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그리움을 위무하는 곡진한 사랑의 詩
1
1980~90년대를 지나면서 소설이나 산문시가 퇴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100만부 이상 팔리는 밀리언셀러는 전설이 되었고 산문시는
결국 짧은 극서정시에 밀려났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이러한 흐름은 융복합 멀티미디어 시대로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15세기 인쇄술 혁명은 소수가 장악하던 지식 체계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왔다.
문학예술도 이전까지는 구전에 의존해야 했으므로 ‘시와 노래’가 한 몸이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로 대량 복사되는 문자에 의한 소통이 보편화되면서
산문 장르인 소설과 수필이 활자 매체의 총아로 꽃을 피웠다.
굳이 운문으로 압축해 암송하거나 노래에 실어 소통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활자 매체로 르네상스를 구가했던 문학은 20세기 전자매체 시대가 열리면서
또 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영상시대의 진전은 정보를 문자보다는 영상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소위 ‘신인류 영상세대’를 낳았다.
태어나면서부터 TV나 핸드폰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는 데 익숙한 이들 세대들에게
문자로 된 책은 고통스러운 소통 매체가 아닐 수 없다.
대학의 국문과 학생들마저「반지의 제왕」을 소설이 아닌 영화로 봤다는 설문 결과는
이제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복잡한 이야기나 상황 묘사가 한순간 영상으로 대체되는 상황 속에서
문자가 설 땅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제 모든 예술 양식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영상 중심의
융복합 멀디미디어화로 통합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생각할 때 문자시를 시낭송과 시극 등의 무대공연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서수옥 시인의 활동은 돋보인다.
사)한국공연문화예술원 이사장인 서 시인은 시낭송과 시극 등
시 퍼포먼스계의 대부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니까 문자로 된 시를 낭송이나 극과 같은 무대 예술로 승화시키는 활동을
선구적으로 해오고 있는 것이다.
『시낭송 이론과 실제』등의 저서를 집필해 이론적인 토대도 쌓아가고 있다.
필자가 도시와 농촌을 잇는 도농협동연수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농업농촌을 주제로 한 창작 시극을 부탁해 이를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그동안 시도된 적이 없는 주제였지만 감동적인 시낭송과 무대 연출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런 그가 이제 개인 시집을 출간한다. 시낭송으로 타인의 시로 압축해 암송하거나
노래에 실어 소통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활자 매체로 르네상스를 구가했던 문학은 20세기 전자매체 시대가 열리면서
또 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영상시대의 진전은 정보를 문자보다는 영상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소위 ‘신인류 영상세대’를 낳았다.
태어나면서부터 TV나 핸드폰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는 데 익숙한 이들 세대들에게
문자로 된 책은 고통스러운 소통 매체가 아닐 수 없다.
대학의 국문과 학생들마저「반지의 제왕」을 소설이 아닌 영화로 봤다는 설문 결과는
이제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복잡한 이야기나 상황 묘사가 한순간 영상으로 대체되는 상황 속에서
문자가 설 땅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제 모든 예술 양식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영상 중심의
융복합 멀디미디어화로 통합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생각할 때 문자시를 시낭송과 시극 등의 무대공연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서수옥 시인의 활동은 돋보인다.
사)한국공연문화예술원 이사장인 서 시인은 시낭송과 시극 등
시 퍼포먼스계의 대부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니까 문자로 된 시를 낭송이나 극과 같은 무대 예술로 승화시키는 활동을
선구적으로 해오고 있는 것이다.
『시낭송 이론과 실제』등의 저서를 집필해 이론적인 토대도 쌓아가고 있다.
필자가 도시와 농촌을 잇는 도농협동연수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농업농촌을 주제로 한 창작 시극을 부탁해 이를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그동안 시도된 적이 없는 주제였지만 감동적인 시낭송과 무대 연출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런 그가 이제 개인 시집을 출간한다. 시낭송으로 타인의 시를
빛내는 낭송가의 활동 속에서 아마도 자신의 시에 대한 갈구가 있었으리라.
예순이 되면 내 시집을 내리라 다짐했던 나와의 약속이” 있었기에
“이 얼마나 감격의 순간인지요.”라는 술회는 이러한 갈구에 대한 응답에 다름 아니다.
“‘잘했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장하다, 우리 딸’이란 아버지의 말씀을 빌린 독백은
그러기에 더욱 감격적인 울림을 준다.
이번 시집은 어린 시절의 추억, 육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사회에서 만난
많은 인연들과의 서사를 시로 우려낸 값진 보물 바구니다.
