하나였던 주체로 하여금 둘의 무대를 만나게 하고, 이 최초의 복수성을 통해 세계의 진리를 구축하게 한다. 이 시집은 진리 절차로서의 그런 사랑이 만난 다양한 풍경들의 기록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인 조동례는 일찍이 본적(本籍)을 버리고 무적(無籍)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이 길에서 저 길로 오로지 길 위에서 평생 드난살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저 먼 알래스카를 비롯한 세상의 길이란 길을 찾아 십여 년을 걷고 또 걸으면서 시를 주웠고 그렇게 시집을 네 채 지었다.
그러니까 그의 시집은 일종의 로드 무비(Road Movie)이다. 로드 무비란 장소의 이동을 따라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 또는 그러한 장르를 일컫는 말이 아니던가. 여행, 도주, 순례, 모험 등을 중심 플롯으로 하여 처처 곳곳을 경유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 사건들을 통해 생의 자각, 생의 의미를 터득하게 되는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던가. 그러니 그의 시집은 일종의 로드 무비인 셈이다.
■ 달아실출판사는…
달아실은 달의 계곡(月谷)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달아실출판사”는 인문 예술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종합출판사입니다. 어둠을 비추는 달빛 같은 책을 만들겠습니다. 달빛이 천 개의 강을 비추듯, 책으로 세상을 비추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