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법이 지배하는 나라인가?”
서울지방법원, 헌법재판소, 대형 로펌, 형사사법기관 공수처까지
법률가라면 가고 싶은 모든 기관을 거친 초대 공수처장의 첫 책!
대한민국에 새로운 형사사법기관이 출범했다.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약칭 ‘공수처’이다. 공수처의 설립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야당 내에서는 공수처가 살아 있는 권력(당시 문재인 정부)을 봐주려고 “다른 수사기관에서 사건을 이첩받아 깔아뭉갤거고, 죽어라고 야당만 수사할 것이다.”라며 공수처가 생기기 전부터 ‘정권 비호처’나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2019년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당시 민주당은 여야 4당 간 합의를 이뤄내며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 지정 등에 전격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공수처법 제정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그러자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 처리에 자유한국당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항의하면서 농성과 충돌, 그리고 고발전으로 이어졌고, 2020년 7월 15일이 공수처법 시행일이었지만 초대 공수처장의 임명이 여야의 힘겨루기로 지연되어 6개월가량이 지난 2021년 1월 21일이 되어서야 김진욱 초대 처장의 임명이 이루어지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우리나라에서 형사사법이 크게 변모하는 격동기에 공수처라는 새로운 조직의 책임자로서 형사사법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김진욱 초대 처장의 첫 책인 이 책은, 33년간 법조계에 몸담아오면서 생각해왔던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관한 중요한 주제들- 우리 사회에서 법이란 무엇인가? 정의와 공정이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법이 지배하는 나라인가?-에 대해 고찰한 초대 공수처장의 기록이다.
그는 서울지방법원, 헌법재판소, 대형 로펌, 형사사법기관 공수처까지, 법률가라면 가보고 싶은 모든 기관을 경험한 법조 전문가 중 전문가이다.
공수처장으로서 그는 “살아 있는 권력 수사하지 못할 바에야 우리는 없는 게 낫다.”라고 강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공수처에 대해 무능하다, 편향적이다라는 평을 하기도 했고, 공수처 내부 검사들의 대거 조직 이탈 등 초대 처장의 임기 3년 동안 기반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다.
그가 임기를 마치고 나서 이 책을 펴낸다. 33년간 법조인으로서 천착해 온 헌법과 법의 지배에 관한 생각들을 정리했다. 함무라비법전, 로마법 등 서양 법체계를 비롯해 중국의 유교사상과 법가사상, 그리고 일본의 형사법 등 동양 법체계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우리 시대의 정의와 공정이란 무엇인지,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지, 법률가로서 그 의미의 원류를 살펴본다. 법에 관한 인문교양 책이자 법학 교양책이다.
공수처의 운영과 초대처장으로서의 심경에 관해서는,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오병두 홍익대 법과대학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읽을 수 있다(〈Q&A 공수처장이 말한다〉 챕터). 수차례의 대면 인터뷰와 지면 인터뷰를 통해 1기 공수처의 공과(功過)와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하여 심도 있게 답했다.
“공수처 설립의 이유는 무엇인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권력형 비리’가 가져온 공수처의 존재 이유
대한민국에 검찰이라는 형사사법기관이 있음에도 왜 공수처가 탄생한 것일까? 시작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은, 1996년부터 시작된 공수처 설립의 동력은 우리 사회에서 소위 힘 있는 사람이 그동안 제대로 수사받거나 처벌받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은 죄값 이상의 처벌을 받는 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생겨났다. 대통령의 자녀나 친인척 비리는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일이 많았고, 기업 재벌 회장들은 “횡령이나 배임, 탈세 등으로 기소되면 1심 재판부는 대개 징역 5년을 선고한다. 그러면 2심 재판부는 이러저러한 사유를 들어서 징역 3년으로 감형하여 집행유예가 가능하게 하고, 실제로도 집행유예의 판결을 선고한다.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한다.”는 ‘재벌의 3·5 법칙’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부패 문제, 특히 고위공직자와 그 친인척의 부패범죄에 대한 공정한 수사와 기소를 과제로 한 공수처 설립 움직임은 1996년 참여연대의 입법청원에서 시작되었다. 부패방지법 시행 등 여러 입법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공수처법이 통과되기에 이르렀고, 국민의 열망 속에서 탄생한 공수처가 그 첫발을 내딛기까지 25년의 시간이 걸렸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이 공수처 설립을 가져왔다면 공수처가 그런 설립 취지에 맞게 제대로 작동하고 기능하여 우리나라가 힘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의 입법취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면서 공수처 설립의 의의와 과정을 설명한다.
“민주공화국이란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다.”
민주공화국에서 나라의 주인은 능동적 국민!
