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소통으로 예술의 중심국이 되다
독일은 토론 위주의 교육 시스템을 기반으로 고유의 예술 작업을 이어왔다. 끊임없이 사색하고 소통하는 독일의 교육 배경은 훗날 그들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통독 이후 변화도 간과할 수 없다. 통일 이후 수도로 재탄생한 베를린은 세계 각국 미술가들이 모이는 중심지가 되었다. 베를린에서는 저렴한 주거비용과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 인프라를 내세워 세계의 미술가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이들의 창작 기반을 다졌다. 그 덕분에 베를린은 각국의 기획자, 컬렉터, 대가들이 모이는 플랫폼이 됐고 이후 독일 미술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독일은 과거 나치 시대 예술 억압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성찰함과 동시에 표현주의, 바우하우스, 신표현주의 같은 독일 특유의 미술사조들을 사회적 맥락에서 끊임없이 복기하며 재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색의 미술관’이라 할 만하다.
회화부터 예술 프로젝트까지,
숨겨진 독일 미술의 보물을 공개하다
이 책은 회화, 조각, 예술 프로젝트 등 독일 미술이라는 아름다운 신세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을 다룬다. 또한 독일 미술과 더불어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주변 국가의 미술작품까지 엿볼 수 있다.
총 4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관 ‘피어오르는 염원’은 중세 로마네스크에서부터 신고전주의에 이르는 독일 미술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신성로마제국의 원대한 야망, 종교적 낙원에 대한 동경, 진리 탐구에 대한 열정, 독일 민족의 정체성 확립을 향한 의지, 독일적 덕목을 세우려는 열망 등 현대 독일의 기초를 세운 초기 걸작들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관 ‘영혼을 깨우는 정경’은 독일 예술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낭만주의 회화의 특별관이다. 동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우주와의 교감을 표현한 필리프 오토 룽에, 은둔의 고독과 겸손한 삶의 평화를 찬미한 요한 프리드리히 오버베크, 수직적 고양감과 수평적 무한감으로 가득한 풍경화를 그린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인간의 뒷모습에서 삶의 진실을 포착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케르스팅 등 독일 낭만주의의 주요작을 감상할 수 있다.
3관 ‘일상의 틈새’는 빈 체제에서 유행했던 비더마이어부터 18세기 중반 사실주의를 거쳐 인상주의에 이르는 독일 미술을 소개했다. 소박한 일상과 엄연한 현실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어떻게 독일 미술이 진실로 나가는 힘을 확보하게 되었는지 체험할 수 있다.
4관 ‘혁명을 그리다’는 19세기 말 독일을 풍미했던 유겐트슈틸과 분리파, 20세기 초의 표현주의, 그리고 전후 현대 미술을 소개했다. 전통과 결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뿐만 아니라,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독일 화가들의 내상(內傷)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과정을 볼 수 있다.
문학과 역사로 직조한 천 년의 독일 미술사
“문학은 그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문학적 상상력은 침묵하는 그림에 입을 달아 줍니다. 상상력의 보고인 문학은 그림의 소재나 주제를 제공해 왔습니다. 문학의 원형인 그리스 신화와 성서를 포함해 시, 소설, 희곡 등은 고대 및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에게 마르지 않는 창작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림이 어떤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든 예술은 시대의 산물이자 역사의 오르가논(organon)입니다. 프리드리히의 참나무는 나폴레옹 치하 게르만족의 영혼을, 보이스의 참나무는 나치의 과오를 청산한 독일의 미래로 해석됩니다. 같은 참나무도 시대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하죠. 그림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역사 공부가 필요합니다.”(본문 중에서)
이 책은 독일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주제와 해석의 실마리가 되어주는 문학작품과 역사적 배경을 함께 소개했다. 저자는 독자와 동행하며 전시된 작품들을 쉽고 재밌게 설명해주는 친절한 도슨트를 자처한다. 명작은 재승인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사람들의 눈에 익숙하지 않은, 그러나 훌륭한 작품을 엄선했다. 저자와 함께 사색의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아름다운 사유가 가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