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선비,
산천에 성리학의 도덕적 이상세계를 투영하다
도산구곡(안동), 무흘구곡(성주), 화양구곡(괴산) 등 우리나라의 풍광 좋은 계곡이나 하천에는 조선 시대 선비들이 설정하고 경영한 구곡이 자리 잡고 있다. 특정 구간에 아홉 물굽이를 지정해 이름을 붙이고, 그곳에 정자나 정사 등을 지어 은거의 거처로 삼아 지내면서 성리학의 도덕적 이상세계를 투영했던 문화가 구곡문화이다. 단순히 풍경 좋은 곳의 아홉 굽이가 아니라 당대 지식인들의 정신세계와 자연관, 그들이 추구한 도학(道學)의 세계와 이상향이 서려 있는 곳이다.
구곡문화의 원류는 중국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의 무이구곡(중국 푸첸성)에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주자를 최고의 스승으로 삼았기에 주자가 경영한 무이구곡을 본받아 자신이 머무는 곳의 자연을 대상으로 각기 구곡을 경영하면서, 주자의 무이구곡가를 본떠 구곡시가를 읊고, 구곡도를 그려 완상하며 구곡문화를 심화시켰다. 이런 구곡문화는 자연과 문학, 미술, 비평이 조화롭게 혼합되어 빚어진 ‘유학의 꽃이자 진수’로 일컬어진다.
성리학과 문학(구곡가), 예술(구곡도), 건축(누정)의 결합
조선 선비문화의 보고가 되다
저자 김봉규는 절집, 현판, 누정 등 우리 문화 예술과 동양 사상에 관심을 두고 조선 선비들의 삶과 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이다. 『조선의 선비, 구곡에 노닐다』에서는 대표적 구곡 20여 곳을 답사하고 그곳의 사연과 구곡시, 관련 사진과 구곡도를 더하여 한 권으로 정리했다. 최근 들어 구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지방자치단체가 대표적 구곡들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새로운 문화관광산업 콘텐츠로 개발하고 있다. 괴산의 화양구곡은 명승 제11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구곡의 수는 조사가 진행될수록 늘어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150여 곳의 구곡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경북에만 40여 곳의 구곡이 있어 대구경북에 특히 구곡문화가 성행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비문화가 유달리 발달했으며 빼어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이황을 비롯해 걸출한 성리학자도 많이 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조선 선비들의 구곡에 대한 다양한 시각, 무이구곡을 그린 무이구곡도의 수용과 변화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보여준다. 이황에서 비롯된 도산구곡(안동), 송시열의 화양구곡(괴산), 정구의 무흘구곡(성주) 등 조선 선비들이 경영한 대표적 구곡 20여 곳을 찾아 관련된 시, 그림, 일화 등을 풀어내며 구곡문화의 생생한 인문학적 가치를 알려준다.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각박해진 현대야말로 선조들이 일궈놓은 소중한 문화유산인 구곡문화를 되살려야 할 때이다. 옛 선비들은 자연을 단순히 풍류의 대상으로만 삼은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올바른 심성을 기르는 공간으로 인식했다. 구곡문화를 통해 선비들이 추구한 가치관과 세계관, 삶의 태도 등을 볼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일상의 여유를 되찾고, 보다 충만하고 행복한 삶으로 향하는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