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림 시인의 동시집이 청색종이에서 출간되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고, 황금펜아동문학상에 동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이림 시인의 세 번째 동시집 『엉뚱한 집달팽이』는 시적 상황이 매우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시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그저 단순히 배경으로만 그치지 않고, 곧잘 어떤 대상에 대한 은유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세심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시편들은 관념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정황과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
해설을 쓴 평론가 황수대는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된 언어로 담백하게 표현해 마치 잘 그려진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시의 본질, 즉 여백의 미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밤사이
도둑이 다녀갔다.
어지러운 발자국
몽땅 훔쳐 갔다.
새하얀 숫눈길만
남겨 놓은 채.
- 「도둑눈」 전문
이 시는 눈 내린 어느 겨울날의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3연 6행의 짧은 분량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표현과 선명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제목에서 보듯이 이 시는 밤사이 몰래 내린 눈을 “도둑”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또한, “새-”와 “숫-” 같은 접두사의 사용과 “어지러운 발자국/ 몽땅 훔쳐 갔다.// 새하얀 숫눈길만/ 남겨 놓은 채”와 같은 구조의 뒤바꿈을 통해 눈 내린 겨울날의 아침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직접적인 감정의 표출 없이도 화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무가 꽃받침에
꽃봉오리 솥을 내걸었다.
봄볕은 모락모락
불을 지피고
봄바람은 살랑살랑
부채질하고
어느새 뜸이 든
향긋한 밥.
배고픈 벌과 나비
여기저기서 찾아든다.
- 「무료급식」 전문
시인은 어떤 시적 상황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정서를 표현한다. 이 시는 그 대표적인 예로, 어느 봄날 시인이 목격한 장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무”이다. “나무가 꽃받침에/ 꽃봉오리 솥을 내걸었다.” “배고픈 벌과 나비/ 여기저기서 찾아든다.”에서 보듯이, 나무는 단순히 자연물이 아니다. 배고픈 벌과 나비를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존재이다. 즉, 희생과 나눔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이는 신이림 시가 전반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지는 까닭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게 해 준다.
시는 함축과 리듬, 이미지 같은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같은 소재라도 시인이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수준 및 감동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 때문에 시인은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작품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데, 그러한 노력은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는 신이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그의 시를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 자세로 창작에 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겨우겨우 찾은
네잎클로버
벌레가 잎을
반이나 갉아먹었다.
에이, 속상해.
하다가
아니지,
벌레가 행운을 반이나 남겨 두었네.
생각 하나 살짝 바꾸니
고마워지는 벌레.
- 「반반」 전문
이 시는 행운을 의미하는 네잎클로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어렵게 네잎클로버를 발견하지만, “벌레가 잎을/ 반이나 갉아먹”은 것을 알고는 속상해 한다. 그러다가 “아니지,/ 벌레가 행운을 반이나 남겨 두었네.” 하고 생각을 바꾼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밉게만 느껴졌던 벌레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이처럼 이 시는 화자가 사고의 전환을 통해 깨달은 바를 형상화하고 있는데, 실로 공감되는 바가 크다. 사실 네잎클로버는 그동안 시에서 단골로 등장한 탓에, 소재 면에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그런데도 이 시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인이 지닌 철학적 깊이 때문이다.
누구나 시를 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좋은 시는 발상과 표현이 새롭다. 또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보여 준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신이림의 시는 좋은 시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두루 충족하고 있다. 더욱이 그의 시는 “염소는/ 뒤에서 고삐를 잡아 주면/ 길을 잘도 찾아간다,// 울 엄마는/아직도 모른다,/ 내가 염소라는 걸.”(「언제쯤 알까」)처럼 아이부터 어른까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흔히 시는 언어를 통해 시인의 내면세계와 존재 의미를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라고 말한다. 따라서 시를 읽는 행위는 곧 독자가 그와 같은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는 일상어와 달리 정보 전달을 넘어서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시를 읽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 동네 분수대에는/ 밥 주는 동전이 산다.// 소원 하나씩 품에 안고/ 물속에 잠들었다가// 연말이면 물에서 깨어나/배고픈 사람들을 찾아간다.// 따끈한 밥이 되어/ 따끈한 국이 되어.”(「소원분수대」)는 4부에 수록된 작품으로 신이림이 지향하는 세계가 어떠한지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