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숙의 이번 시집에서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오래 고수련해 온 남편을 향하는 그녀의 지극하고 간절한 정념이다. 수년에 걸쳐 손톱에 피멍울 들며 한 땀 한 땀 짜 올린 생애의 시편은, 과연 낱낱이 그를 위한 사랑의 화인(火印)으로 그리움의 통점으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수록된 시들의 적잖은 부분이 시인의 순애보이며 사부곡(思夫曲)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몇 년째 병상에 몸져누운 남편은 다양한 모습을 띠며, 시편 곳곳에서 곡두처럼 나타난다. 그는 때로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걷는 ‘소금쟁이’(「굴타리먹다」)로, 때로 “뙤약볕 하늘” 아래 알 수 없는 “잠언”을 골똘히 “필사”하는 ‘대벌레’(「대벌레의 잠언」)로 몸을 받는다. 지상의 신산을 “묵묵히 견뎌”내고 “선한 눈빛을 머금은 채/말없이 기다”려 온, 한평생 ‘뚱딴지’(「뚱딴지」)였던 그가 이제 “청수박 굴타리먹듯/한 생애 굴타리먹은” 채, “인공호흡기와 석숀에 숨결을”(「굴타리먹다」) 오롯이 의지하고 있다. 이때 “대벌레 한 마리”가 허공에 “필사”하는 “눈부시고 고요한 집중”의 현장을 목격하는 그녀의 자세는 예사롭지 않다. ‘대벌레’가 서술하는 “뜨거운 잠언”을 “점자(點字)”(「대벌레의 잠언」)처럼 읽어내려 고투하는 그녀의 실루엣은, 그와 얽힌 차마 형언하기 어려운 추억과 더불어, 병상의 그에 대한 쓸쓸한 연민과 처연한 믿음을 아프게 환기한다. 그것은 그녀가 “맥주잔 속에서 떠오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부처”를 경험하는 광경과 닮아 있다. 사생의 벼랑끝에서 “조주위악(助酒僞惡)”(「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부처」)의 유머를 놓지 않는 여유는 뜻밖에, 이 작품의 에피소드를 더욱 예리하고 절박한 지점까지 유인한다.
시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모티프는 향수다. 그것은 시인의 고향인 민통선 안마을, 장단 자주포의 ‘참게잡이 연작’에 집중적으로 투영된다. 가슴 따뜻한 미각적 심상과 육친의 원시적 그리움. 그녀가 영주 무섬마을과 괴산 은티마을, 프랑스의 당통해변 등 국내외 여러 지역을 배회하는 모습도, 의식 이전일지언정 미상불 향수를 우회하는 한 형식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보행이 자기 응시, 또는 자기 탐색quest의 외로운 여정과 겹쳐지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일지 모른다.
월인천강(月印千江) 월인천강(月印千江)/치자향 달빛 내음/가을꽃 줍듯 줍자고/하냥 마음은 붐비는데//다따가/원고지 행간 속에 위리안치되다
- 위리안치(「圍籬安置」),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