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베게〉는 2년 반 동안 남아메리카 대륙을 두 바퀴 이상 떠돈 이야기 〈남미 히피 로드〉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주축으로 아프리카, 튀르키예, 동남아시아을 아우르는 여행기다. 1960년대를 정점으로 소멸한 인류쯤으로 여겨졌던 히피의 건재를 알린 것이 전책의 성과라면 이번 책에는 뉴노멀 시대 ‘여행의 쓸모’에 관해 묻고 있다.
1장에서는 ‘국경을 건너는 여행’의 의미를 되새긴다. 볼리비아와 페루 사이의 국경은 따지자면 다른 나라지만, 한 마을이나 다름없다. 우루과이와 브라질의 국경은 상점가를 사이에 두고 왕복 4차선 도로가 놓여 있다. 아마존 강 따라 뱃길로 브라질, 페루 등 국경을 넘나들 때는 어떨까? 한국전쟁 이후 섬나라와 다를 바 없어진 대한민국 여행객에게 육로로 이어지는 국경은 늘 흥미로운 대상이다. 더군다나 팬데믹 시기에는 대다수 인류가 국경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국에서만 시간을 보내며 코로나 왕국의 지배가 이토록 길 줄은 몰랐으니, 작가의 한 줄은 더 큰 울림을 준다.
“팬데믹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인류는 힘껏 포옹을 나눴다.”(25쪽)
2장에서는 여행지에서 만난 ‘절대적 환대’의 풍경을 들려준다. 손님의 이름도 묻지 않고 보답도 바라지 않으며 모든 걸 내주는 환대,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환대란 시(詩)적 행위이다”라고 말한 바로 그 환대의 순간들.
“세상의 뭇 철학자들은 세계를 분석하고, 혁명가는 세계를 변화시키며, 여행자는 세계를 떠돌며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환대가 젖과 꿀처럼 흐르던 시절의 경험을…”(164쪽)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시골에서 다정한 사람들과의 만남들. 금방 짠 양젖을 권하기도 하고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고 양털로 짠 양말을 나눈다. 국적 불문하고 여행자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오지에도 공동체가 살아 있고 환대의 문화가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KBS 〈인간극장〉 지현호 PD가 ‘노동효의 여행기는 마치 지구 전체를 배경으로 한 〈인간극장〉 같다. 가장 행복한 "나"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라고 전했던 대로다. 팬데믹 이후 더욱 빠르게 환대가 사라져 가는 시대, 환대의 풍경이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3장은 길을 통해 삶의 지혜에 눈뜨는 최고의 방법 ‘여행의 연금술’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공간을 바꾸고 시간을 바꿈으로써 알게 되는 것들. 새로운 풍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여행의 마법에 관한 생각들이 펼쳐진다.
“나는 믿어요, 여행의 연금술을. 당신 앞에 펼쳐진 길이 아프리카의 초원, 아시아의 오지, 북아메리카의 대도시, 남아메리카의 해변…. 어디에 닿게 할는지는 모르지만, 당신에게 새로운 눈을 갖게 하리란 것을!”(3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