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사진작가로 활동해 오다 2023년 계간 ≪시와편견≫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황기모 시인이 첫 디카시집 「이슬의 눈」을 펴냈다. 제1부 “잘 익은 이파리 하나로/ 내 가난한 곳간이 눈부시다”, 제2부 “핏빛으로 노을이 지면/섬진강은 비로소 평화로울까?”, 제3부 “돌아보니 한평생이/ 비 오는 꽃길이었네”, 제4부 “죽음을 모르는 가지가 어디 있으랴/ 죽음보다 예쁜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소제목으로 구성해 총 55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9회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디카시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황기모 시인은 이번 디카시집을 통해 발견의 미학과 간결한 언어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사진으로 포착한 사물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 삶의 이치를 통찰하는 시선이 웅숭깊다. 그 깊이는 김남호 평론가의 추천사에서도 드러나는 바, “그의 디카시는 빼어난 영상이 문장을 훼손하지 못하고, 빼어난 언술이 영상을 소외시키지 않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예술적이면서도 언술하는 문장을 만나 새롭게 형질이 바뀐다.”고, 또한 “그의 영상언어는 시원하면서 신비롭고, 그의 문자언어는 날카로우면서 날렵하다.” 고 말한다.
시집의 문을 여는 첫 시 「여명」은 새벽하늘을 분할하는 다랑이논의 반영을 찍은 사진에서 “하늘이 비로소 질문하고/ 땅이 가까스로 대답하는/ 우주의 찬란한 아침”이라는 우주의 대화를 읽어낸다. 표제작 「이슬의 눈」은 이파리에 맺힌 이슬방울에 꽃이 맺혀 있는 걸 발견하고 “졸린 개구리의 눈으로/ 세상을 엿보는데/ 막 피어난 꽃이/ 내 두 눈을 훔쳐 가네”라는 언어로 형상화한 절창이다. 한편 하동, 섬진강, 평사리 들판 등 장소성에 천착한 시들에서도 웅장한 영상미와 깊은 사유의 힘을 보여준다. “목숨이 걸린 일터는 곧 전쟁터!/ 노량대첩도 저러했을까?// 핏빛으로 노을이 지면/ 섬진강은 비로소 평화로울까?”라는「섬진강 대첩」을 비롯해 「칠불사 영지」, 「평행이론」, 「저승꽃」, 「밀레의 이삭 줍기」등 그의 삶의 터전인 장소에 대한 애정과 시적 형상화도 주목할 만하다.
황기모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디카시는 사진 너머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주는 눈부신 파랑새였다.”고 고백한다. 사진과 시를 직조하는 그의 시세계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