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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았다

닮았다

  • 신지영
  • |
  • 시와사람
  • |
  • 2024-09-05 출간
  • |
  • 136페이지
  • |
  • 125 X 200mm
  • |
  • ISBN 9788956657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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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섬과 바다, 그리고 길과 생명성의 수사학
- 신지영 시집 『닮았다』


강경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들어가며
서정시는 인간의 삶에서 마주하는 정서적 사건들을 통해 시인이 느끼는 감정과 정신 표정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물론 ‘시’라는 문학장르의 형식에 충실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때 가치가 있다. 이런 서정시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시인만의 시적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일군의 젊은 시인들이 난삽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기이한 목소리들을 내는데,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것으로 내다본다.
그동안 보여온 신지영 시인의 시 세계는 섬과 바다가 중요한 시적 공간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삶이 그의 시적 원형심상으로 자리잡은 까닭이다. 고향을 떠나 살아가지만 고향에서의 원체험이 늘 그의 내면에서 상상력으로 발화한다. 그리고 그의 시의 한켠에는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심상들이 시로 형상화되고,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삶을 이끄는 종교적 관념을 구체화한 것들이 그의 시 세계를 이룬다.
네 번째 시집 『닮았다』는 지금가지 구축한 섬과 바다를 탐구한 시편들과 자신이 이끌어 온 삶의 길에 대한 모색을 드러낸 시편, 생태학적 상상력을 발현한 시편들의 경향을 보여준다.
바다는 섬에 둘러싸여 있고, 그 섬에서 시인은 살았다. 바다와 섬은 시인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고, 그리움이 되고,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이제 시인은 시를 통해 고향의 바다와 섬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객관화시킨다. 그러므로 현재 진행형보다는 과거를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며 오늘의 바다와 섬을 노래한다. 실존적 세계를 탐구하는 시편들은 욕망을 버린 삶, 누군가에게 곁이 되고 싶은 삶, 충만한 삶, 그리고 자신이 가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생태학적 상상력을 펼치는 시편들은 이번 시집에서 많은 비중과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생물학적인 생명성을 나타내는 시편은 물론 인간의 의지를 드러낸 생명성, 그리고 정신적 가치를 형상화한 생명성의 제문제를 깊게 탐구하고 있다.

2. 바다, 혹은 섬
‘장소’는 엄연한 실존의 토대이다. 사람은 장소를 사는 존재로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은 죽은 공간이다. 사람은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살아가는 땅은 장소와 지각공간의 인지와 경험이 이루어지는 바탕이다. 삶은 그것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의 맥락과 연관성 안에서 인성이 형성되고 감정이 영향을 받는 일을 배제하고는 성립될 수 없다.
이렇듯 인간의 존재는 장소가 부재한다면 존재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육체가 장소를 점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소는 몸과 정신의 실존을 품고 그것이 피어나게 하는 자리이며, 모든 원초적 경험의 바탕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과 함께하는 장소는 수많은 서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경험이 축적된 장소에는 그 장소만의 특별함이 투사되어 있다.
신지영 시인의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섬과 바다의 장소는 시인만의 특별함이 배어있다. 그가 묘사하는 고향의 섬과 바다, 부모님 등에는 수많은 서사가 깃들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신지영 시인의 총체성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
모든 시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시점을 취한다. 그런 측면에서 신지영 시인의 시에 나타난 시인의 의식에는 유년의 고향에서의 행복했던 때를 그리워한다. “두 팔을 자갈밭에 눕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고 한다. 이러한 기억은 「아침을 맞이하는 법」과 「섬과 섬 그 중간쯤에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유년의 고향인 섬에서의 추억 중에서도 특히 기억하고 있다. 이렇듯 섬과 바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신지영 시인의 시를 살펴본다.