그러기에 시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시인의 내면에 피었다 진 다양한 무니와
향기를 음미하는 행복한 시간을 맞게 될 것이다.
2
시집의 내적 논리인 이번 시집의 목차는 제1부 ‘인생의 맛’,
제2부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밤’,
제3부 ‘유자 닮은 여자’,
제4부 ‘그대는 누구인가’,
제5부 ‘연주를 탄주하다’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가 하나로 모아지는 부 구성은 물론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부를 나눈 나름의 의미가 느껴진다.
목차의 취지를 살려 각 부마다 눈에 띄는 작품을 중심으로 시인의 시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하철 안 핑크 카펫
두 남자가 양쪽을 차지하고 있다
배가 산달을 넘긴 듯 불룩하다
나온 배를 더 내밀며
핑크 카펫에 앉아 있음을
정당화 시킨다
“축하합니다
순산하셨어요”
당신 닮은 비 양심
내일이면 꽃이 지고 가시만 남겠다
-「비양심 카펫」전문
제1부는 현실 세태를 비판한 시「비양심 카펫」를 앞머리에 배치하고 있다.
시인의 눈이 ‘오늘 여기’의 문제에 먼저 닿아 있음은 창작 활동에 믿음을 갖게 한다.
사람들은 오늘 우리 사회가 도덕과 염치가 사라진 시대라고 탄식한다.
지하철 분홍색 좌석인 핑크 카펫은 임산부 배려석이다.
임산부가 언제라도 부담 없이 앉을 수 있도록 좌석을 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임산부가 와도 이미 자리를 차지한 승객이 미동도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위 시에서는 두 남자가 핑크 카펫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산달을 넘긴 듯” 배가 불룩한 남자들이다.
나온 배를 더 내밀며 마치 자신이 임산부인양 자세를 취하는 비양심을 이 시는 비판한다.
“축하합니다. 순산하셨어요.” 구절은 이러한 비판의 역설적 진술이다.
이어지는 시「어정쩡 세대」는 지하철 내 경로석과 핑크 카펫
그 어디에도 앉을 수 없는 어중간한 세대인 자신을 응시한다.
예전의 화자가 취하던 배려의 태도와 달리 오늘날의 승객들이 보여주는
핸드폰에 코 박고/ 눈길도 안주는” 윤리와 도덕이 출타 중”인 모습에서
“왕년이 주마등처럼 스침”을 절감한다.
문제는 윤리와 도덕이 사라진, ‘꽃이 지고 가시만 남는’ 삭막한 풍경이
지하철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의 사회면과 방송 뉴스를 차지한다.
범죄나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책하거나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신을 정당화하고
뻔뻔스럽게 큰소리치기까지 하니 할 말을 잃게 한다.
우리 선인들은 ‘염치없는 놈’이란 소리를 듣는 것을 최악의 수치로 여기며
이를 사회윤리의 기본 덕목으로 삼았다.
이 시는 염치없는 오늘의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옳은 근본이 무엇인지를 일러준다.
1부의 작품에서 가수 이문세와 배우 윤석화, 박정자를 추억하는 시편을 빠뜨릴 수 없다.
“나의 가슴에 분홍빛/ 사연 하나 써놓고/ 가슴을 후려치던 그의 노래”는
“겨울을 이기고 나온/ 매화 향처럼/ 짙은 그의 향기는/
예순을 바라는 나이에도/ 설렘을 준다/
싱그러운 마음 그대로”(「청춘 문세」) 가수 이문세에 대한 추억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설렘을 준다.” 「배우 윤석화」에서는
“83년 처음 ‘신의 아그네스’를 보고/ 연극을 하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50년, 60년, 70년/ 오래오래 당신의/ 연기를 보고 싶다”고 응원한다.
「그 여자 박정자」에서는 “라일락 향기를 좋아했던 그녀/ 선명하고 나직한 저음이/
아주 매력적이었지/ 바람이 부는 날을 좋아했고/
내 손 편지 받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녀”로 추억하며 “오래전 기억 속을 유영하며/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녀와 함께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환상에 젖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아름답지만 추억 속의 주인공을 이토록 가슴에 품고
절절하게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는 시인이 가슴이 그만큼 따뜻하고 인간적임을 보여준다.
1부의 표제 ‘인생의 맛’은「커피」연작시에서 뽑은 것이다.
“쓰고/ 달고 / 신/ 인생의 맛”, “알고 보니/ 부드럽다.”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이디오피아 커피에 대한 찬사다.「커피-아바」는
커피의 결정체 같은 시편이다.
