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법학자 채형복 교수의 자성록
쉰이 나이, 나를 탐구하다
“『논어』 「위정」 편에서 공자가 말한다.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 나이 쉰에는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공자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세속의 나이 쉰에서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에 대해 궁금해졌다.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채형복’이란 개인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한마디로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싶었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는 저자는 ‘법학자-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학문을 대표하는 법학과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시(詩)는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법학자라고 해서 시를 쓰지 못하리라는 법이 없고, 시인이라고 해서 법학자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럴지라도 법학자가 고도의 감수성을 갖춘 시인이 되어 꾸준히 시를 쓰는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의 본업은 로스쿨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수이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저자는 국내에서 유럽연합(EU)법과 국제인권법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이다. 단독과 공저로 수십 권의 학술저서와 백수십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으니 학문에 대한 그의 열정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관심은 전공 분야의 연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성 중심’의 법학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보완, 극복할 목적으로 ‘감성 중심’의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법과 문학’, ‘인권(법)과 유학’ 등 서로 섞이기 어려운 학문의 결합을 시도한다. 그가 법학과 인접학문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문은 전통과 독자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가치에만 매몰되어 인접학문의 연구 성과를 도외시하고 다학문적 만남을 기피하고 외면해서는 아니 된다고 믿는 까닭이다. 학문이든 사람이든 서로 부단히 만나 교류하고 결합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시사점을 얻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학자로서 그는 전통사상을 본받아 현대사회에 맞게 새롭게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다발골수종이란 혈액암으로 투병 중에 있다. 아프기 몇 해 전 자신의 인생 오십 년을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글을 써서 모아두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또다시 내일, 다음에’ 미루기보다는 평소 ‘지금 여기’에 살고 죽는다는 삶의 가치관에 따라 그간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나는 매일 속세로 출가한다』는 자신의 내면을 철학적·사변적으로 탐구한 자성록(自省錄)이다. 흔히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여 정치나 비즈니스에 활용할 목적으로 쓴 회고록이나 자서전과는 전적으로 다른 유형의 글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규정짓는 40개의 주제를 정한 후 인위적으로 무엇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진솔하고 담담한 필치로 삶을 대하는 가치관을 그리고 있다.
“나는 어떤 지식인인가? 어떤 지식인이 되려 하는가?
스스로 묻고 답한다면, 나는 자성(自省)의 지식인 혹은 성찰(省察)의 지식인이다. 어릴 적부터 내가 추구한 지식 혹은 철학적 사유의 핵심은 나-자아(自我) 또는 나의 내면 탐구였다. 내가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주체적 개인이 누리는 자유를 역설하는 것도 ‘나’에 대한 철학적 고민의 결과이다.”
(「제3화 길가의 들꽃에게도 배우라」 중에서)
저자는 ‘나-자아’에 대한 성찰과 탐구를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나’라는 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체로 바로 서지 않고는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와 권리를 향유할 수 없다.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위험하지 않으면 학자가 아니다”라는 지식인상을 정립한다. 천 길 벼랑과 같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한 걸음 더 내딛지 않고는 학자는 진보할 수 없다. 지식인-학자로서 저자는 매 순간 살고 죽으면서 나날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명철한 깨달음을 현실에서 실천하려 한다.
“나는 어디에, 또 무엇에 목숨을 걸 것인가.”
이 책의 마지막 글에서 저자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러고는 “죽음은 삶처럼 위대하다”는 월트 휘트먼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바람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매 순간 살고 죽은 나는 매 순간 ‘새로운 나’로 태어난다.
지금-여기서 과거의 죽은 나를, 미래에 존재하지도 않는 나를 찾지 말라.”
어느 법학자-시인의 인생 50년을 자성록으로 묶어낸 이 글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저자가 쓴 한 줄, 한 쪽의 글에라도 공감하게 된다면 그 모든 이들의 삶이 나날이 새롭고 행복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