사람들이 북적이며 찾아왔다가
훌쩍 떠나 버렸다
하늘과 바다를 잇는 그 자리에
하나뿐인 태양은 떠오를까

두 팔을 자갈밭에 눕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작은 배
아침이 눈 뜨길 기다리고 있다

정월 초하루 아니라도
수평선에 구름이 덕지덕지 묻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순리다

때 묻지 않은 곳을 찾았더니
바다는 흥건하고 자갈이 반짝인다
밤새운 흔적이
눈가를 적실 때쯤
보이지 않는 곳부터 물들고 있다

일 년에 한 번만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낯익은 교만이다

그 무엇을
해마다 잃어버리는 일이다
- 「아침, 맞이하는 법」 전문

이 작품에서 시인의 시점은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하였다가 다시 현재로 이동하여 시인의 의식을 드러내 보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북적이며 찾아왔다가/ 훌쩍 떠나 버렸다” 오늘날 연육교, 연도교가 섬을 잇고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섬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하고 있다. 육지와 떨어지고 분리되었을 때 온전한 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본래 섬의 기능을 약화시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쉽게 섬을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꼭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명절 때 고향을 찾는 일도 그러하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만/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낯익은 교만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섬에서 맞는 아침을 노래하고 있다. 섬을 어머니 양수처럼 감싸고 있는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있다. “그 제자리에/ 하나뿐인 태양이 떠오를” 것인지를 묻는다. 섬에서는 “작은 배/ 아침이 눈 뜨길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 시인이나 다 안다. “정월 초하루 아니라도/ 수평선에 구름이 덕지덕지 묻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순리다” 태양은 언제든지 하루에 한 번씩 떠오르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일 년에 한 번만/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낯익은 교만이다”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제주도 출신 문충선 시인은 섬을 ‘감옥’으로 인식하였다. 태풍이 불면 꼼짝없이 갇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난 시절엔 육지로 건너는 일이 쉽지 않았다. 신지영 시인의 유년에도 이와 같았으리라.
다음의 「섬과 섬 그 중간쯤에서」의 시점은 현재의 상황과 과거 회상을 보여준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밑바닥에 묻어둔 생각들이 일어서고
맞잡은 손을 흔들다가도
아직 뿜어내지 못한 향수에 젖는다

썰물에 떠오른 바위섬이
휘어지는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선다

배를 타고
섬의 경계를 넘는 일이 낯설다

자갈밭에 두 다리 펴고
나란히 앉아 있던 아이들이나
검게 탄 얼굴로 바다를 일구던 어부들은
이런 일을 짐작이나 했을까

섬과 섬
그 중간쯤에서
유년의 흔적을 섬에 둔 사람이
핑계 삼아 바다를 바라본다

또 다른 섬 잇고도
잊지 못한다
- 「섬과 섬 그 중간쯤에서」 전문

시인의 유년에는 육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리가 없었다. 이후 다리가 있어 섬을 쉽게 오고 갈 수가 있다. 시적 화자는 “다리를 건널 때마다/ 밑바닥에 묻어둔 생각들이 일어서고/ 맞잡은 손을 흔들다가도/ 아직 뿜어내지 못한 향수에 젖는다”고 진술한다. 다리를 건너 섬에 가는 일에 대해 육지 사람들은 짐작하지 못할 상념에 젖는다. 멀고 아득하기만 했던 육지를, 또는 섬을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인데, 화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향수에 젖는다. “자갈밭에 두 다리 펴고/ 나란히 앉아있던 아이들이나/ 검게 탄 얼굴로 바다를 일구던 어부들은/ 이런 일을 짐작이나 했을까”하고 오늘날 다리로 이어진 문명의 이기가 가져온 변화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섬과 섬/ 그 중간 쯤에서/ 유년의 흔적을 섬에 둔 사람이 핑계 삼아 바다를 바라본다” ‘섬과 섬 사이 중간쯤’이면 말 그대로 ‘섬과 섬 사이’이다. 즉 오늘날 섬과 섬 사이를 잇는 연도교 중간쯤으로 ‘바다 한가운데’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섬은 유폐된 장소로 현실에서의 고통스러운 장소이기도 하여 화자는 “또 다른 섬 잇고도/ 잊지 못한다”고 회상하는 것이다.
이밖에 이번 시집에서 섬과 바다를 형상화한 「장도를 말한다」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떠올린다. 화자는 섬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하루 종일 “가만만을 바라보며 바다를 훑”고, 바라보는 바다는 “매운 바람을 만나/ 더 출렁”이고 있다. 이렇듯 막막한 서정은 “바다를 치며 울 일이 생긴다”고 하여 섬을 ‘감옥’, ‘유폐’의 장소로 나타낸다.
「적금대교를 지나며」에서는 적금대교에서 다리 아래 지나는 바다의 배를 바라본다. 그 배가 “섬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정이 깊어서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이 다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화자가 “잠시 잊고 살아왔을 뿐”이라고 자신의 고향인 섬에 대한 감정을 내비친다.
「섬 길을 잇다」 역시 섬에서 삶을 살았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자동차를 타고 적금대교를 지나/ 어머니에게” 간다고 진술하며 쉽게 섬에 다다를 수 있는 적금대교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육지와 섬, 그리고 화자 자신과 어머니와의 관계를 이어주는 공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섬에 가면」은 시인의 총체성을 이루게 한 섬의 의미를 되새긴다. 섬에 배어있는 유년의 서사가 이제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하며 섬과 섬이 장가들고 시집간다며 섬을 의인화하여 애틋한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기다리는 섬」은 “바다 가운데 남겨진 섬 부도”를 노래하고 있는데, 찾는 이가 없어 “언제부턴가 배 한 척이 보고 싶고/ 사람들이 그리”운 섬이 되어버려 사람을 기다리는 외로운 섬임을 묘파하고 있다. 오늘날 바다에 남겨진 섬의 초상을 그린 작품이다.

