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틀’이라는 독특한 형식의 고사성어,
늘 경계하고 마음의 나침판으로 삼았을 자기 쇄신 내용
저자의 삶에 깊게 영향을 끼친 고사성어들은 단순히 ‘문자’로 기록된 게 아니라 ‘문틀’이라는 독특한 형식 속에서 말을 걸어온다. 저자의 말대로 문은 안과 밖, 우리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접점이다. 이 문을 유지하는 게 문틀이니, 문틀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어야 안과 밖이 서로 교통하고 소통하는 문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틀은 내적인 것을 외부로 표출하는 자기 역할도 한다. 저자의 삶에 스며들어 밖으로 보이는 오늘의 자신을 만든 그 무엇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문틀에 담아낸 고사성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논어』에서 취한 ‘분사난(忿思難)’, 『장자』에서 취한 ‘견리이망기진(見利而忘其眞)’, 『시경』에서 배운 ‘회덕유녕(懷德維寧)’, 『도덕경』에서 가져온 ‘위학일익(爲學日益)’, 『후한서』에 등장하는 ‘유지자사의성(有志者事意成)’ 등 자세와 배움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분사난’은 ‘화가 날 때는 (화를 절제하지 못했을 때의) 어려움을 생각하라’라는 뜻이다. ‘위학일익’은 ‘배움은 날마다 채우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며, ‘유지자사의성’은 ‘뜻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라는 의미로 ‘유지경성(有志竟成)’으로도 쓰인다. 저자가 책의 1부 ‘문틀에 새긴 글’은 그 자신이 경계하고 늘 마음의 나침판으로 삼았을 자기 쇄신의 내용이 틀림없다.
그림 그리는 시인의 ‘마음에 새긴 그림’은
저자와 독자 사이에 어떤 다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철학을 공부했고 시를 쓰지만, 저자의 한 축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데 놓여 있다. 72편의 서정적 풍경을 담은 그림(구상, 비구상)들은 고향집, 기다림, 기쁨, 나들이, 노을 같은 추억의 시공간에 가닿고 있다. 이 그림들을 마주하면, 저자와 독자 사이에 어떤 다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다리는 독백이 아니라 대화로 우리를 인도한다.
특정한 사건이나 기억, 추억은 특정한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언어가 세계를 일대일로 반영하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 텍스트로 확장된 것처럼, 저자가 소환한 추억 속 이미지들은 분명 독자들과 함께 새로운 항해에 나설 것이다. 책의 부제가 ‘끊임없는 여행’인 것도 이 여행의 주체가 저자만이 아니라 독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환기한다.
우리는 누구나 특정한 기억 속을 거닐고 있다. 그것이 아프고 슬픈, 상처 입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만나는 것일 수도 있다. 책의 2부 ‘마음에 새긴 그림’은 그렇게 저자에게서 벗어나 이제 한 걸음씩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그에게 글과 그림들을 만나는 일은 끊임없는 여행,
독자들에게는 과연 어떤 여행이 될까?
철학자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에서 이미지의 개념을 새롭게 설명했다. 많은 이들은 이미지가 정신 속에 있고 세계는 그 바깥에 있다고 전제했지만, 베르그송은 이미지가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는 바로 그 지점에 자리한 것으로 파악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세계에 있는 것이고, 이미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소환한 ‘문틀에 새긴 글’과 ‘마음에 새긴 그림’은 주체에게서 나와 스스로 존재하면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의 글과 그림들이 건네는 내밀한 언어들과 만나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여행이 된다. 독자들에게는 과연 어떤 여행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