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민 시집의 시편들에는 전통 서정의 저류가 면면부절 넓게 농울치며 흐른다. 대상 혹은 사물의 고유성을 담담히 응시하며 주체의 심미적 경험을 이끌어내고 삶을 성찰하게 하는 그의 시작 방법은, 실험미학의 데일 듯한 열정이나 탐미적 경향 혹은 아방가르드의 급진성이나 과격함보다는 시의 근원으로서의 서정의 힘이 자본주의의 악무한에 속박된 궁핍한 시대를 횡단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물론 시인이 서정의 힘에 대한 무한 신뢰를 갖고 있다 해서 그의 시가 곱고 부드러운 서정만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현대시는 그 태생에서부터 모더니티의 미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 도시 문학인 까닭에, 문학과 현실은 항상 대립하는 위치에 서는 것이며, 그런 이유로 시인에게 현실은 언제나 극복해야 할 그 무엇으로 있다. 시인 역시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문학적으로 응전해왔으며, 이번 시집에서도 그는 삶 자체가 짐이 되어버린 당대와 그러한 삶의 강력한 규율로서 작동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전횡에 대해서도 새파랗게 날 선 비판을 던진다.
질곡(桎梏)의 시절 복숭아밭이 많아 붙여진 모모산 언덕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도원역을 내려다본다.
따뜻한 밥그릇을 위해 쇠뿔고개를 넘나드는 마을 사람들이
도원역의 회전문을 통과하여
거대한 철마에 실려 낯선 동네로 등을 돌려 사라진다.
독갑다리로 몰려나온 교복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갈 곳 잃은 발바닥이 머뭇거리다가도
무릉도원을 지키던 햇발들이 달꼬리섬 아래로 해녀처럼 잠수하면
종일 도원역 부근에서 노닐던 학생들이 야생마처럼 빠져나간다.
-「도원역(桃源驛) 부근」 부분
이 시편의 핵심 시구는 ‘질곡의 시절’과 ‘거대한 철마’ 그리고 ‘회전문’이다. 시의 화자는 “질곡의 시절”을 살아낸 도원역 풍경을 내려다본다. 아니, 시인은 가장 추상화된 공간인 철도역에 붙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도원’이라는 이름을 들여다본다. 꽃과 무쇠, 복숭아꽃과 철마, 자연적 공간인 도원(桃園)과 인공적 공간인 철도역(鐵道驛)의 이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조합은, ‘괴물’처럼 매우 낯선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이상한 조합의 결과 ‘도원’은 그 화사한 아름다움의 아우라를 상실하고 그저 “따뜻한 밥그릇을 위해” 끊임없이 회전문을 들고 나는 근대적 삶의 공간으로 변질된다.
복숭아밭이 많아서 붙여진 ‘도원(桃園)’은 자연과 하나인 삶이 그대로 이름이 된 장소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화사하고 아름다운 도원에 막무가내 쳐들어와 울타리를 치고 이름을 빼앗아 덮어쓰고 있는 철도역 ‘도원역(桃源驛)’. 그 역사(驛舍)의 “회전문”은 하나의 축을 중심에 두고 빙빙 돌며 사람들을 삼키고 뱉어낸다. 이제 철도역이 군림하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쫓기듯 낯선 동네로 밀려 나갔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보금자리로 되돌아온다.
좁은 골목길 인적이 드문
붉은 벽돌 이층집 해당화 여인숙
갯바람이 불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유년 시절 숭의 청과물시장 건너편
도원동 전도관 언덕길 개조한 적산(敵産)가옥에
다섯 가족이 방 한 칸씩 차지하고 함께 살던
씩씩한 계집아이 차돌이가 생각난다.
한 번쯤 어디선가 만나질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단 한 번도 스친 적 없는 인연 아닌 인연
붉은색으로 단장한 해당화 여인숙에서는
방방 마다 켜켜이 쌓인 인연의 분 냄새가
진동할 것 같다.
썩을 대로 썩으면 오히려 향기 나는 모과처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추억에서도
향기가 나는 듯하다.
-「해당화 여인숙」 전문
시집으로 묶인 시작품들을 읽고 해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혹자는 시편들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통해 전편을 가로지르는 시적 인식을, 혹자는 언어미학의 측면을, 혹자는 새로운 실험정신에 방점을 두어 읽을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최성민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대상 세계와 맞대면하면서 어떻게 심미적 경험을 하게 되는가 또 어떤 심미적 파장을 불러오는가 라는 시적 사유의 측면에 방점을 두어 읽어보려 한다. 필자가 그의 시편들을 읽는 핵심 키워드는 ‘장소’ 혹은 ‘장소성’이다.
이 시집에서 우리는 도처에서 시간과 공간을 경험한다. 시의 행간에 놓인 기억이라든가, 상처, 흔적, 유적, 유물 등에서 스쳐간 시간들을 경험하며, 하다못해 길가에 피어 있는 한 송이 꽃에서도 꽃 주위에 흩어져 있는 자갈 몇 개에서도 그 사물이 놓여 있는 장소와 시간을 경험한다. 그것들은 독자의 의식 속에 들어오는 즉시 가열한 내적 반성을 일으키고 존재의 근원으로 의식을 끌어당긴다. 설령 유년기이거나 과거의 어느 한 지점을 통과할지라도 결국은 우리의 지각 형식으로는 가닿기 어려운 궁극의 본향이거나 어떤 초월적이고 시원적인 지점으로 가닿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