3. 길 찾기
인간은 태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간다. 그 길은 쉽게 가는 길이 아니며 함부로 가는 길이 아니다. 그 길은 실존의 길이며 존재방식이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명제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대상이었다. 이렇듯 인간에게 ‘길찾기’는 한 인간으로서 제대로 서기 위한 노력으로 궁극적으로는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일이다.
신지영 시인에게 길찾기는 그의 삶의 지표가 되는 기독신앙을 실천하는 일이다. 그는 「무서운 날」(시집 『바람부는 날』)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 부정은 높은 곳을 향한 부정이라고 한다. 이렇듯 보다 나은 인간으로서 성장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이번 시집에서는 창조주가 만든 땅에 지번을 부여하고 “맨 땅에 금을 그은 자”들의 욕망을 부정한다. 이 작품은 근본적으로 창조주 영역을 함부로 욕망의 수단으로 전용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운용되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탐욕에 대해 경계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도 아름답고/들리지 않는 것은 더 세미”하다(「두고두고 감사할 일」)고 한다. 이렇듯 기독교적 관념을 사고의 중심에 두고 있는 신지영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는 다양한 존재론적인 실존의 태도를 견지한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자신의 길찾기에 몰두하는 것이다.

길은 다 통한다는데
한 길만 걷는 것은 우매한 고집일까

길은 다 닮았는데
길이 다름을 안다는 것은 절망일까

길은 다 같은 길이라는데
길을 찾고 있는 것이 옳은가

닮은 길이 아닌
못 보고도 분명하게 믿어지는
길을 찾습니다
- 「길을 찾습니다」 전문

이 작품은 ‘길’이라는 시적 대상을 인간이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 또는 삶의 태도로 비유하여 시적화자가 가야 할 지표로 설정하고 있다. 박목월이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라고 노래한 「나그네」에서의 길은 단지 장소적 의미를 띄지만 신지영 시인의 이 작품에서의 길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지시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면서도 장소적 의미의 ‘길’이 지닌 지시적 의미로 확장시킨다. 그러므로 “길은 다 통한다는데” “길은 다 닮았는데” “길은 다 같은 길이라는데”라고 장소적 기능을 가진 길의 의미를 인생의 지평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화자는 “한 길만 걷는 것은 우매한 고집일까”라고 고심한다. 많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오직 올곧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길이 다름을 안다는 것은 절망일까”라고도 고뇌한다. 누군가와는 다른 길을 가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데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길을 찾고 있는 것이 옳은가”라는 생각 또한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이렇듯 화자는 그것이 옳든 옳지 않든간에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못 보고도 분명하게 믿어지는/길을 찾”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길을 가겠다는 다짐은 응당 옳은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인의 길찾기는 다음의 「물」에서 보다 구체성을 띈다.