흔히 커피의 매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아로마와 바디감을 든다.
아로마가 커피를 마시기 전 감각을 자극하는 향이라면
바디감은 커피를 마실 때 느끼는 무게감 같은 것이다.
이 두 요소는 원두의 종류, 재배 환경, 가공방식 등의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데,
시인은 아로마의 ‘아’와 바디감의 ‘바’자에서
1970년대 세계적인 인기를 끈 댄싱그룹 아바(ABBA)를 떠올린다.
“커피는 아바다.”라는 선언적인 은유적 사유가 이 시를 낳았다.
아바의 〈Money, Money, Money〉〈Dancing Queen〉의 멜로디가
귓전에 울리는 커피 한 잔의 시간. 그 커피가 ‘나’를 만나게 한다니 멋지지 않은가.
시인에게 커피는 ‘뜨거움’(「커피-뜨거움」)으로 ‘사랑’과 ‘청춘’을 상징한다.
“벨트를 풀고 즐기는 오르가슴/ 25도의 흥분/ 벨트를 조이며 즐기는/
50도의 적절한 사랑” 일명 커피벨트로 불리는 남위와
북위 25에서 생산되는 커피가 상징하는 ‘25도의 흥분’이라니,
그리고 50도의 적절한 사랑이라니, 커피는 마시는 일이 이토록 흥분되는 순간임을
시인은 커피 시편으로 노래한다.
제2부는 육친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의 시편 모음이다.
시에 그려지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푸르게/ 도도하고 위풍당당하게
우리를 품어 안 던 큰 산”이 저물고 저물어 “치매로 신이 난 엄마/ 불만스럽고
적응 안 되는 아버지”의 안쓰러운 모습이다.
“앙탈도 귀여워하시던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끝내 “사랑과 배려를 남기고/
내 가슴에 별이 되셨고,” “‘얘야,’/ ‘마당에 조팝꽃이/ 이쁘게 피었구나’/
‘꽃 지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게/ 오늘 다녀가거라.’” 하시던 엄마는
“잠에서 눈 부비며/ 사진 속 엄마를 보는” 슬픔으로 남아 있다.
“내 보물 상자엔 사계절이 있다”로 시작하는「아버지 분홍 손 글씨」시편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절절하게 그려낸다.
유품을 정리하듯
봉지마다 묶여있는
끈을 풀었다
눈에 띄는 것 하나
2010년 10월 23일
셋째 딸 고춧가루 5근
아버지의 손 글씨 쪽지가 붙어 있다
어둠 속에서 몇 해를 잘도 숨어 있었다
어둠을 걷어내는 순간
나는 그만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 흰머리처럼
고춧가루도 백발이 되어 있다
오래오래 간직하면
평생 변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이 쪽지를 적으며
맛있게 먹어줄 셋째 딸을 생각하며
아버진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아버지 분홍 손 글씨」 부분
아버지가 끝내 하늘나라로 가시던 날, “산새도 풀과 꽃바람도 손사래 치듯/
아버지 가는 길 배웅해 주었다”며,
“그 이름 고이 접어/ 가슴 깊이 간직합니다”(「아버지 안녕」)라고 울먹인다.
치매로 요양원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하루하루를 잊어가며 즐거움만 채우고”
사는 엄마는 면회 갈 때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노래를 불러주셨다고 한다.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노래와 춤에/ 숨겨둔 끼가 이제야 빛을 발한다/
내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엄마였어/
난 엄마 딸이었어”(「또 다른 시작을 위한 변주곡」)라는 구절에 이르러 절정을 맞는다.
“빼도 박도 못하는/ 박 여사 셋째 딸”이라는 고백,
이상의 그 어떤 사랑의 언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엄마의 미소는/ 그리움이었고/ 온화한 마음의 고향이며/
무한의 사랑이었”다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진솔한 고백이 공감을 준다.
가던 길
멈춰 바라본
그림자
엄마다
-「그림자」전문
어느 날 문득 길을 가다 멈춰 선 자리에 그림자가 눈에 밟힌다.
누구나 흔히 접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그림자에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는 단순한 발견을 넘어선다.
자신이 엄마를 닮았음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코코’란 이름을 가진 애완견 시편에서도
가슴 저리게 그려진다.
다섯 달 된 아기 사모예드가 현관을 떠나지 않는 모습을 통해 “나도 엄마가 보고 싶은데/
저 어린 것도/ 기다릴 사람이 있나보다/ … / 오늘도 코코는 현관을 지키고
어미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된다.”는 진술에서 자신 또한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린아이임을 절감한다.
