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학술총서는 동서양에 축적된 학술서 가운데 검증된 세계 최고의 학술 명저를 선별한 것이다. 이번에 출간한 오다 아키히로(織田顯祐) 저, 고승학 역, 『화엄교학 성립론』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화엄에 대한 연구는 주로 중국 화엄사상 및 사상사 성립에 집중되어 있었다. 반면 이 책은 화엄사상 성립의 모멘텀이 되고 있는 화엄교학 성립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한 책이다. 『화엄교학 성립론』을 연구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불교의 성립론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이 세존학술총서 8번째로 『화엄교학 성립론』을 선정하여 출간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화엄교학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이다. 이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 오다 아키히로(織田顯祐))가 시도한 참신한 방법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법계연기에 대한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의 공적은 누구라도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그 전제가 되는 지엄(智儼, 602~668)의 교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된 일이 없지 않았다. 그 점에 주목한 저자는 오로지 ‘지엄의 법계연기사상’이라는 관점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상식적 발상을 전환시키는 듯한 논법을 구사하여 그 전체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밝힌 것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높이 평가할 것은 화엄교학 성립배경의 하나였던 지론교학(地論敎學)의 갖가지 양상에 관하여 철저하게 해명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론교학은 천친(天親=世親)보살의 『십지경론(十地經論)』을 번역함으로써 성립되었는데, 이에 대한 통설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다만 저자는 그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여 한역자들 사이의 알력으로 여겨지는 견해의 차이는 물론, 남·북(南北) 2도(道)의 교리 차이에 대해서도 괄목할 만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특히 진여의지(眞如依持)인가 아뢰야식의지(阿賴耶識依持)인가 하는 논쟁에 관해서는 『[대]지도론(大智度論)』을 연구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라고 꿰뚫어 본 점은 그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의 저자 오다 아키히로는 序章을 제외한 전체 8장 중에서, 1, 2, 6장을 지엄과 그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쳤던 지론종의 여러 이론들을 상세히 분석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특히 전체의 4분의 1의 분량에 달하는 제1장은 지론종의 남도파와 북도파 분열에 관한 통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지론교학의 문제의식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통설’은 지론종의 남북 분열의 원인을 법성의지설(法性依持설)과 아뢰야식의지설(阿賴耶識依持說)의 대립 내지 심식설을 둘러싼 논란에서 찾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지엄(智儼)이 화엄교학을 창시했다고 하는 말의 의미를 밝히는 데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법장(法藏)이 『화엄경전기(華嚴經傳記)』에서 지엄의 『화엄경수현기(華嚴經搜玄記)』 찬술을 ‘교(敎)를 세워 종(宗)을 나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한다. 그리고 법장은 그 내용을 ‘별교일승 무진연기’라고 논하고 있으므로 ‘별교일승’과 ‘무진연기’의 양면에서 화엄교학 성립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이 본서의 목적이다.
기본적으로 『화엄교학 성립론』은 일본 불교학계의 전통적인 문헌학적 방법론을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으나, 기존의 화엄사상 연구서와는 구별되는 색다른 관점이나 방법론을 종종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아직 지론종이나 초기 화엄사상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우리 한국불교 학계에 이러한 접근방법을 소개하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불교는 화엄경, 화엄사상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다. 화엄사상과 화엄교학은 한국불교의 핵심이다. 그것은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에서 큰 획을 이루었고, 원효도 화엄에 대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이 두 고승은 한국화엄의 조(祖)가 된다.
뿐만 아니라 고려 보조국사 지눌은 화엄의 영향을 받아서 『화엄론절요』를 저술하였고, 『원돈성불론』을 저술했다. 화엄사상, 화엄경은 선불교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선승들의 의식 속에는 화엄의 영향이 컸는데, 조선시대 고승, 선승들은 하나 같이 화엄경, 화엄사상을 섭렵 또는 전공하지 않은 선승이 없을 정도이다. 한국불교의 특색은 선과 화엄이고 선과 정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