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에로스와 파토스가 지나가는 장소로서의 몸
- 심종록 시집 『의기양양하게 쓸쓸한』
이승훈 시인의 추천으로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심종록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의기양양하게 쓸쓸한』(달아실 刊)을 펴냈다. 달아실시선 82번으로 나왔다.
이번 시집 『의기양양하게 쓸쓸한』은 3부로 구성되었는데, 그 구성이 독특하다. 〈1부. 동백〉은 순수하게 텍스트로 이루어졌고, 〈2부. 나는 너다〉는 시인이 직접 찍은 버섯 사진을 함께 싣고 있으며, 〈3부. 도색잡기桃色雜記 - 유준의 그림에 붙여〉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화가 유준의 춘화春畫를 함께 싣고 있다.
이에 대해 심종록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간략한다.
“시와 그림과 사진과 잡문/ 무슨 말이 또 필요할까.”
시니컬하다. 시집을 보면 알 수 있을 테니,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하다. 그런데 그 시인의 말이 정답이다. 시집을 읽어보면 안다. 시는 시로, 그림은 그림으로, 사진은 사진으로, 잡문은 잡문으로 그렇게 읽고 보라는 그이 말에 토를 달기 어렵다.
이번 심종록의 시집을 편집한 달아실출판사 박제영 편집장은 이번 시집을 “모호하다. 불편하다. 어둡다. 그래서 내 속을 다 들킨 것만 같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심종록의 시집 『의기양양하게 쓸쓸한』은 내용과 형식 두 측면 모두에서 기존의 ‘시’라는 장르와 비교하자면 조금은 아니 한참 낯설다. 이번 심종록 시집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머나먼 쏭바강’이다. 그런데 그래서 심종록이다 싶고, 그래서 흥미롭고, 그래서 마침내 묘한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시인 심종록은 편측마비의 몸을 끌면서 불편부당한 세상을 건너고 있는 사내다. 그가 운다면 그의 불편한 몸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이 불쌍해서다. 불구의 세상에 갇힌 당신의 온전한 몸이 불쌍해서다. 온전한 정신을 불편한 몸으로 위장한 그는 얼마나 표리부동한 사내인가. 그가 풀어내는 ‘의기양양하게 쓸쓸한’ 보잘것없는 존재들의 덧없어서 아름다운 이야기에 내가 귀를 기울이는 까닭이다.
시인 심종록은 고수다. 하수인 내가 감히 무엇을 더하고 감할 수 있겠는가. 그는 버섯에서 이미 ‘나와 너는 하나다’라며 갈파喝破하고, 그는 유준의 춘화에서 ‘삶과 죽음, 에로스와 파토스가 지나가는 장소로서의 몸’을 갈파한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더하거나 감하겠는가. 부처님 손바닥이다.”
그의 시집을 읽고 마음에 씨앗 하나 얻을 수 있으면 충분하겠다. 그의 시집을 읽고 당신도 ‘의기양양하게 쓸쓸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