“나도/ 울 엄마 품이 그립다/ 코코야”라는 구절이야말로 가슴 찢어질 것 같은
그리움의 절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육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그 어떤 말로도 대신하기 어렵다. 그만큼 숭고하다.
그러니 오직 마음으로 갈무리할 수밖에 없다.
「고독한 단상」은 그러한 시인의 시름을 승화시킨 작품으로 주목된다.
홀로 지새는 밤
어둠은 숙연히
밑바닥을 핥고 있다
날이 새면 지상에서 흩어져
공중에 흩날릴 듯
사라져가는 흔적들
이 땅에 와 이름 하나
흔적 하나 남기고
존재조차 지워져 가는
작은 영혼들
밤이 깊을수록 상념은 커가고
어둠을 질러 여명이 오면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무명 새 한 마리
지친 날갯짓이 힘겹다
-「고독한 단상」 전문
제3부 〈유자를 닮은 여자〉에서는「뜨거운 사랑」이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당긴다.
돌솥 밥뚜껑을 열었다
밤 대추 은행 완두콩
서로를 품어 요염하게 앉아 있다
그때 우리처럼
뜨거운 돌솥 속에서
농익은 사랑을 나누었나
표정이 밝고 완미(婉媚)하다
-「뜨거운 사랑」전문
이 시편은 선경후정(先景後情) 시작법의 전형을 보여주는 명편이다.
돌솥 밥뚜껑을 열었을 때 펼쳐지는 밥솥 안의 진풍경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절묘하다.
이어지는 둘째 연은 시인의 생각을 우린 정(情)의 세계다.
서로를 품어 안은 밥솥 안의 진풍경은 화자 자신이 뜨겁게 사랑을 나눈 아름다운 순간의 풍경에
다름 아님을 깨닫는다.
“표정이 밝고 완미(婉媚)하다”는 이러한 둘째 연의 의미 심화로 아름다운 사랑의 경지를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일상의 소재인 돌솥밥에서 뜨거운 사랑의 의미를 뽑아 올린 시안(詩眼)이 놀랍기만 하다.
서수옥 시인의 시는 잔잔히 낭송하기에 좋은 조금은 긴 음유적 시편들이 눈길을 끌지만
3부에는 비교적 짧은 명편이 적지 않다.
“그대 생각에/ 묵은지처럼/ 길게 찢어/ 그리운 마음/ 한 입 가득”(「그대 생각」전문)
그대를 생각하는 그리운 마음을 묵은지처럼 길게 찢어
한 입 가득 넣는다니, 이 얼마나 감각적인 사랑의 표현인가.
당신이 울면
낙엽이 지고
당신이 웃으면
꽃이 피지요
그대여
울다 지쳐
내 가슴에서
꽃이 된 그대여
-「눈물 꽃」전문
“당신이 울면/ 낙엽이 지고/, 당신이 웃으면/ 꽃이 핀다”는 진술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만 실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낙엽이 짐은 세상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절망의 은유이며 꽃이 피는 일은
그 절망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의 세상이 열림을 의미한다.
이 얼마나 숭고하고 위대한 일인가. 울고 웃는 일,
어쩌면 그것은 우리네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연 “울다 지쳐/ 내 가슴에서/ 꽃이 된 그대”라는 진술에 이르면
의미가 웅숭깊어진다.
울다 지쳐 내 가슴에 꽃이 된 그대라니! 그것은 그대의 절망인 울음도 끝내는
내 가슴에서 꽃으로 피어난다는,
눈물이 지닌 숭고한 사랑과 포용의 사유에 다름 아니다.
똬리를 튼
똥 속에서
코브라가
춤을 추며 나오면
나는야
피리 부는 똥파리
-「똥파리」전문
짧은 생
하지만
누구보다 긴
삶을 살다 간 너
롱 다리!
사람들은
부러워
너를 삶아 먹는다
-「롱 다리 콩 여사」전문
「똥파리」와「롱 다리 콩 여사」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재미있게 읽히지만 시적 무게가 가볍지 않다.「똥파리」는 감각적인 시편이다.
“똬리를 튼/ 똥 속에서/ 코브라가/ 춤을 추며 나온다.
” 똥의 이미지와 똬리를 튼 코브라 형상의 유사성이 절묘하다.
인도 상인이 똬리 틀어 올린 모자를 쓰고 피리를 불며
코브라 쇼를 펼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기막힌 표현이다.
