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어: 고종, 신실, 종묘의례, 부묘제, 신주, 배설제구, 포진제구
대한제국은 1897년에 선포하여 1910년 일본에 병합되기까지 12년간 존속한 제국체제의 국가이다. 당시 조선은 왕위승계와 관련한 예송(禮訟)과 붕당정치로 인해 왕권의 실추와 민심의 도탄으로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국면이었다.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전통적 질서수호와 새로운 세계질서를 함께 수용해야 할 시점이었다. 선제적으로 통치자의 위상과 역할을 다변적으로 대변하고, 정통성 확립을 위해 종래 선왕의 통치를 계승하여 국가의 정통성에 대한 규범을 실행해야 했다. 이에 대한제국은 유교적 통치 체제를 집대성한 조선의 국가 전례를 천자국의 예제에 맞게 규모와 체계를 정비하여 『대한예전(大韓禮典)』을 편찬했다.
한편, 종묘는 국가체제의 변경에도 여전히 유교 예제에 의한 종법적 질서로 계승되고 있었으나, 의제는 종전의 제후국가 제도인 《오묘제(五廟制)》를 제국에 맞게 《칠묘제(七廟制)》로 재정비했다. 따라서 종묘의 제례 공간인 신실도 종묘의례 규정에 따라 재정비되었으며, 의례용 제구 또한 의절에 따라 갖추어야만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제도를 정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본 연구는 대한제국기 종묘 신실 내에 갖추어진 제구에 관한 연구이다. 따라서 기존의 국가체제를 통치하던 주체자가 체제를 바꾸어 통치를 이어가는 과정에 종묘의례 제도의 변화를 의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절목에 의해 마련된 의례용 제구의 정비와 기술적 특성을 연구하였다. 이에 연구범위를 고종이 조선 26대 왕으로 재임했던 34년간(1863년~1897년)과 대한제국기(1897년~1910년)에 더하여 일제강점기인 1921년 고종 부묘(祔廟)와 1928년 순종 부묘 때까지로 설정하였다. 이는 동일한 통치주체자인 고종에 의해 변경된 국가 의례가 종전의 의례와 다른 점에
대한 배경과 그에 따라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현전(現傳)하는 유물의 제(諸)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특히 신실에 마련된 제구(諸具)에 관한 기록은 1866년(고종 3) 철종 부묘부터 1928년 순종 부묘에 이르기까지 『빈전혼전도감의궤』와 『부묘도감의궤』에 수록된 내용을 중
심으로 검토하였다. 그리고 『국조오례의』와 『대한예전』에 규정된 의제(儀制)를 검토하고, 『종묘의궤』와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에 도설된 종묘 의절에 따른 제구와 관련된 내용을 참작하여 살펴보았다. 이와 함께 대한제국이 망한 이후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종묘 정전과 영녕전, 공신당, 재실에 있는 제구의 비품 장부도 추가하여 검토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본 연구는 2009년부터 2022년까지 시행한 종묘 정전과 영녕전에 정비된 종별 제구의 보수, 교체사업 과정에 직접 참여한 실증적 경험과 이 과정에 얻어진 유물 시료의 자연과학적 분석정보를 토대로 종묘 신실 제구의 변천 과정과 기술적 특성을 도출할 수 있었음을 밝힌다.
Ⅱ장은 종전의 왕정체제와는 다른 제국체제에서 제도로 마련된 의례의 변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Ⅲ장에서는 먼저 대한제국 종묘 신실의 조성과 변화 과정을 알아보고, 종묘 신실에 구비된 제구의 정비 과정을 살펴보았다.
Ⅳ장에서는 종묘 신실 제구에 대한 수리·보수·교체로 얻어진 결과물의 실증적 고찰과 『종묘의궤』와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에 기록된 의절에 따라 마련되는 제구의 종별 현황과 『부묘도감의궤』에 수록된 내용을 조사하여 제구의 종별 변화 추이를 살펴보았다.
Ⅴ장에서는 종묘 신실 제구의 구조와 기술적 특징을 포진과 배설의 기능을 가진 제구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그 근거가 되는 자료는 『부묘도감의궤』에 기록되어 있는 종별 물목과 『국조오례서례』와 『대한예전서례』에 도설된 도식과 내용을 검토하였다. 당시 사료에 기록된 물목에 들이는 재료와 물량을 분석하면서 구조와 형태를 추론하고 현전하는 유물의 현상을 비교하여 종별 제구를 제작할 때 기술방식을 도출하였다.
Ⅵ장에서는 제구의 물성에 대한 자연 과학적 분석을 검토하였다. 앞 장의 문헌 자료와 현전 유물의 현상 비교분석에 의하면 종묘 신실에 마련된 포진제구와 배설제구는 개별적으로 여러 종류의 재료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었다. 보수 교체 과정에서 살펴본 결과 각종 제구에 소용된 재료로는 직물류, 목재류와 비목재류인 초본류와 지류가 대표적으로 사용되었고, 철기류와 안료, 도료 등이 보조제로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제구의 물성을 분석하기 위해 소재를 생물학적 분류로 구분하였다. 대분류로 직물류와 목재류, 안료와 도료를 분류하고, 목재류를 다시 비목재류 속에 초본류와 지류로 소분류하였다.
Ⅶ장에서는 종묘 신실 제구의 보수운영과 보존방법에 대해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현재하는 유물의 보존방법에 대한 과제를 모색할 수 있었다. 종묘 신실 종별 제구의 해체과정에 얻어진 조사로 유물 훼손 원인과 유형에 대해 관찰할 수 있었다. 포진제구와 배설제구의 훼손 원인과 오염의 유형이 종별 제구에 사용되는 소재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한제국기의 종묘 의제는 제국의 제도를 갖춤으로써 다른 국가 제도를 포괄하는 것으로 대한제국 체제의 정점을 함의하고 있었다. 이는 예치를 국가의 통치 질서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는 ‘길례(吉禮)’를 으뜸으로 여겼으며, 길례에서 대사는 종묘와 사직에 대한 의례이고, 조선왕실의 사당인 종묘는 가장 중요한 제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즉, 종묘 의례는 ‘선대왕과 선후’를 조상신으로 모시는 차원이 아닌 왕실의 신성을 교화하는 차원에서 의례가 설행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신위를 봉안한 신주를 중심으로 한 의례와 의절로 규정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공간구성은 신주를 봉안하고 있는 신실이 중심이 되는 향사 공간과 제례를 수행하는 행례 공간으로 구분하였다. 전 내에 갖추어진 제구도 이것에 부합하여 마련되었다. 이 시기 종묘는 조선과의 영속성을 담보하고, 제국의 당위성과 황실의 정통성을 상징하기 위해 의제와 의절에 대한 재정비는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열악한 시대 상황과 짧은 시간에 모든 제도를 다 갖추기에는 불가항력이었으나 다만 황제국 의례를 표출하기 위한 일부만을 갖출 수 있었다. 이마저도 제국이 병합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전하는 유물의 제 현상조차도 제국체제에 갖추어져야 하는 면모와는 현저히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