몰랐다
자꾸만 위에다 붓고
위로 보내고
위에 두었음에도

요리조리 길을 내며
휘어지고 구부러지고
멀리 돌아서라도
마침내 낮은 데로 가는 것을

더 낮은 데로
더 천한 데로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더 깊이 더 넓게
세상을 흠뻑 적실 수 있음을
물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 「물」 전문

위의 작품 ‘물’은 시인이 지향하는 삶의 좌표가 어떠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말해준다.
본래 생명의 원천이며, 생명 자체인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물은 물이 지닌 성질을, 화자 또한 그대로 닮아 물처럼 살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그러나 화자는 물이 지닌 성질을 “몰랐다”며 작품의 서두에서 고백한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 물이라는 것과, 낮고 천한 데를 흘러 마침내 세상을 흠뻑 적시는 것이 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마침내 알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통해 시적 화자는 물의 본성인 ‘낮은 데로 흐르고, 천한 데로 흘러, 세상을 흠뻑 적시는’ 성질을 닮겠다고 한다. 이렇듯 높은 데를 상징하는 권력과 명예를 지양하고, 생명을 살리는 물과 같은 존재가 되는 일은 순리이며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묘파하고 있다.
이밖에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시인은 「골목길」에서 골목처럼 좁은 곳을 지나갈 때는 “두 손 모아/쭉/팔을 뻗고/목부터 내밀어야 한다”며 때로는 굽어지며 순리대로 길을 가야한다고, 인생이라는 길을 지나가는 법을 노래한다.
「그대, 흔들리는 풍경」에서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이 되는 이치를 보여주며, 개체 하나 하나가 모여 커다란 사회가 되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
「곁이 되는 것」에서는 타자를 위해 마음을 주고 관심을 갖음으로써 누구나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실존을 그려내었다.
「빈 들에서 감사」는 추수가 끝나고 모든 것을 내어줘버린 어머니의 품 같은 들판이 빈 것은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역설을 통해 텅 빔의 충만을 노래하고 있다.
「대장간에서 듣다」는 대장간에서 쇠붙이가 망치를 맞음으로써 더욱 견고해진다는 튼실한 정신성을 말하고 있다.
「캐스팅, 그 후」는 “가난하고/무지하고/연약하고/교만한” 자신을 왜 캐스팅했는지를 묻는다. 모두 쓰임새가 있음으로 절대자의 선택을 받는다는 인식을 통해 존재의 비밀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길을 가는 존재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실존적 방법론에서 탐구하고 있다.

4. 생명성 탐구
생명성을 모색하는 시학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산업화의 결과 도시가 팽창하고 소비가 촉진되어 온갖 문제들이 노출되면서 이른바 생태학적 상상력의 발현으로 우리 시의 중요한 화두가 시작되었다. 이는 자연 환경의 파괴로 환경문제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후 본질적으로 생명성에 관한 깊은 모색을 하기에 이르렀다.
생명성 문제는 전지구적인 관심이 심화되어 오늘날에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태환경파괴에 관한 제문제와 더불어 인간과 자연의 상생에 대한 전망과 해결방법을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원초적인 인간의 생명성을 정신적 차원에서 천착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신지영 시인은 생명성 탐구를 많은 시편을 통해 모색하고 있어 이번 시집에서 특히 주목된다. 그의 생태학적 상상력은 자연과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문제와 더불어 인간 정신영역의 성장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시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신지영 시인의 생명성 탐구는 먼저 시인이 지낸 병동생활에서의 고통스러운 날들의 기억 때문에 더욱 간절하게 다가오며 설득력을 갖는다.
“네 시간만에 응급실에 도착하고/네 시간을 기다려 심장에 바늘 하나를 꽂았다” “가물가물/기다리다 두리번거리며 눈을 떴다”(「응급실에서」)고 한다. 숨이 차고 가슴이 두근대는 고통 속에서 네 시간만에 응급실에 도착하기까지의 불안한 상황에서의 위급함은 네 시간이 아니라 그 보다 더 긴 시간으로 느꼈을 것이다. 생명의 위기에서 느껴지는 절박함으로 인해 생명의 소중함과 가치가 더욱 귀하게 느껴졌음이 보여진다. 병동에서의 생활을 그려진 「병원 25」는 시제가 ‘병원 25시’인 것처럼 더욱 절박한 상황들이 암시된다. 특히 “새벽 한 시,”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이어서 더욱 생명의 불안정성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이때쯤이면 “5병동의 복도가 분주하다” 고통스러운 환자의 신음소리, “허둥대며 헝클어지는 시간/야윈 팔뚝에 박힌/날카로운 금속을 타고 훅 들어왔다”는 진술에서 위급하고 불안한 정서가 시 전면에 흐른다. “알약을 삼킨 후/투명한 관으로 시간을 연장”되어 비로소 “생명의 물관을 연다”는 문장에서 한밤중 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동이 긴박하다. 이렇듯 신지영 시인은 자신의 몸으로 느낀 병원에서의 생활에서 더욱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함으로서 생명에 대한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가 바라보는 ‘잔디’ ‘민들레’ ‘청포도’ ‘꽃’과 ‘낙엽’ 그리고 ‘개미’ 한 마리의 생에서 생명에 관한 남다른 감각을 보여준다.

