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숙 시인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주체의 존재 방식에 대한 탐구이고 내면세계이다. 그리고 그가 걷는 길은 쓸쓸하지만 온기가 있다.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이 “나의 자의식과 자기발화가 그 안에서 그 자체를 실현할 수 있고, 삶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치적인 대기大氣에 어느 정도의 따스함이 필요하다”라고 언급했듯이(「말의 미학」, 길, 2007, 201쪽) 윤숙 시인이 주체를 ‘중심’에 두는 행위는 자기 자신에 대해 겸허하게 접근하는 방식이고 그 마음에서 나오는 언어는 따스하다. “먼지 쌓이듯 늘어가는 내 허물들/ 옷을 입은 들 가려질까”(「겨울숲」) 싶지만, “바람 속 흔들리며/ 경계의 벽을 넘어서”(「내소사 풍경소리」) 그가 가는 길에는 꽃향기가 난다.
이 길일까 저 길일까
꽃길
손을 뻗어 움켜쥐려 해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길
그 유혹에 빠져
무더기 꽃타래 속으로 들어선다
시간 속 꽃타래
인내하며 풀어나가는
삶의 여정이
나를 다스리는 길일 것이다
언제나 중심은 외롭고
흔들리는 법
만 갈래 이름 끝을 쥐고
달무리 따라 걸어가면
꽃술에 지고 피는
그 작은 우주 속
한 생애의 중심이 잠깐 흔들린다
-「꽃잎, 흔들리는 중심」 전문
‘중심’이 흔들릴 때조차도 주체를 둘러싼 ‘가치적인 대기’에 따스함이 느껴지고 꽃향기가 난다. 그것은 주체가 “이 길일까 저 길일까” 갈등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시간 속 꽃타래”와 같은 삶의 여정을 “인내하며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3연 말미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러한 과정은 “나를 다스리는 길” 위에서 벌어진다. 그가 느끼는 상념을 시인은 꽃이라는 이미지에 기대어 표현한다. 위 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주체와 꽃이 겹쳐진 이미지는 시적 전언의 순도를 높여주는 효과를 낳는다. 강조하건대, 낙화라는 미적 흔적을 강조하면서도, 주체의 속내를 읽게 되는 독법은 윤숙 시의 돌올한 기투企投라 할 것이다.
주지하듯 꽃의 중심에서 꽃잎이 피거나 질 때, 꽃술은 그 무게에 잠깐 흔들린다. “그 작은 우주 속”에서 “한 생애의 중심이 잠깐 흔들”리는 것이다. 이처럼 이상과 정서가 흔들릴 때 시인은 시와 함께 ‘중심’을 잡고자 노력했겠다. 그런 분투하는 주체의 의지가 표제작인 인용시를 포함하여 이번 시집에서 “생살 뚫고 오르는 붉은 뚝심”(「찔레꽃 질 때」)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하나의 꽃나무로 우뚝 서는 아픔 속에 피는 꿈”(「배꽃을 찾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 윤숙 시인에게 시란 “끝없는 흔들림 속에/ 자신의 세계를 세워가고 있는/ 또 하나의 길”(「가을 플라타너스」)이다. 그가 비존재적 공간인 ‘중심’에 다양한 대상을 위치시키며 존재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도 종래는 자신을 향해가고 있다. 이러한 창작 지향과 작업 방식은 “하늘 자궁 속/ 별꽃으로 피어나 산정에 앉는 일”(「옥수수차 끓이기」)과 같다. 그의 시편 하나하나가 “별빛 길 열어가는/ 마음 한 조각”(「넝쿨장미」)인 것이다. 윤숙 시인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물과 세계를 호명하며 대상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가 ‘중심’에 대상을 존재하고자 하는 의식 저편에 그것을 각별하게 생각하며 조명하려는 따스한 마음이 생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윤숙 시인의 시 세계는 끊임없이 “말이 말을 이어가는 어둠의 터널길 열며”(「몽산포 몽돌」) 가고, 그렇게 “저기/ 길이/ 길을 열며”(「해질 무렵 강둑에 앉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