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영어교육에서는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책은 어린 자녀의 뇌를 망가뜨리지 않고 영어를 효과적으로 학습하게 하는 길로 안내하고자 쓴 것입니다. 집필 동기는 어린이 영어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너무 많은 사람의 그릇된 고정관념들이었습니다.
첫째는, 단어를 서둘러 많이 암기해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둘째는, 문법을 빨리 배워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셋째는 파닉스부터 해야 읽기를 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넷째는, ‘교육’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영어교육이니까 ‘영어교육’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려는 오산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처음 세 가지 착각은 언어학과 인지심리학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것이고, 네 번째의 오산은 발달심리학이라고도 부르는 아동심리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런 착각과 오산을 깨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왜 처음부터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익혀야 하는지, 왜 ‘지식’으로서 문법이 아니라 ‘감각’으로서 문법을 길러줘야 하는지, 왜 파닉스부터가 아니라 낭독(read-aloud)을 많이 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나아가, 왜 적어도 사춘기까지는 아이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영어를 머리 아픈 ‘공부’로서가 아니라 최대한 재밌는 ‘놀이’로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합니다.
아이의 영어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어권 나라에서 사용하는 지도방식을 들여와 그대로 가르치면 대부분 효과가 크게 떨어지고 아이들이 매우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영어권에서는 말을 할 줄 아는 상태에서 파닉스와 읽기, 어휘 및 문법을 학습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 아이들은 영어로 말을 할 줄 모르는 채 시작합니다. 영어권에서는 하향식(top-down) 학습인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순간 상향식(bottom-up) 학습으로 뒤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점은 많은 영어교육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말을 할 줄 아는 상태에서 하는 하향식 학습과 말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상향식 학습의 차이는 아주아주 큽니다. 설계도를 가지고 집을 짓는 것과 설계도도 없이 벽돌부터 쌓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자동차의 부품 이름과 작동원리를 익힐 때, 운전을 할 줄 알면서 익히는 것과 운전도 못 하면서 익히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상향식 학습은 아주 높은 수준의 기억력과 사고력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하향식 학습이 되려면 ‘말하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장 기초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부터 길러줘야 하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파닉스와 문법을 몰라도, 쉬운 단어 조금만 알아도 익힐 수 있습니다.
적어도 초등까지는 아이들의 뇌가 고등사고력을 발휘할 만큼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단순 암기와 분석적인 사고를 많이 해야 하는 상향식 학습 방식으로 영어를 배우게 되면 학습효율도 크게 떨어지지만, 정서적인 부작용으로 자칫 평생 영어를 두려워하고 기피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잘못된 지식으로 시키는 단어 공부, 문법 공부, 파닉스 공부는 아이의 뇌를 망가뜨립니다. 또, 아동발달을 고려하지 않은 강압적 교육은 아이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부모와의 관계마저 깨뜨려 자칫 돌이키기 어려운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이 책은 어린 자녀가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영어학습의 효과는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려는 의도로 쓴 것입니다. 요즘에는 대부분 공교육에서 시작하는 초3보다 더 이른 시기에 영어를 시키므로 부모가 먼저 아이들의 영어교육에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가 직접 가르치기도 하고, 사교육을 시키더라도 어떤 곳에 보낼지 부모가 결정합니다. 하지만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인지심리학과 아동심리학에 역행하는 그릇된 고정관념들을 가지고서 아이들을 잘못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언어학을 전공하고 영어교육을 가르쳐온 교수로서 꽤 오랫동안 많은 초등교사, 사교육 종사자, 학부모를 만나온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이 아이와 부모 모두의 성공을 위한 가이드가 되길 바래봅니다.
끝으로, 이 책은 제가 2022년 8월에 내놓은 『나의 초등영어교육 접근법』(한국문화사)의 학부모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책이 초등교사를 대상으로 썼기 때문에 덜어낸 내용도 꽤 있고, 부모를 위해 풀어쓰고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는 욕심으로 추가한 내용도 많습니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두 책이 서로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제가 개발한 주목초점 4문형 학습법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으시면 앞선 책의 관련 내용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집필을 하면서 아이의 부모가 언어학을 포함한 인지심리학과 아동심리학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저명한 학자가 과학의 대중화보다는 대중의 과학화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우리 모두가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크게 공감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하는데,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었지만 잘하고 있는 건지 나 스스로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마침 초등 1학년과 5학년 두 아이를 둔, 교사가 아닌 순수한 엄마가 우리 대학원 초등영어교육과에 들어와서 내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임보영 선생님을 만난 건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다행히 내 수업 내용에 대해서 큰 흥미를 보이고 공감도 많이 해주기도 해서 감수를 부탁드렸는데, 감수뿐만 아니라 귀중한 경험과 사례들까지도 공유를 해주었다. 덕분에 가독성이 크게 높아지고 내용도 더욱 풍부해질 수 있었다. 깊이 감사드린다.
아쉽게도 경기도로 옮겨간 초등교사이자 아끼는 제자인 권다영 선생이 이번에도 전체적인 구성의 적절성과 내용의 충실성을 잘 살펴봐준 덕분에 중요한 보완을 할 수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 전한다. 또, 아끼는 대학 후배인 정원철 박사가 고맙게도 내용의 흐름을 검토하여 좀 더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도움을 주었다.
끝으로, 여전히 나의 건강을 염려하며 기꺼이 뒷바라지를 해주는 사랑하는 아내 김유경 님께 다시 한없는 고마움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