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에서 느낀 경외
태평양이라는 드넓은 바다 위에서의 긴 항해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동해를 바라보며 자란 유년 시절부터 수평선 너머를 꿈꿨던 저자도 항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친숙했던 일상을 뒤로하고 한산도함에 올랐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드넓은 바다는 중심과 주변의 구분도, 경계도 없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을 넘어, 배 위에서 거친 파도를 몸으로 느꼈다. 태평양의 광활함, 개념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적도를 건너며 바라본 잔잔한 바다, 지도 위에서만 보았던 날짜변경선을 실제로 넘어가며 항해일지에 같은 날짜를 다시 적어 넣었던 순간…. 직접 바다를 항해하며 경험한 순간들은 담담한 서술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바다 위 사람들과 함께한 특별한 여정
저자가 기록한 항해의 여정은 느긋하고 유쾌하다. 낯선 환경에서 멀미로 고생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함께 항해하는 사람들의 배려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호사를 누렸다고 표현한다. 해군들과 흥겨운 단합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기항지에서 만난 교민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기도 한다. 생애 첫 항해에 나선 저자의 눈에 비친 함대 공동체의 모습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저자는 바다에서 지내는 것이 이미 일상이 된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에서 삶의 지혜를 읽어냈다. 이들의 모습을 배의 앵커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다.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생도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나아갈 미래를 이야기한 부분에는 애정 어린 시선과 희망이 가득 들어차 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너른 바다 위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생각을 비우고 또 새로이 채우는 모습은 읽는 이에게도 평화로운 성찰의 시간을 선사한다.
항해의 기록을 통해 미래를 바라보다
사회학자인 저자의 통찰을 함께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만의 큰 매력이다. 저자는 바다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항해에서 느낀 감상을 충실하게 표현하면서, 사회를 탐구하던 학자의 시선을 더해 깊이를 더했다. 무풍지대인 적도를 항해한 경험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발전의 동력을 잃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한다.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면서 그곳에 닥쳐온 환경문제에 대한 염려를 함께 전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항해를 하며 그린 미래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대한민국이 바다를 개척해 해양국가로 나아가는 미래다.
저자는 태평양에서 보낸 시간을 모험의 시간이었고, 성찰의 시간이었으며, 경계를 넘는 시간이었고, 미래를 보는 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항해하며 좌표를 확인하는 것이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함이듯, 이 책은 여정을 기록한 여행기이자 성찰을 담은 명상록으로서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