밟고 섰다

가느다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는 잎사귀들이
수 없이 의지하며 모였다

한 발을 들어 보니
무참히 눌렸다가
허리를 접어 바닥에 눕힌 채 중상이다

비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허리를 바스락거리며 세우며
하나 둘
몸을 일으킨다

휙 뒤돌아보았다
모두가 하얀 손을 흔들며
부끄러운 등에다 쏘아붙인다
생존권 보장!
- 「잔디」 전문

시적 화자는 잔디를 밟고 서 있다. 물론 일부러 잔디를 밟은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잔디를 밟고 있음을 “한 발을 들어” 본 후 “무참히 눌렸다가/허리를 접어 바닥에 눕힌 채 중상”인 것을 알게 된다. 화자의 인식 태도에 의하면 화자가 잔디에게 상해를 입힌 셈이다. 흔히 우리는 잔디를 밟은 것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물론 잔디에 앉거나 밟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의 가치를 노래하는 이 작품에서는 아무리 미물이어도 생명의 가치를 인간의 생명과 등가를 이루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투사되어 있다.
잔디를 의인화시킨 이 작품은 “가느다란 바람이 불어도/흔들리는 잎사귀들이/수 없이 의지하며 모였다”에서 보듯 ‘바람’이라는 폭력에 잔디들이 자신들을 지키는 모습을 나타낸다. 더불어 “비를 머금은 바람”에 저항하기 위해 “허리를 바스락거리며 세우며/하나 둘/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것에서 은연중에 핍박받는 민중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바람’과 ‘풀’이 대립관계를 이루는 것에서 김수영의 「풀」을 연상시킨다. 강렬한 현실의식과 저항정신도 닮았다. 그러나 신지영 시인의 이 작품에서는 근본적으로 잔디를 밟은 화자의 성찰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생명시 쪽에 기운다.
다음 작품 「산다는 것은」은 강한 생명의식을 형상화하였다.

머물 자리가 없어서
비집고 들어간 틈으로
온기가 찾아 든다

죽을힘을 다해
마른 잎을 밀어내고
포르르 날개를 편다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보니
산다는 것은
기어코 견디는 일인가 보다
- 「산다는 것은」 전문

