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억하는 부산"을 만든 사람과 공간에 관하여
부산은 초량 168계단, 좌천동 190계단, 범천동 180계단, 감천문화마을 148계단 등 계단이 많은 도시다. 개항 이후 부산으로 모여든 일본인으로 인해 산으로 밀려난 조선인과 빈민, 해방 이후 돌아온 귀환동포, 한국전쟁기의 피란민, 산업화 시기 일자리를 찾아 밀려들어 온 노동자. 부산은 수많은 이주민들이 끊임없이 몰려오는 도시였다. 그 결과 판잣집으로 뒤덮인 산동네가 만들어졌다. 「부산의 계단과 축대」에서는 산동네 주거 공간의 "계단과 축대"라는 중요한 구조물을 통해 근대 이후 부산 사람들의 삶을 풀어낸다. 가파르고 위험한 계단은 산동네 사람들의 이동 시간을 줄여주는 통로였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공동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민자의 도시」에서는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 여성단체와 최근 일본인 결혼이민자 커뮤니티의 상황을 정리하며 환대에 기반한 이민자 도시 부산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낸다.
부산은 "다리의 도시"이다. 한국인의 집단 기억 속에 자리하는 영도다리에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에서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녹아 있다. 영도다리 주변에는 실향민들의 믿음과 소망이 응축된 점바치 상점이 늘어서 있었다. 2013년 도개교의 기능을 다시 복원한 이후 영도다리는 단순히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아니라 시대의 정서를 이어주는 "기억의 교량"이 되고 있다. 부산에는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거가대교, 을숙도대교 등 크고 작은 다리들이 도시 각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산복도로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산동네와 그 사이를 누비는 시내버스, 복잡한 골목과 가파른 계단이 전쟁 이후 부산의 도시 서사를 만들며 부산다운 풍경을 만들어 냈다면 이제 시원한 바다 위 건설된 해양 교량이 첨단의 기술 위에 이 도시의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있다.
1407년 부산포 개항부터 21세기 북항 재개발까지.
부산이 나아갈 글로벌 해양도시의 모습은 무엇일까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부산이 닫힌 공간이 아니라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해양사에서 본 조선과 부산의 세계화」에서는 근세 세계화의 시각에서 부산이 조선시대부터 외부 세계와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부산은 태종 7년(1407년) 김해의 내이포와 함께 부산포가 개항하면서 근세 세계화 질서에 포함되게 된다. 반복되는 왜구의 침입은 부산포의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을 반증했으며, 조선시대 내내 동남해 지역을 상징하는 주요 항구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부산의 지리적 특성은 항만(북항)의 개발로 이어진다. 「닫힌 항만, 열린 항만」에서는 지금껏 부산이 담당해온 항구도시에서 해양경제·해양문화 도시로의 전환을 위해 "열린 항만"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가덕도신공항 건설, 엑스포 개최, 부울경 메가시티, 북항 재개발, 도시재생사업, 글로벌 허브도시 등 부산의 미래를 둘러싼 논의들이 활발하다. 동시에 부산은 인구감소로 인한 지역소멸의 위기도 함께 맞고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부산의 미래는 바다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해역네트워크 속의 부산』을 통해 부산이 요코하마, 고베, 상하이, 광저우, 싱가포르 등과 같은 동아시아의 대표 해양도시를 넘어서는 글로벌 해양도시가 되기 위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