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냄새에 스며든 고소한 유혹/ 잘 진열된 빵에는 자꾸 손이 간다//크고 작은 타이틀과 컬러 사진까지/ 샅샅이 훑으며 맛보고 비판한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아아도 가득/ 하루에도 두어 시간 지구촌 누빈다/ 안경 밑 얼굴에 땀띠까지 달고// 종이 쓰레기 수거하는 화요일 아침/ 신문지 한 아름 안고 내려가니/ 저 위층 신사분 인사 말씀,/“아직도 종이신문 보세요?”/ “네, 아주 열심히요, 이게 밥인데요”// 언제나 첫 면에서 끝 면까지/ 맛있는 빵에서, 싫어하는 크로켓까지/ 빠짐없이 먹고 즐기고 비난하는데// 빵지가 없는 토, 일요일에는/ 폰에서 이것저것 찾아 먹는다
-「빵지순례」 전문
시인은 인터넷 시대에 살면서도 종이신문을 읽는다. 잘 편집된 기사나 사진을 마치 잘 구워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빵에 비유하여 〈읽는 행위〉를 〈먹는 행위〉로 표현한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에 눈이 가는 것을 “빵 냄새에 스며든 고소한 유혹”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문에서 국내외 뉴스를 샅샅이 훑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하루에도 두어 시간 지구촌을 누빈다”라고 한다. 신문에는 다양한 분야의 뉴스가 넘쳐서 어떤 것은 에스프레소 맛으로, 어떤 것은 아아가 되기도 한다. 다 읽은 신문뭉치를 버릴 때 시인은 신문 기사는 뉴스라기보다 밥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신문이 오지 않는 주말에는 인스타그램 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 스마트폰으로 세계와 접속하여 “폰에서 이것저것 찾아 먹는다”라고 말한다. 시인은 일용할 양식처럼 매일 신문 읽는 것을 빵지순례에 비유하여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두 마리의 개를 키웁니다// 편견과 선입견이란 두 마리의 개를 데리고/ 오랜 시간 껴안고 동거했습니다// 그 두 친구는 언제나 곁에 찰싹 달라붙어서/ 부정확한 언어들로 근거 없이 나를 몰아갑니다/ 입는 것 먹는 것 잠자는 것까지도 까다롭게 굴었습니다/ 옹졸한 생각의 굴레를 씌워놓고/ 스마트한 세계에 진입을 방해했지요// 아 그런데 요즘 맵시 있는 말로 조곤조곤/ 안내해 주는 글로벌 거미 망에 빠졌습니다/ 아락바락 달려드는 두 친구를 이제는 놓을까 합니다
-「생각」 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두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다. 하나는 선입견(견=犬=개)이고, 다른 하나는 편견이라는 개다. 한자어의 개를 뜻하는 견犬을 재미있는 말장난pun으로 풍자한 발상이 기발하다.
“글로벌 거미 망”이라는 인터넷 덕분에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옹졸한 생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뜻. 이 시는 노년에 들어 새롭게 배우며 더 넓게 보고 바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된 인터넷 문화를 긍정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는 누구나 단조로운 일상을 넘어서려고 한다. 시인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지구를 손가락으로 걷는다”라고 쓰고 있다.
지구본 위를 손가락으로 걷는다// 누군가 산티아고에 간다고 한다/ 여행하는 영혼의 그리움으로/ 성인聖人의 순례길, 한 달을 걷는단다// 자전하는 지구에 붙어사는 나/ 거꾸로 선 아파트에 거꾸로 앉아
사색하고/ …중략… 햇살 한 섬이 쌀 한 섬이라는 은혜로운 땅에서/ 손가락으로 걸으며 여기가 어디쯤인지/ 지구 반대편 산티아고를 찾아보는 나는/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앉은뱅이 영혼으로 살아간다
-「지구를 손가락으로 걷는다」 부분
“햇살 한 섬이 쌀 한 섬이라는 은혜로운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누군가 찾아간 산티아고를” 지구본 위에서 손가락으로 짚어보고 일상성에 갇혀있는 자신과 인간존재의 한계를 되돌아보고 있다.
인디언이 말 달리다 뒤를 바라보고 앉았다네요/ 영혼이 따라오지 못했을까 기다리다 달린대요/ 어릴 적 ‘이야기 주머니’의 영혼도 외출을 하나 봐요// …중략… 아내의 침대 속에 딴 사내 있다고/ 한밤에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그의 영혼은 잠깐씩 어디론가 갔다 오나 봐요// 머리에서 꼬물꼬물 귀에서도 소물소물/ 영혼은 상쾌 모드에서 우울 모드로 넘나들고/ 남의 무릎이나 어깨에도 들락날락하면서/ 파킨슨 씨는 시시때때로 외출을 하나 봐요
-「파킨슨 씨의 외출」 부분
우리의 평균수명이 칠십을 훨씬 웃돌고 있어서인지 요즘 시니어 세대에게 가장 큰 관심의 하나는 치매라는데 시인은 그것을 “영혼의 외출”이라고 쓰고 있다.(-이진흥 문학박사, 시인 발문 발췌)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의 낱말을 해체하여 새로운 의미의 시어를 만들어 낸 오상량 시인, 첫 번째 시집 『빵지순례』에서 개성 있는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