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주수자의 『소설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서』는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과 이를 찾고 지키려 했던 국문학자 김태준의 이야기를 긴박하게 그린 소설이다.
작가가 소설 말미 별첨에 엮은 ‘김태준과의 가상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이 소설은 “허구와 현실의 시간을 다르”게 구성해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더욱 흥미진진하고 박동감 넘치게 그려낸 팩션이다;
- 수색 모래내 군처형장에서 국문학자 김태준이 총살당하기 직전, 그의 머릿속에서 해례본을 찾아 헤맸던 파란만장한 여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서사의 첫 문이 열린다. 그리고 이를 정음(한글)이 증언한다. 소설은 일종의 다큐 형식이자 격자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소설의 말미에는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간다. 소설은 실제로 사형장에서 마지막 1분간에 일어난 서사인 것이다.
- 국문학자 김태준의 삶이 소설의 핵심 서사이자 플롯에서도 중심 척추를 구성한다. 그는 해례본을 찾으려고 경북 안동, 서대문 형무소, 중국 연안, 다시 경성, 해방공간의 지리산으로 고단하고도 위험한 모험을 강행한다.
- 육체를 가진 김태준과 정신을 대표하는 정음과의 쌍방 대화라는 독특한 구조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음은 소리꾼이 사설을 얹어 부르듯이 간혹 개입하기도 한다. 길이도 내용도 제각각이고 다채롭다. 기존 소설의 서사 방식을 허물고 폭넓게 확장한 서술 방식인데, 이는 새로운 문학적 구조에 대한 작가의 실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 한편 정음의 서사는 언어적 화두를 던지면서 시작된다. 등장인물로는 소리 광대 방외인, 언문 투서를 담당한 사헌부 감찰, 구한말 성서를 언문으로 번역하는 천주학쟁이 등 역사 본류에서는 지워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통과하며 정음의 시간(탄생, 성장, 수난, 실종)을 훑어가게 한다.
소설의 주요 시간대는 1940년 여름부터 1949년 11월까지. 근 10년간의 이 시간은 조선의 운명이 격정으로 흐르고 있던 때였다.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해 우리말과 글이 위태로웠던 때였고, 1945년 해방 후에는 좌우 이념으로 갈려 살벌한 칼날 아래 민족과 백성이 숨죽이던 시절이었다. 1949년 11월 국문학자 김태준이 처형당한 후 6개월 뒤엔 6.25전쟁이 발발했다.
소설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나선 김태준의 고생스런 여정과 우리 민족 근현대사 고난의 정점을 관통하며 나아간다. 해례본과 민족사를 꼿꼿하게 꿰어 끌고가는 거대한 수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