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미스테리, 스릴러, 첩보, 액션, SF, 초능력, 로맨스를 총망라한 장르 연금술사의 마법
『아카식』은 기이한 재난으로부터 발생하는 미스테리,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휘말리게 되는 위협, 주인공을 돕는 매력적인 조력자의 등장, 거대한 음모와 관련한 정체불명의 조직과 정부의 개입,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의문의 초능력, 시공간을 뛰어넘어 대결을 벌이는 영웅과 악당 등 내로라하는 장르 콘텐츠들에서 우리를 즐겁게 했던 온갖 클리셰들을 맛깔나게 버무려 낸 완성도 높은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터미네이터〉, 〈다빈치 코드〉, 〈미션 임파서블〉을 연상케 하는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세계적인 흥행 콘텐츠들의 클리셰들을 대한민국이라는 무대로 가져와 매력적인 여성 서사로 설계해 낸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작가의 핵심 역량은 배경의 구현이다. 작가는 전작 『슬픈 열대』에서 1990년대 초반 마약 카르텔 전쟁에 시달렸던 콜롬비아를, 『굿잡』에서 1998년 IMF로 몸살을 앓던 대한민국을 자신의 관점으로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시대의 공기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결핍의 냄새가 진동하는 이야기를 써냈다. 이번 『아카식』 역시 배경의 구현이 빼어난 작품인데, 현재를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SF 판타지 장르물로서의 세계관을 탄탄하게 설계한 토대 위에서 현재, 과거, 미래를 오가며 장르 연금술사로서의 장기를 뽐내며 주인공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스피디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작가의 일관된 테마 ‘구원’을 슬픔의 아닌, 그리움의 정서로 말하는 이야기
전작들에 비해 보다 대중친화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사한 것이 『아카식』의 특징이지만 주제의식의 깊이는 여전하다. 작가는 『슬픈 열대』에서는 카르텔 전쟁에 휘말린 한 소녀를 구하려는 전직 북한 특수요원을, 『굿잡』에서는 IMF시절 범죄 현장 청소업계에 들어온 후배를 구하려는 평범한 빚쟁이 여성을 그려냈다. 둘 모두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도 누군가를 구하고자 애쓴 끝에 나름의 방식으로 구원받는다. 그들은 어떤 이별,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를 구하고, 구하기 위해 또 이별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구원하였고 그것은 슬픈 구원이었다. 이번 『아카식』은 다르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이별을 경험하지만 그리움을 끌어안고 끝내 다시 만나거나, 재회를 기약한다. 노스탤지어는 이 작품의 핵심 정서이다. 그것은 사람을 향하기도 하고, 시대를 향하기도 한다. 시종일관 몰아치는 이야기 속에서도 독자를 그리움의 정서에 젖게 만든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이 스스로를, 타인을,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헤어짐으로 끝났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손을 잡고 연대하는 따스하고 희망찬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작가의 ‘구원’은 더 깊어졌다.
‘교단 유니버스’의 두 번째 이야기, 슈퍼 IP 프로젝트의 본격화
『아카식』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과 그로 인한 위협들은 모두 ‘교단’이라는 배후 조직의 만행으로 인해 벌어진다. ‘교단’은 200여 년 전 일본이 메이지 유신이라는 격변기를 거치며 사회가 매우 혼란했을 때 한 일본 과학자가 만든 종교 단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세상 만물의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를 ‘시간’으로 보았고 시간의 법칙을 극복하기 위해 시간을 초월한 비과학적 존재와 현상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당시 민속학자, 음양사, 법사들로 구성된 일명 오컬트 부대가 전 세계를 돌며 어마어마한 양의 보고서와 증거물들을 남긴 후 사라졌으나 2차 세계 대전 이후 그 과학자의 후손들이 ‘교단’을 설립하여 축적된 자료를 토대로 온갖 연구와 실험을 실행해 왔던 것이다. 그 연구 중 하나로 인해 『아카식』의 KTX 열차 실종 사건이 발생한 것이며 주인공 선영은 우여곡절 끝에 거대한 음모의 일부를 밝혀내게 되고 ‘교단’의 프로젝트 하나를 좌절시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사회 각계에 침투해 있던 교단은 포기하지 않았고 우주 개발 사업에 박차를 가해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에까지 손을 뻗치게 되는데 그로 인해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을 작가는 이미 웹툰 데뷔작 『복마전』을 통해 그려낸 바 있다. 작가는 거대한 세계관을 펼쳐낼 준비를 마쳤다. ‘교단 유니버스’는 전 세계, 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준비된 프로젝트이며 『아카식』은 본격적인 IP확장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