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목표는 ( )가 되는 거야
_이미지 노동자에게는 페르소나만 있고 ‘나’는 없다
아이돌 데뷔를 위해 입사한 연예 기획사에서 요구한 건 가수로서의 실력이 아닌 ‘43’이라는 숫자, 즉 몸무게였다. 데뷔라는 목표만을 위해 1그램이라도 줄이고 싶어서 입이 바싹 마를 때까지 침을 뱉고, 식욕이 도는 날이면 닥치는 대로 먹은 후 살이 찌기 전에 모조리 토해내기를 반복했던 것이 섭식장애로 이어졌다.
말라서 죽든지 미쳐서 죽든지, 확실히 죽을 거라는 예감에 데뷔를 포기한 뒤로는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의 소셜미디어에서 다양한 페르소나들(여행 소녀, 건강 섹시 워홀녀, 삭발 힙스터, 홍콩 감성 헤테로 커플, 오타쿠 레즈비언 등)을 상품화해 얻은 ‘좋아요’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솔직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려고 하면 팔로워들은 가차없이 언팔로우 버튼을 누르고 떠나가버렸다.
“아주 가끔은 핸드폰을 꺼도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페르소나가 나를 잡아먹은 것만 같다고 느낀다. […] 팔로워들은 모두 나의 페르소나가 ‘진짜’고 진짜 나는 가짜이길 바라는 것만 같았다.”
●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 큰 폭력에 비하면
_쉽게 접근 가능한 여자에게 가해지는 폭력
“발리의 밤은 무법 지대였다. […] 편의점에 잠시 들렀다 돌아가는 길에 약에 취한 백인 남자들이 쫓아와 캣콜링을 하는 일쯤은 양반이었다. “How much”라며 말을 거는 남자들은 인종 불문이었다.”
새로운 꿈을 찾기 위해 해외로 나갔지만 동양인 여자, 그것도 혼자인 여자에 대한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잘 수 있는 여자’라고 간주되니 인종, 연령을 불문한 남자들이 폭력적으로 접근해 왔다. 하지만 ‘오빠가 있다’고 말하기만 해도 그들의 ‘시도’를 막을 수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기 위해 어떤 남자와 함께 생활하게 됐고 그와 연인 관계로 발전했지만 그 남자 역시 연인에게 화내고, 손찌검하는 사람이었다. “더 큰 폭력을 피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에 몸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그 관계에서 쉽게 벗어날 수도 없었다. 작가는 자조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만나면서 얻어맞기나 하는 레즈비언이라니.”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남자와의 관계는 끝났지만, 타인에게 그저 몸으로만 존재하게 되는 일은 계속 벌어졌다. 반드시 성별 때문에 일어나는 폭력은 아니었다. “자주 여자를 사랑하고 가끔 남자를 좋아”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난 뒤에도 동성 지인으로부터 원치 않은 성관계를 강요당하기도 했다.
● 어느 날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_나의 불운이지만 나만의 것은 아닌
“중요한 약속을 완전히 잊어버리거나 몸 곳곳에 원인 모를 멍이 생기거나, 했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만났던 친구들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하루의 절반이 통째로 사라지고, 정신을 차려보면 신호등을 건너고 있거나, 통증이 느껴져 정신을 차리면 시멘트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자다가 몸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뜨면 부엌에 가 있고, 잠꼬대로 서늘한 말을 하고, 깨어 있을 때는 자주 화냈다.”
작가는 언젠가부터 나타나는 이상증세에 병원을 찾고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화 증상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겪은 슬픔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 )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의해 끊임없이 소외되고 소거되었던, “맞고 싸우고 절망하고 사라지고 싶었”던 순간들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슬픔들을 마주하면서 카메라를 들었다. 자신과 다르지만 비슷한 여자들의 모습을 찾아 담기 시작했다. 처음엔 여자를 사랑해서, 매체에서 납작하게만 묘사되던 여자들의 다양한 구석을 발견하려는 의지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던 것이지만, 이제 그는 뷰파인더를 통해 자꾸만 어떤 존재로 치환되고 소외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거기에 있지만 실은 거기에 없는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