이 작품은 외형적으로는 어떤 생명체가 생명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생명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삶에 대한 강한 생명력을 탐구하고 있다. 시적 주체가 “머물 자리가 없어서/비집고 들어간 틈으로/온기가 찾아 든다” ‘온기’는 생명을 살리는 기본 요소이다. 그러므로 온기를 찾아가는 행위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죽을힘을 다해/마른 잎을 밀어내고/포르르 날개를 편다”에서 보듯 생명체의 살기 위한 노력은 무척 강한 의지의 표명으로 “포르르 날개를 편다”고 함으로써 ‘비상’을 꿈꾸고 있다. 시적 상징으로써 ‘날개’와 ‘비상’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명성을 지키려는 몸짓이다. 더불어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것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의 증거로 생명성을 획득했다는 확실한 표시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시적 주체의 행위가 생명을 위협하는 대상과의 싸움에서 그것을 극복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화자가 “산다는 것은/기어코 견디는 일”이라고 한 것은 수많은 폭력 앞에서 견뎌냄으로써 살아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밖에 신지영 시인의 생태학적 상상력을 구현하고자 하는 시편들에서 「놀이터」는 나무의 상처인 옹이를 상처로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굳은 살이 되어, 마침내 “하늘이 보이는 문을 열었다”고 한다. 문이 닫혀있음이 ‘폐쇄’와 ‘유폐’를 나타낸다면 문이 열림으로써 더욱 생기발양을 의미하여 생명성을 고양하고 있다.
「청포도」는 “아픈 만큼 시퍼렇게 멍이 들고” “못 견딜 비바람에 설익은 새날을/맨발로 맞이하고 있다”고 노래하였는데 푸르게 익는 청포도의 이미지를 통해 성숙한 생명성을 노래하였다.
「꽃불」은 봄이 되어 온 산에 불타듯 피어나는 꽃들의 향연을 ‘꽃불’로 표현하며 “물 머금은 가지마다/박자에 맞춰 바람에 맡긴 꽃불이/빙글빙글 돌고 있다”고 생명의 기쁨과 환희를 환호작약하고 있다. “넌 괜찮아 그대로 있어!”하며 밖에 둔 시적 대상을 태풍이 지나간 뒤에 바라보니 “되레 응원이 되었”는지 괜찮은 화분의 모습에서 화자는 독하게 살아야 한다는 역설이 생명을 지켜주었음을 핑계로 삼고 있음에 지난한 조건에서 생존하는 존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5. 나가며
신지영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괜찮다』는 첫 시집 이후 지금까지 천착해 온 ‘바다와 섬’에 관한 시인의 체험과 기억을 떠올리며 상상력을 펼친 시편들을 이번 시집에서는 보다 심화시키고 있다. 바다와 섬에 관한 그의 상상력은 자신을 키운 그곳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 그리고 안타까운 정서가 깃들어 있다. 그러는 한편 다리가 이어져 본래 섬이 지닌 ‘갇혀있는 공간’으로써의 섬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모습과 사람들이 떠난 장소에 대한 안타까움이 교차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인식과 실존방식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른바 ‘길찾기’를 드러낸 시편들은 신지영 시인의 시적방향의 튼실함이 느껴진다. ‘기독신앙’을 바탕으로 자아실현을 모색하는 태도가 이번 시집의 품격을 높여준다.
그리고 신지영의 이번 시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드러낸 시적 경향은 ‘생명성 탐구’에 대한 상상력을 펼친 시편들로 지금까지 그의 시세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은 것들로 이번 시집이 거둔 값진 소득이다. 시인 자신의 병마와 싸운 체험을 통해 생명성 앙양의 의지가 생성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근대성의 촉진으로 맞은 산업화와 이로 인한 환경문제, 그리고 오늘날 인류가 맞고 있는 기후문제 등으로 더욱 깊어진 고민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의 근원적인 원인이 인간의 탐욕임을 신지영 시인의 시는 묘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잔디’를 밟는 것조차 죄의식을 느끼고 반성과 성찰을 가진다.
신지영 시인의 시집 『닮았다』는 그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시도하는 시집으로 매우 의미있는 작품집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가 지향하는 방향성에 대해 주목한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그대에게 들어서다

그대에게 들어서다
핑계
구멍가게
길섶
폐역에서
닮았다
너에게 할 말 있어
출입 금지
가을이다
정신 차려
그냥
골목길
영락없다

두고두고 감사할 일


제2부 곁이 되는 것

전라선의 그곳
곁이 되는 것
대장간에서 듣다
약초 이름표
휴양림에서
꽃불
섬 길을 잇다
늙은 배 한 척
레일바이크를 타며
간절한 기도가 시작되고
섬 섬길
그 사람은 늘 그랬다
흔적
옹이 터
낙엽 지는 길


제3부 바다로 간 나무

바다로 간 나무
적금대교를 지나며
그 자리
여수의 아침
개미
산다는 것은
당신의 눈물
기다리는 섬
비둘기의 산책길
새벽 한 시
캐스팅, 그 후
섬 그리고 바다
제조 일자
고백하다
민들레


제4부 밤, 예술의 섬에서

밤, 예술의 섬에서
섬에 가면
섬과 섬 그 중간쯤에서
모래 무덤
동백의 언어
채석강
잔디
터널을 지나며
동백꽃 피는 날
청포도
수줍은 고백
꽃이 잔다
길을 찾습니다
비렁길은
고양이 한 마리


제5부 엄마의 그날

엄마의 그날
달개비 꽃
빈들에서 감사
존재
연등천 비가
기도, 그 후
장도를 말하다
아침, 맞이하는 법
마른 잎 그 자리
그 집
일 없다
그대, 흔들리는 풍경
응급실에서
아침
썰물

작품론
섬과 바다, 그리고 길과 생명성의 수사학 / 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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