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시인이 생(生)과 사(死), 아(我)와 타아(他我)의 공존의 길을 발견해 가는 여정 역시 이 시집이 가진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세계를 두고 이문재 시인은 “‘피부 안’에 갇힌 감수성이 아니라 ‘피부 밖’으로 나아가는 감정 이입”을 일으키며, “타자와 하나 되려는 능동적 의지”를 드러낸다고 평한다. 즉 존재와 삶의 비의(祕意)를 포착하는 가장 탁월한 능력이 ‘감정 이입’인데, 이선이의 시가 바로 그러한 절박한 태도를 줄곧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집을 읽는 독자는 “들리지 않는 비명을 모으는 소리 채집가”(「부스러기를 위한 노래」)를 자처하고, “아무도 구원해 주지 않는 세계를 기억하”려고 기꺼이 “세이렌의 혀”(「머그잔에도 얼굴이 있다」)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으며, 마침내 낮고 뜨거운 평화의 기도를 영혼의 심연에 새기게 된다.
시집의 해설을 쓴 김나영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의 시적 주체가 마치 유리창처럼 “인간이 주도하는 일상과 신이 주재하는 삶을 매개하면서 그 안팎의 경계를 고발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이선이의 시적 성취야말로 경계를 살아내는 자가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유리에 맺힌 슬픔”의 정서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진단한다. “세상의 고통은/혼자 오고 몰래 오고 쉼 없이 와서”(「아이스아메리카노」), “올봄 하청 노동자를 실족시킨 건 운동화 속 돌멩이가 아니라고”(「부스러기를 위한 노래」), “옥상에서 난간까지//착한 사마리아인들의 입주가 시작되었다”(「첫눈」) 같은 구절을 읽으며, 독자들은 시인의 슬픔에 공명(共鳴)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시집 「물의 극장에서」는 작고 사소한 일상의 세부(細部)를 포착하고 여기에서 사회역사적 상처를 읽어내고 있으며, 개인과 세계를 연결하고 중첩하는 가운데 더 이상 번역할 수 없는 한국어의 에센스를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