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골 마을 유년을 풀어놓는 〈첫사랑동화〉, 산골 소년 첫사랑 분투기
깊깊 지리산 고랑고랑에 마을이 있었어요. 사람이 산에 계곡에 기대어 삶에 삶을 이어 내려오고 있었어요. 국립공원으로 ‘보전’을 이야기하면서 과연 국립공원 안에서 사람과 산, 계곡이 어울려 잘 살 수 있을까, 모두 걱정스러워했답니다. 국립공원이 된 산 사람들은, 슬기롭게 보전과 삶의 균형을 찾아보았어요. 《산골 소년 첫사랑 분투기》는 그 국립공원 안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 특히 행정구역상 남원시에 속하는 부운, 덕동마을 이야기를 모두가 함께 읽는 동화로 풀어낸 책이에요.
〈제주4ㆍ3평화문학상〉 수상작가 이성아 작가와 오치근 그림책작가가 피워낸 숲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겨워요. 도시화와 거리가 먼 숲그늘 깃들 사람들이 오래 간직해온 잔잔한 삶의 모습이 고스란해요. 호랑이를 호랑이라 부르지 못하고 그저 ‘눈 큰 놈’이라 표현하며 조심스럽게 살아온 이들이 경건한 삶이, 초등학교 어린 친구들의 시선에서 낮게 깊게 ‘산골’ 이야기로 피어요.
말괄량이 봉숙이 네는 대대로 목기를 만드는 일을 가업으로 해왔어요. 그와 아버지가 나누는 이야기를 옮겨요. 이성아 작가가 특히 주목하는 대목이기도 하고, 지리산 마을 사람들이 견지해온 삶의 태도이기도 해요.
“나도 할아버지, 아부지로부터 배운 거란다. 비록 베어내고 쓰러진 나무지만 그것에도 영이 깃들어 있다고 하셨제. 그래서 부정한 마음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단다. 별 것 아닌 그릇일 뿐이다, 요렇게 하찮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셨제.”
봉숙이와 판수는 또래 친구로 마을 아래 작은 초등학교에 다니며 지내는 서로 ‘내외’하는 한편으로 단짝인 친구 사이랍니다. 봉숙이가 ‘똥통에 빠진 사건’이 소문으로 퍼지고 그 진원지로 판수가 봉숙에게 지목되면서 서로 관계에 긴장이 흐르기도 해요.
깊깊은 산과 계곡은 이 또래 친구들에게 멋드러진 놀이터이며 배움터죠. 난로에서 타고난 재를 교실 나무바닥 사이로 버리다가 작은 화재가 난 사연, 새알을 빼먹고 그 자리에 나무로 깎은 가짜 새알을 넣어 구렁이를 잡은 이야기며, 뱀을 팔고 라면을 사서 계곡에서 몰래 끓여 먹는 맛스런 이야기하며 지금은 기억에 날락말락 누에 치는 이야기에 얽힌 빨간 애나멜 구두 이야기, 담배밭의 타는 목마름과 삼을 수확하고 찌는 고역의 현장이 고스란해요. 그 일과 일 사이에 산골 아이들은 계곡 낚시며 물고기 꼬치, 전깃불 밝히는 날의 풍경과 텔레비전 켜지는 에피소드가 그득하답니다.
산골마을에 죽음을 바라보는 상여 나가는 풍경이며 곶감 말리는, 토끼몰이하는 풍경이 사는 일과 죽어가는 일 사이를 꼼꼼 채우고 있어요. 봉숙이네가 떠나지 않게 도우려 뱀잡이를 하다 판수는 간첩으로 오인돼 지서에 갇히며 남과 북으로 싸우며 마을 사람들이 이편도 저편도 아니며 이편이기도 저편이기도 했던 뼈아픈 역사가 마을 사람들 기억으로 소환되기도 해요.
봉속이 네는 결국 국립공원 지정 이후 벌채가 금지되면서 목기 일을 그만두고 마을을 떠나게 되고 겨울 지나 봄 소식이 피어나는 무렵, 이사 가는 봉숙을 친구 판수가 쫓아가면서 동화는 마무리되어요.
주인공 소년소녀 봉숙이는, 판수는 50여 년 지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우리 마음 아련하게 한켠을 차지하고 고향을 그리는 사람들 안으로 안으로 땅울림 울리고 있겠죠?
첫사랑, 하고 떠올리면 가슴설레는 기억을 가진 모두를 이 이야기로 초대해요. 사랑 밖에서 우리들의 분투는 여전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