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현북스 천천히 읽는 책 공모전 ‘대상’ 수상작
천천히 읽는 책은 우리 겨레와 인류가 쌓아 온 다양한 분야의 지식정보를 글 중심으로 천천히 읽으면서 생각하는 폭과 깊이, 읽는 힘을 길러 줄 수 있는 책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아리랑 - 흙의 노래에서 민족의 노래로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고 즐겨 부른 노래는 무엇일까요? 지역과 시대를 넘어 우리 민족이라면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부르고 어울릴 수 있는 노래로 〈아리랑〉만 한 것이 없어요. 우리 민족은 슬플 때는 위로받기 위해, 기쁠 때는 흥을 돋우기 위해, 힘들 때는 용기를 얻기 위해 〈아리랑〉을 불렀어요.
많은 사람이 〈아리랑〉을 사랑하지만, 민족의 아픔과 슬픔, 저항과 투쟁의 한복판에 〈아리랑〉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나라가 침략당했을 때는 온 백성이 〈아리랑〉을 부르며 복받치는 설움을 달랬어요. 일본이 침략했을 때도 〈아리랑〉을 읊조리며 독립의 의지를 다졌지요. 남과 북이 나뉜 뒤에는 통일에 대한 간절한 바람도 〈아리랑〉으로 엮어 불렀어요. 〈아리랑〉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곁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겨레의 마음과 삶이 배어 있는 민족혼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님을 위한 행진곡 - 광주를 넘어 세계로
1982년 광주에서 윤상원,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치러진 직후, 두 젊은이의 넋을 기리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노래극 《넋풀이》가 만들어졌어요. 음악가 김종률은 노래극의 마지막을 장식할 합창곡으로 장엄하고 슬프면서도 힘찬 행진곡풍의 노래를 만들었어요. 여기에 소설가 황석영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를 바탕으로 가사를 붙였어요. 이렇게 〈님을 위한 행진곡〉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어요.
〈님을 위한 행진곡〉은 민중민주 진영의 ‘애국가’로 불려요. 각종 민주화 시위나 노동자·농민 집회에서 예외 없이 이 노래를 불러요. 이 노래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죽어 간 사람들이 살아남은 우리에게 계속 투쟁할 것을 호소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노래를 합창함으로써 꺾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돼요. 〈님을 위한 행진곡〉은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홍콩,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아시아 각국의 투쟁 현장에서도 널리 불리고 있어요.
직녀에게 - 사랑 노래에서 통일의 노래로
‘직녀에게’는 비극적인 이별의 현실 속에서 절절한 그리움과 함께 이별의 상황을 이겨내고 꼭 다시 만나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시예요. 문병란 시인은 원래 이 시를 구상하고 써 내려갈 때 남녀 간의 사랑을 읊은 연시가 아니라 통일 염원 시로 썼기 때문에 그렇게 읽어 주기를 바란다고 했어요. ‘직녀에게’가 생명력을 얻은 것은 우리의 분단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거기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음악가 박문옥은 이 시에 친근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곡을 붙여 노래 〈직녀에게〉를 완성했어요. 분단 반세기를 넘긴 이 시점에서 〈직녀에게〉는 대중가요라기보다는 남북한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지는 통일의 노래이며,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우리 민족의 절규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민족의 노래로 사랑받게 되었어요.
늙은 군인의 노래 - 금지곡에서 국민가요로
음악가 김민기는 군 복무 중 한 선임하사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그 선임하사는 30년을 복무한 후 제대를 앞둔 군인이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1976년 겨울 탄생한 〈늙은 군인의 노래〉였어요. 청춘을 푸른 군복에 바친 늙은 군인의 한탄과 아쉬움, 소박한 나라 사랑의 마음이 담긴 이 노래는 곧 병사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지며 불리게 되었어요.
〈늙은 군인의 노래〉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금지한 첫 번째 금지곡이에요. 약하고 패배주의적인 가사가 군인들 사기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1986년 ‘건대 항쟁’ 때는 4일간 학교 건물에 갇혀 죽음의 공포를 느끼던 학생들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부르며 힘을 얻었다고 해요. 현재 이 노래는 2020년 6·25전쟁 제70주년 행사 ‘영웅에게’를 비롯한 여러 행사에서 사용되는 등 국민가요로 사랑받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