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시대》는 1984년 1월 대구의 시내 골목길에서 만나 “신군부체제 아래서 말살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분단된 조국의 운명을 문학을 통해 극복하고자” 창립된 문학 동인이다.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들은 80년대의 6월항쟁과, 90년대 경제발전과 IMF, 2000년대 진보정권, 2010년대 새로운 보수정권을 거쳐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당시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 부자와 가난한 자, 거짓과 진실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쓸려가고, 이제 대중은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시대에 40주년 기념 시집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1984년 《분단시대》 동인이 출발할 무렵 언론통폐합과 다수 잡지의 폐간을 계기로 문학계에서는 다양한 동인들이 출현하였다. 《분단시대》처럼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동인들이 대거 만들어지고 지역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그 흐름은 사회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리얼리즘과 민족문학론이라는 화두는 그 창작방법론이 이제는 논의의 중심이 아니지만 그것은 문학의 장 안으로, 타 장르의 예술 이론과 방법론으로, 그리고 사회 운동의 장으로 흡수되거나 억압된 시대에 새로운 문화운동의 물꼬를 틔워 주었다.
김성장은 시 「사경」을 통해, 목판에 경전을 새기는 행위로써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리고 “일밖에 모르고/술 마시는 것도 모르고” 그저 “흙빛 얼굴로 어쩌다 한번 흰 이빨을 드러내며/씨익 웃”고, “소비한 것이 거의 없고/웃음조차 소비한 적이 없는 사람”(「장씨 아저씨」)을 그려내며 세속의 기준을 벗어난, 가장 평범하지만 현자였던 한 인간을 그리워한다.
김용락은 어린 시절 경북 의성에서 대구로 유학 나올 때 자신을 배웅했던 ‘단촌역’의 풍경을 떠올린다. 그때 그 작은 소년이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이었을까. 꿈 많던 소년은 어느덧 성장하여 페놀 수돗물에 분노하고, 때론 시처럼 일생을 살다 간 권정생 선생의 마음을 헤아리며 세상에서 자신의 할 일을 끊임없이 질문하며 행동하고자 노력한다. 그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수장으로서 몽골의 오브스주 울란곰에 학교를 짓는 지원 사업을 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마음가짐의 실천이었을 것이다.
도종환은 「파멸의 시간은 홀로 오지 않는다」 「끝이 아니다」 등의 시를 통해 파멸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인식하며 인류의 각성과 반성을 강조한다.
정지창 평론가는 “《분단시대》 동인들의 시는 여전히 초기의 그 풋풋하고 소박한 정서와 열정을 잃지 않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시류에 편승하여 카멜레온처럼 너무도 쉽게 자신의 색깔을 바꾸는 요즘의 문학판에서 이처럼 고집스럽게 자신의 본모습을 지켜내는 것은 자칫하면 지적 태만이나 보수주의적 아집으로 몰리기 쉽다. 그렇지만 나는 《분단시대》 동인들의 이러한 태도를 초심을 지키려는 심지의 발로라고 본다.”라고 말하며 《분단시대》 동인의 존재 의의를 되새긴다.
1980년대에 《분단시대》 동인들은 대부분 20~30대의 나이였다. 그들의 혈기왕성한 의지는 한국 민주화의 흐름을 주도하였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진보의 주요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생존과 경쟁의 장으로 내몰린 그들의 삶이란 끊임 없이 갈등하고 중재하고 투쟁하는 삶이었으며 그랬기에 그들의 에너지는 폭발적이었다. 시간이 흘렀을지언정 그들의 치열한 시대정신과 의지는 유효하다. 이번 시집은 ‘분단’이라는 장벽이 아직 유효한 시대에, 열한 명의 시인이 이 ‘가혹한 시간’을 각각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어떻게 싸워 가고 있는지 가늠하고 진단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