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랑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을까,
저의 생은 좀 외로웠던 것 같거든요“
“이력서 공란을 채우듯 소개하고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경청하고 공감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긴 시간을 들여 서로를 알아가는 것.” 작가 고수리가 생각하는 대화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오랫동안 글쓰기 수업과 독서 모임을 이끌어 온 작가는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만나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는 이들이 이승과 저승 사이, 중천이라는 가장 극적인 공간에서 마지막으로 인간답게 대접받고 진솔한 인생 대화를 나눠보길 원했던 작가는 ‘까멜리아 싸롱’이라는 신비롭고도 매혹적인 장소로 이들을 초대한다.
인생에서 소중한 두 사람을 잃고 자신은 행복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청소 노동자 박복희, 행복은 돈으로 사는 거라고 고아로 버림받으며 살아온 자신에게 행복은 사치라고 믿는 백화점 직원 설진아, 전쟁고아로 살다 처음 행복을 가져다준 아내를 잃은 뒤로 행복한 순간이 가장 두렵다는 경비원 구창수, 앞뒤가 다른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구청장 후보 아들 안지호. 이들은 싸롱에 머무는 49일 동안 까멜리아 싸롱의 직원들과 함께 웰컴 티타임, 심야 기담회, 성탄전야 음감회, 제야 송년회, 흑야 낭독회, 고요 조찬회, 설야 차담회, 월야 만찬회에 참여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용기를 내 자신을 털어놓고 서로를 알아간다. 사람과 사람은 대화를 나눠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 작가가 완성해 낸 가슴 뭉클한 이야기는 소소한 행복과 삶의 의지를 찾고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길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대책 없이 다정하게 폭닥,
막막한 삶을 안아주는 소설
“세상에 예쁜 것. 모두 너에게 웃어주잖니.” 까멜리아 싸롱에는 싸롱을 지키는 우아하고 당당한 마담 여순자가 있다. 여순자는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경성 종로에서 운영했던 ‘까멜리아 싸롱’을 동백섬에서 재현했다. 죽어야 할 때를 모르고 죽어버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방황하는 영들을 보듬고 구하고 싶어서 자신처럼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망자들을 직원으로 모았다. 포근한 이불과 맛있는 음식, 따뜻한 벽난로와 아름다운 음악이 있는 아늑한 공간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동안 망자들이 다시 생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길 바랐다.
이곳의 직원들은 모두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를 구한 이들이다. 이곳을 찾은 망자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그들의 인생이 기록된 책을 찾아 읽어주며 빈 페이지를 채우도록 돕는 사람들. 차갑고 지적인 매력을 풍기는 지원우, 햇살처럼 밝고 친절한 유이수, 험상궂은 인상과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마두열, 신비한 검은 고양이 바리까지.
겨울을 이기고 핀 동백처럼 무수한 사연을 딛고 환히 피어난 이들이 망자들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가는 동안 망자들은 닫아버린 마음의 문을 열고 지금껏 꺼내본 적 없던 아픔, 내어본 적 없던 친절, 느껴본 적 없던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간다. 다른 이의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는 이들은 손을 내밀어 서로의 삶을 가만히 안아준다.
“나는! 너를 살릴 거야!”
어떻게든 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
툭 꺾이는 것만 같은 절망의 순간, 구원처럼 자신을 되살려줄 목소리가 들린다면 어떨까? 『까멜리아 싸롱』의 매력은 바로 ‘어떻게든 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작고 약하다고 해서 어느 한 사람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마음이 소설 속에 내내 감돈다. 내 감정과 생각은 지운 채로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권위를 떠받들기를 요구받는 사람들, 부조리를 참고 모욕을 견뎌내길 강요받는 사람들, 점점 지워가다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의 존재마저 지워버리고 마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그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거창한 일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마담 여순자와 사서 지원우의 말을 빌려 우리에게 그 사실을 들려준다. 다정한 인사와 따뜻한 말 한마디, 같이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지어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이 그저 함께 일상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사소한 일들만으로도 상처받은 이들, 상실과 절망을 겪은 이들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음을 기억한다면, 소설을 읽고 나서 좀 더 친절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