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봉 교수의 해설에서 발췌하였음)
#1 - 의인관적 세계관은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너(du)로, 곧 인간 자신으로 파악하는 비논리적 인식 방식을 가리킨다, 모든 존재를 사람처럼 받아들이고 사람처럼 표현하는 세계관이 의인관적 세계관이라는 얘기이다. 〈인용시 「봉숭아」 생략〉
이 시의 중심 대상인 ‘봉숭아’는 자연물 중의 하나, 특히 식물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시에서 ‘봉숭아’는 사물로 존재하지 않고 인간으로 존재한다. 우선은 1연의 중심 소재인 ‘엉겅퀴’와 ‘구기자’가 사람으로 표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여쁜”을 하고 “두근 반 한숨 반 주머니/스란스란 분홍치마 허리춤에 달려” 있는 2연의 봉숭아, “장독대 우두커니 서” 있는 봉숭아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시는 이처럼 ‘엉겅퀴’, ‘구기자’, ‘봉숭아’, ‘두견’ 등을 의인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시성 혹은 시적인 것을 확보한다.
#2 - 이때의 언어가 역사적으로는 원시를 지향하고, 개인적으로는 유년을 지향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원시의 언어, 유년의 언어는 문법적 자질이나 구조가 완성되기 이전의 단어문이나 명사문이기 일쑤이다. 곽은주의 시가 특별히 명사문을 지향하고 있는 것도 실제로는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인용시 「표류」 전문 생략〉
이 시는 모두 4개의 명사형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4개의 문장은 모두 “나뭇가지”, “고요”, “노래”, “도착” 등의 명사가 각 문장의 서술어로 작용한다. 이처럼 명사가 서술어를 대신하게 되면 독자의 머릿속에서 시적 형상이 훨씬 강화되기 쉽다. 명사형 문장은 각각의 문장이 지니는 형상의 밀도를 증가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얘기이다.
#3 - 시에서 명사형 문장은 이미지 중심의 형상을 통해 서정적 정서를 고무하는 데 유효하다. 그것이 시의 본질적 정서인 시원의 정서, 유년의 정서, 동심의 마음 등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성 혹은 시적인 것을 강화하기 위해 시인 곽은주가 시도하는 언어(문장)의 특징은 다음의 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유사한 통사구조를 반복하는 연의 병렬을 통해서도 시성 혹은 시적인 것을 고무하고 있는 것이 그이기 때문이다
#4 - 낭만성과 유리된 채 좋은 시가 태어나기는 어렵다. 그렇다. 낭만주의 시대가 끝났다고는 하더라도 낭만성을 자양분으로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시가 태어나기는 힘들다. 심미 의식의 하나로 낭만성을 구현하는 가장 보편적인 삶의 방식은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이야말로 각자의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낭만성이라는 이름의 심미 의식을 실현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해야 옳다.
곽은주의 이번 시집에도 심미 의식의 하나로 낭만성을 구현하고 있는 여행시는 적잖다. 여행 중에 만나는 경험들과 사물들이 불러 일으키는 감흥 또한 그의 시의 중요한 내용이 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5 - 곽은주의 이번 시집에는 기행시도 상당히 들어 있지만 인물 형상시도 상당히 들어 있다. 「외지 직장인」, 「원복이」, 「창수네 대문 말뚝」, 「소년의 비탈 마을」 등의 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가 하면 자연의 사물을 객관적으로 노래하는 시도 적잖이 들어 있는 것이 그의 이번 시집이다. 자연은 본래 물질로 구성되어 있거니와, 물질은 사물로 구현되기 마련이다. 사물이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대상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