“나는야/ 피리 부는 똥파리”라는 마지막 구절은 반전의 묘미로 재미를 더한다.
아주 짧은 시로 이렇게 풍부한 이미지를 표출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롱 다리 콩 여사」는 콩나물을 ‘롱 다리’로 의인화한 시편이다.
‘짧은 생’과 ‘긴 삶’이 충돌하지만 자연스럽게 읽힌다.
그런데 마지막 연이 압권이다.
“사람들은 롱 다리가 부러워 너를 삶아 먹는다”는 다소 무시무시한(?)
직설적 진술이기 때문이다.
4,5부에도 눈길을 끄는 시편이 적지 않다. 특히 깨달음을 주거나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시편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사랑을 노래한 시는 쓰기 쉬운 것 같지만 오래 기억될 감각적인 사랑시 쓰기란
사실 쉽지가 않다.
그런 점에서 서수옥 시인의 사랑 시편은 힘을 지닌다.
나는
그대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끝없이 종착역을 향해갑니다
어디가 끝일까요
그대와 나는
끝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순환열차처럼
-「그대라는 이름의 전차」전문
짧지만 이미지와 메시지가 선명하다.
어디서든 낭송하기 좋은 내용의 작품이다.
그대와 나의 사랑은 종착역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순환열차처럼
끝이 없는 사랑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 얼마나 아름답고 절절한 사랑의 세레나데인가.
한여름
태양을 이고 영근
붉은 열매
또옥 또옥 따다가
가을을 진하게
다 마시고 싶다
가을인 나와
가을 한잔
어때요?
-「가을 한 잔」전문
이 시의 묘미는 마지막 부분의 반전에 있다.
가을을 따다가 진하게 마시고 싶다는 앞부분의 진술은 어쩌면 평이하다.
하지만 ‘가을인 나와/ 가을 한 잔’ 하자는 구절에 이르면 시의 색깔이 바뀐다.
‘가을인 나’는 그냥 ‘아무개의 나’가 아니다.
일찍이 서정주는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의 이미지로 가을을 각인시켰다.
위 시에서 ‘나’는 바로 그런 누님 같은 ‘나’인 것이다.
그런 “나와 가을 한잔 어때요?”라는 가슴 설레는 제안을 뉘 있어 뿌리칠 수 있겠는가.
〈나〉 죽어 바람으로
〈그대〉 곁에 머물면
〈그〉 향기 품은 안부
그리워 그리워라
〈나〉 죽어 향기로
〈그대〉 코끝 스치면
〈그〉 향기에 취해
건넨 편지
〈그대〉 손에 머물고
그리움만 깊어가네
- 「향기로 남은 그대」전문
한 편의 노래처럼 읽히는 시편이다. 서수옥 시인의 시들은
이처럼 내용의 흐름이 유연하고 표현이 감각적이어서 잔잔히 읊조리기에 좋은 작품들이다.
이 시는 작곡가가 바로 곡을 붙여도 좋을 그런 시편이다. 제목도 매력적이다.
시의 앞머리에 나오는 ‘나 죽어’라는 진술은「진달래꽃」(김소월)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는 구절처럼 반어적 의미가 강하다.
사랑이든 이별이든 향기로 남는 그리움의 ‘그대’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편이다.
3
지금까지 서수옥 시인의 작품을 만나보았다.
어느 한 편 외면할 수 없는 시편들이지만 부별로 눈길을 끄는 몇 편을 골라보았다.
달리 말하면 의미 있는 작품임에도 다루지 못한 작품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서수옥 시인의 시편들을 몇 갈래로 나눠보면, 먼저「비양심 카펫」등에서 보여주는
강한 현실의식의 시편들이다.
‘오늘 여기’의 경험적 현실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있음은 시인의 시의식이
그만큼 건강하다는 반증이다.
둘째는 육친에 대한 곡진한 사랑과 그리움의 시편들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엄마에 대한 사랑이 절절한 눈물의 언어로 승화되고 있다.
셋째는 짧은 시의 매력이다.
술술 읽히면서도 깊이를 놓치지 않는 짧은 시편들은 낭송하기에 더없이 좋은
대중성을 갖추었다.
서수옥 시인은 낭송가로 시극 연출가로 일가를 이룬 분이다.
그런 그가 이제 시인으로 또 한 벌의 옷을 차려 입는다.
시인의 시는 유연한 흐름과 리듬, 공감 가는 서사로 누구나 부담 없이
읊조릴 수 있는 시편들이 주를 이룬다.
모쪼록 많은 독자가 서수옥의 시로 행복해지는 은혜가 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