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의 섹스도 그 자체로 이미 고급 과정이지만
게이의 사랑이라는 전문 기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퓰리처상 《레스》의 주인공이 ‘더 사랑스러운 게이’로 돌아왔다
“보호자 이름도 적으시고요. (…) 두 분이 어떤 관계인지 적으세요.” 채혈사가 말했다. 환자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 “어려운 질문이네요.” 환자가 말했다. 세상을 오해하며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마침내 이렇게 적었다. 불확실. _16면
‘비주류 중년 게이 작가’ 아서 레스는 전 연인이자 퓰리처상 수상 시인 로버트의 장례식을 치른 뒤, 현재 연인 프레디와 함께 사는 집인 ‘오두막’(원래는 로버트의 집인데 헤어진 후에도 ‘그냥’ 살고 있었다)에서 쫓겨나게 될 위기에 처한다. 10년 치 밀린 월세를 내지 않으면 집도, 프레디와의 ‘불확실’한 관계도 지켜내지 못한다!
레스는 다양한 종류의 일을 의뢰받아 미국 전역을 돌며 필요한 액수의 돈을 벌고자 애쓴다. 문학상 심사위원(하필 심사위원장이 오랜 숙적인 다른 중년의 게이 작가다), 유명 작가 H. H. H. 맨던과의 인터뷰(예전 인터뷰 때의 기억이 좋지 않은데,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밴을 타고 사막을 건너가 그의 딸을 만나야 하다니!), 단편소설 연극 상연(재단 지원금으로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지만, 머나먼 남부로 순회공연을 떠나야 한다), 작가와의 만남 행사(역시 머나먼 남부의 교회(?!)로 가서 강연을 해야 한다) 등등. 그러는 동안 프레디는 머나먼 북동부 메인주에서 사랑과 기억을 반추하며 그를 기다리고 있다.
여행 도중에 레스는 어릴 때 집을 떠난 친아버지와 재회하고, 첫사랑, 로버트와의 두 번째 사랑, 마지막(?) 연인 프레디와의 사랑, 아니 게이의 사랑 자체를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 또한 비주류 작가로서의 삶, 미국 사회에 완전히 어울리지 못하는 중년 게이 남성으로서의 경험, 반면 백인 남성으로서 타 인종에 비해 누리는 특권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본질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겪는다.
“캘리포니아인인 당신은 이런 일의 일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우리에게 델라웨어주 출신이라고 했죠.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도 노예를 두었던 주 말이에요. (…) 당신도 이 일의 일부예요, 친구. (…) 실제 세상을 조금이라도 만져봤나요? 자, 와서 만져봐요. 하지만 손가락을 조심하세요, 아서 레스. 면화는 날카롭거든요.” _252면
“부드러움과 재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산문으로
가장 심오하고 신비로운 주제인 사랑을 탐구한다.” _케이티 키타무라(작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사랑이란 10년마다 기념하는 게 아니라는 거야. (…) 세상의 문제는 우리가 서로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거야. 우리를 움직이는 건 친절함과 인간적인 영혼이거든. 우리에겐 서로가 있어. 우리에게 있는 건 그게 전부야. 그걸 기념해야 해. 기억하게. (…)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매일 사랑해야 해. 매일 그들을 선택해야 해.” _177면
레스는 무엇보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힘든 길을 택해 간다. 비록 황당한 오인 소동으로 인해서 “프레디, 내가 날 바보로 만들었어!”라고 외치게 되기도 하지만, 바로 뒤이어 “나는 레스를 되찾으려고 세상을 여행했고 (…) 그 나날은 기쁨, 사랑의 신선함으로 채워진 기쁨이었다”고 고백하는 연인의 존재를 재확인하고 그를 찾아 달려가기에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매일 사랑해야 해. 매일 그들을 선택해야 해”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편 《레스》를 즐겁게 읽었던 독자라면, 생동감 넘치는 여러 등장인물의 퍼레이드를 화려하게 펼쳐내고,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이슈들을 경쾌한 내러티브 속에 녹여내 재치 있는 문체로 풀어가는 작가의 빼어난 솜씨에서 다시 한번 새롭고 짜릿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옮긴이의 말
결국 레스는 프레디를 따라잡는다. 프레디는 그에게 문을 열어준다. 다음번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그리고 사실, 매일 사랑해야 하기에 발생하는 그런 아슬아슬함이 사랑의 본질이다. 누군가와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고. _36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