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희는 자연의 순리와 하늘에 순응하는 시인이다. 자연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은, 설령 그 지향이 도로徒勞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끊임없는 비우기와 내려놓기, 겸허한 자기성찰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천 의지를 전제하는 믿음과 베풂으로 나아가려는 데 주어진다. 이 때문에 그의 시는 인위적인 것들마저 자연과 같아야 하며 그 자연은 하늘을 따르는 순리이고 질서라는 인식을 이면裏面에 완곡하게 다지고 있는 것으로 읽히게 한다.
가까이서나 멀리서 마주치는 풍경들을 그리고 있는 일련의 시도 대상을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대상이 안겨주는 느낌에 무게를 싣거나 대상을 주관화(자아화自我化)해 재구성된 내면內面 풍경으로 빚어지는 까닭은 이 같은 인식의 소산이며, 하늘의 뜻으로 귀결歸結되는 자연관과 세계관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시인이 살아가는 현실은 순리와는 거꾸로 가기도 하는 풍진세상風塵世上이므로 귀감이 되는 역사적 진실을 소환해서 반추하도록 추동하는 한편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연민憐憫을 끼얹고 있으며, ‘십자가의 사랑’과 그 믿음을 일깨우면서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부단히 꿈꾸고 추구한다.
신영희 시인은 높은 곳에서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 장대함에 무릎을 꿇어 /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시 「명령」에서 언표言表한다. 이어 “망망대해를 품에 안았는가 / 내 품을 그대가 안았는가”라고 바다를 내려다보던 시선을 자기성찰로 돌리면서 그 장대한 바다의 명령이 “버리는 자만이 또 다른 것을 얻는다고 / 파도는 포말로 귀띔한다”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귀를 연다.
또한 “저 먼바다에서 달려온 파도 / 제 몸을 부수며 쉼 없이 부르짖는다”고 파도가 빚는 포말의 의미를 일깨우면서 파도에 밀려나온 바닷가의 “자갈 하나 주워다가 / 머리맡에 두고 볼 일이다 / 파도 소리 담아다가 / 마음에 새겨 볼 일이다”라는 각성에 이르고 있는 「다짐」 역시 같은 맥락脈絡의 시다. 비움의 미덕을 끌어안는 이 겸허한 자기성찰은 「명령」에서 그리고 있듯이, “새털 같은 가벼움으로 / 달음박질할 예감”을 안겨주는가 하면, 마음속에 환한 세상이 넘실거리게 하는 데까지도 나아가게 한다.
시인의 자연에 대한 이 같은 외경심은 넓은 바다는 물론 가까이 자주 마주치는 강이나 사소한 일상사에서도 거의 마찬가지로 내비쳐진다. 낙동강에 해 뜨는 광경을 바라보면서는 “강물은 숨 멈추고 해를 품는다.”(「낙동강, 해 품다」)고 보며, “사랑 노래 / 들판 너머 먼 산을 휘휘 감는다”(같은 시)라고도 그린다. 강이 해를 품을 때 숨을 멈춘다는 표현과 이른 아침 햇빛을 먼 산을 휘휘 감는 사랑 노래라는 발상은 새겨들어야 할 은유隱喩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