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천축국전』에 대한 철학적 시선
『왕오천축국전』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은 주로 원본에 대한 고증과 주석 및 번역작업, 나아가 혜초의 전기와 그가 여행한 나라들, 특히 8세기의 인도와 중아아시아에 관련된 기행에 관한 연구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혜초의 여행기를 독해(讀解)함에 있어서 문헌학과 서지학의 차원을 넘어선다. 저자는 “혜초를 읽으려면 텍스트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것은 텍스트에만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보통 사람이 결코 따라할 수 없는 수고와 고통이 수반된 구법(求法)여행은 텍스트 밖에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 밖에서 인간의 한계와 시·공의 한계를 초월한 피안여행을 읽지 못한다면, 결코 혜초를 읽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이 책은 기존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다소 낯선 영역, 즉 철학적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고자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혜초의 깨달음을 향한 구법여행에 동반된 철학적 사유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혜초에게서 온갖 고행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경계를 허물면서 쟁취하는 해탈과 자유가 개시되기에, 저자는 이 책의 제목에 ‘철학’이란 용어를 덧붙인 것이다. 『왕오천축국전』에는 혜초의 인생과 철학, 역사와 지리, 문화와 문학 등도 포괄하고 있다. 그가 감행했던 순례여행은 깨달음이 주목적이었기에 철학(사유와 인식과 존재론)과 결부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주장이다.
경계를 넘는 것은 철학적 용어로 초월이며, 혜초는 이 초월을 여행을 통해 몸소 펼쳐 보인 것이다. 따라서 혜초의 여행은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허물면서 해탈의 자유와 기쁨을 구체적으로 펼쳐 보여준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기도 한 것이다. 이 해탈과 자유야말로 모든 고등종교의 본질일 뿐만 아니라, 지혜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혜초가 이룩한 해탈은 그 어떤 정적인 것에서가 아니라, 온몸이 투입된 구법여행 내지 피안여행으로 쟁취된 것이다. 혜초의 여행은 단순한 답사여행이나, 의례적인 순례여행이 아니라, 차안의 세계와 ‘신화적 작별’을 하고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목숨을 건 피안여행, 즉 철학적 초월을 위한 여행이었다. 혜초는 수평선 저쪽까지, 가시적 세계의 피안에서 시간과 공간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깨달음의 여행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는 두발로 걸어서 국경의 경계도 허물고, 배고픔과 위험, 야수와 도적떼의 위협, 더위와 파미르고원의 추위, 타클라마칸 사막의 가혹함 등등 온갖 장애를 비웃으며 깨달음의 여행을 감행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혜초의 온 마음과 목숨을 건 순례여행 내지 구법여행! 그것은 이 책의 저자의 일생을 바친 철학에로의 삶의 여정과 유사성이 있다는 점이다.
서양철학을 통해 『왕오천축국전』을 상호문화적으로 해석하다.
저자는 자신이 전공한 서양의 하이데거 철학을 통해서 혜초의 기행문을 철학적 지평 위에서 더욱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혜초의 구법여행과 기행문을 하이데거의 ‘현사실성의 해석학’과 ‘존재사유’에 입각하여 재조명해 보았다. 동양에서의 깨달음은 그것에 도달한 사람의 존재에 심층적 변화가 일어남을 전제한다. 여기서는 혜초의 한계를 초월한 경험과 하이데거의 존재경험의 친연성을 밝힌다. 이런 저자의 상호문화적 비교철학의 시도는 독보적이고 창발적이다. 따라서 이 책은 서양철학의 도구를 통해 혜초의 기행문에 담겨있는 철학의 다원적 보편성을 재발견한 독창적인 연구성과물이다. 앞으로 한국정신 문화의 위대한 전통과 유산이 어떻게 세계인들에게 전달되어 상호문화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하나의 소중한 모범적 사례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