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마을 한가운데 아이스크림 집을 지을까
산양 젖을 짜내 설탕을 뿌려 꽝꽝 언 우유 얼음을 다듬질해
바람을 발라 붙이면 영원무궁 안 될까
-1부 「오래가는 북극」 부분
권혁연 첫 시집 『오래가는 북극』.
“컵라면으로 집을 지으면/나보다는 오래가지 않을까”(1부 「오래가는 북극」) 시인은 단단하고 무거운 북극을 컵라면으로 치환해 가벼운 놀이처럼 만들어 버린다. 반대로 가벼운 일상의 반복을 무거운 질문의 철학으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의심은 왜 파란 움을 키울까”(1부 「주춤주춤 나를 만들어」) 도마에서 떨어져 구르는 “대파”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요리법은 의식의 흐름 난 비빔밥을 가장 좋아하고”(5부 「혀는 상상한다」) 시인은 ‘되감기 기법’을 요리법으로 선택해서 시간의 순서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간혹 “비빔밥”처럼 섞여 있기도 하다. “유리 다관”에 찻물을 부어 “히비스커스 문이 열리는 시간”(1부 「아침의 기분」)을 불러오겠다고 선언한다.
그 시간들은 “낙타가 구미호를 낳다가 바구미로 환생하는 뻔한 스토리”(1부 「뻔한 스토리」)에서 시작해 “빨간다리파란다리하얀팔검정팔다리긴빨강짧은파랑중간노랑줄무늬”(1부 「내 기분은 만만」)로 건너뛰다가 “배고파 우는 거 같진 않았고/죽음처럼 낮은 노래를 자기에게 불러 주”(2부 「수용 생활」)려 나에게로 돌아오는 일상이고 반복이다. 날달걀, 싹 튼 감자, 콩나물, 두부, 행주, 이불, 마스크, 갈비탕집, 국숫집, 무당거미 등 대부분 일상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은 판타지이고 “어디서부터였든 판타지다.” (5부 「모자란움직씨의 생활동화」) 결국은 사랑얘긴데 “할아버지 아니 할머니가 되어서도 사랑했다”(5부 「이 이야기는 사랑얘기다」)
불안한 정서가 깊게 밴 일상 속을 일관된 하나의 행위가 구멍처럼 흐른다. “꽃잎을 뒤집어쓰고 서로 웃다가 동그랗게/웃음을 가두고 입술을 조금씩 깨물어 먹는 이불 속”(3부 「꽃과 생활」)에서 이불전쟁을 하면서, 어머니를 추억하면서. “기억이 없다는 얼굴 표정에/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4부 「꽃과 생활」) 죽음과 욕망을 동시에 떠오르게 하는 「장미여관」에 습관처럼 꽃을 놓아둔다.
검은 피아노 배경에 열아홉 살 장미여관이 꽃핀다
흰 국화를 선물하던 내 사랑의 습관이 살고 있는 장미여관
국화 한 송이 곱게 싸 들고서 손 흔들어
장미여관이요
-4부 「장미여관」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