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의 진상 하나. 보스턴 차 사건과 아편 전쟁
세계사를 뒤흔든 사건 뒤에는 홍차가 있었다!
1773년 12월 16일, 인디언 차림을 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배에 올랐다. “보스턴항을 거대한 티 포트로!” 이 구호를 시작으로 인디언으로 분장한 급진파 시민들은 입항한 배에 실려 있던 차 상자 342개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미국 독립운동의 방아쇠가 된 보스턴 차 사건의 시작이었다.
1840년, 청나라와 영국 간에 아편 전쟁이 발발했다. 영국은 차 대금으로 청나라에 막대하게 흘러가는 은을 회수하기 위해, 아편에 주목했다.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아편을 만들어 중국에 밀수출하고, 차 대금으로 지불한 은을 인도를 경유해서 회수하는 삼각무역을 시작한 것이다.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아편에 중독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중국은 영국과 전쟁을 벌였지만 무참히 패하고 말았다.
이처럼 세계를 재편한 역사의 중심에 홍차가 있었다. 미국은 보스턴 차 사건을 발단으로 마침내 1776년 7월, 꿈에 그리던 독립을 이루었다. 반면 중국은 영국과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을 맺고, 99년간 홍콩을 영국에 양도해야 했다.
| 사건의 진상 둘. 차를 부르는 두 이름 Cha와 Tay
티로드를 따라 뻗어나간 차, 문화의 정수가 되다!
차의 발상지는 중국이다. 처음에 녹차를 즐기던 중국인들은 우연한 계기로 홍차를 개발하게 되고, 홍차는 유럽으로 건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차가 세계로 전파된 경로는 티로드라 불리는 육로와 해로였다. 전 세계에는 많은 언어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차’를 가리키는 단어는 대단히 비슷한 두 종류의 이름으로 불린다. 바로 cha(차)와 tay(티)다. 이를 세계지도 속에 대입해보면 각각의 공통점이 보인다. 광둥어를 어원으로 삼아 파생된 cha그룹은 주로 육로를 경유하고, 푸젠어를 어원으로 삼아 파생된 tay그룹은 주로 해로를 경유하며 차가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그 나라에서 차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를 보면, 어떤 경로를 통해 전파됐지만 알 수 있다. 이렇게 티로드를 따라 세계 곳곳으로 전파된 차는 각 나라의 정치, 경제, 종교와 얽히면서 하나의 문화로 발전을 거듭했다. 차를 마시는 방법뿐 아니라 다기나 다과, 대접 방식까지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다도가, 영국에서는 애프터눈 티가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이자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 홍차 문화의 꽃, 애프터눈 티
정치적 책략 파티와 사교의 공간을 뛰어넘어 품격을 함양하는 장으로
영국은 홍차의 나라다. 홍차의 발상지는 아니지만 애프터눈 티로 대변되는 화려한 홍차 문화를 완성하고 전 세계에 퍼뜨린 것은 영국이었다. 홍차를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들답게 영국인은 홍차나 디저트를 즐기는 법에도 온갖 논쟁을 붙이며 소소한 재미로 삼는다.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부먹찍먹에 버금가는 ‘홍차가 먼저냐, 우유가 먼저냐’ 논쟁이다. 우유를 먼저 붓고 홍차를 따르는 MIF(Milk in First)파는 “우유의 양이 명확해서 잘 섞이니까 맛있다”고 주장하며, 우유를 나중에 붓는 MIA(Milk in After)파는 “우선 스트레이트 티로 홍차의 향을 즐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뜻 티테이블에 재미를 더하는 소재 같지만, 여기에는 오래된 영국의 계급의식이 숨어 있다.
홍차 문화의 꽃, 애프터눈 티는 단순히 3단 트레이에 담긴 디저트를 홍차와 먹는 식도락 문화가 아니다. 애프터눈 티는 건축양식이나 인테리어, 도자기, 은제 그릇, 침구, 회화, 정원, 음악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활 속 예술이다. 때로는 책략이 넘치는 정치의 공간으로, 때로는 문화와 정신을 잇는 소통의 장으로 기능했던 이 티타임을 통해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품격과 소양을 함양해왔다.
오늘의 당신에겐 이 책이 그 역할을 대신해줄 것이다. 폭넓고 다양한 홍차 이야기와 티 매너가 총집약된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교양을 갖춘 지성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향긋한 홍차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