이 책은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구분해 말하고 있다. 법의 지배는 권력자에 의한 자의적 지배가 아니라 합리성과 객관성을 갖추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법이 지배한다는 말이다. 반면 법에 의한 지배는 권력자가 법을 수단 삼아서 자의적 통치를 할 수도 있는 체제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시작하는 우리 헌법의 공화국 정신은, 법에 의한 지배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법의 지배를 지향할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형사사법에서 법의 지배는 권력자의 자의에 따라 법이 적용되고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정된 법의 명백한 위반이 확인된 경우에만 처벌된다는 의미이다. 예전에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자백을 강요하고 여론몰이식으로 수사하던 관행이나 일단 구속하고 보자는 식의 관행 등은 법의 지배 원칙상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민주공화국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이므로 최종적으로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주권자 국민은 결정에 대한 책임도 부담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국회 같은 국가의사 결정기관이 있지만 이들 권력기관은 국민으로부터 선출되는 대의기관이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국민의 공복(公僕)일 뿐이다. 따라서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은 나라의 주인으로서 자유와 평등을 권리로 누리는 대가로, 민주공화국을 민주공화국답게 만들 책임도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조 1항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민주’는 국민이 주인 된다는 의미로, ‘공화’나 ‘공화국’은 법이 지배하는 나라로 이해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 못할 바에야 우리는 없는 게 낫다.”
초대 공수처장이 말하는 공수처의 현재 그리고 미래
공수처는 극심한 논란 끝에 태어났고 출범 후에도 논란이 많았다. 공수처가 여야 간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과 논란 속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수사대상이 고위공직자이다 보니 공수처의 수사나 기소에 대해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았다. 또한 국민들은 고위공직자 부패 척결과 검찰개혁을 염원했다. 이러한 논란과 열망 속에 탄생한 공수처였기에 초대 처장으로서의 애로점도 있었다고 말한다.
“공수처장으로 부임한 다음 최우선 과제로 검사와 수사관들을 선발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있던 2월 초부터 공수처 1호 사건은 무슨 사건으로 하실 거냐는 질문을 출근길에 거의 매일 받았다. 당시에 벌써 어떤 언론에서는 공수처가 별 성과가 없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설립 초기라서 그런지 관심이 과하셨던 것 같다.”라고 인터뷰에서 소회를 밝혔다.
공수처는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기보다는 무능과 편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또 공수처 검사들 상당수가 임기 중도에 사직하면서 기관장으로서 무력감과 좌절감도 컸다. 저자는 공수처 조직을 좀 더 안정적으로 이끌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많이 느꼈다고 말한다. 3년 임기 동안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을 만큼 힘든 자리였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국민과의 약속인 3년 임기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 못할 바에야 우리는 없는 게 낫다.”라고 공사석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적도 있고 조용한 수사, 성찰적 권한 행사나 수평적 조직문화 같은,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하려고 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 책에는 앞으로 법적, 제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공수처의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인원 부족의 애로점, 수사대상자 한정의 한계, 수사권과 기소권에 관한 공수처의 권한 등 개선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공수처 3년, 공은 없다고 보는 것 같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공수처의 공과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한 때
‘무소불위’의 형사사법기관 공수처가 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1기 공수처가 출범했지만, 김진욱 초대 처장이 내세운 지향점은 성찰적 권한 행사, 오만하지 않은 권력, 수평적 조직문화였다. 수평적 조직문화라는 말은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성찰적 권한 행사’라는 말은 김진욱 처장 본인이 만든 말이다. 헌법 제1조에서 시작한 발상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우리 헌법 제1조는 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한다. 여기 쓰여 있는 대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왔다면 국민께 받은 권력, 국민께 되돌려 드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에서 이런 말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한다면, 우리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일하고 있는지, 법과 원칙에 맞게 일하고 있는지 항상 스스로 되돌아보면서 권한 행사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늘 자기를 되돌아보면서, 성찰하면서 권한 행사를 하는 것인데 그래서 ‘성찰적 권한 행사’라고 이름 붙였다. 만일 이런 식으로 권한을 행사한다면 국민 앞에서는 늘 겸손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늘 되돌아보면서 권한 행사를 하는데 어떻게 ‘오만한 권력’이 되겠는가.”
공수처 설립 1주년에 참여연대에서 평가보고서가 나왔다. 〈공든탑, 공수처〉란 제목으로 “위기의 공수처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였다. 이 보고서를 보면, 공수처의 성과가 미비하다고 평가하지만, 단 하나의 성과가 있다면? 하고서 꼽은 것이 ‘조용한 수사’다. 다른 수사기관의 경우 주요 사건 수사할 때 강제수사를 예고하거나 하는 식으로 조용하지 않게, 수사하는 경우들이 있었던 것으로 언론 보도가 되고 있지만 공수처는 피의사실공표나 공무상 비밀누설 없는 ‘조용한 수사’를 지향하고자 했다.
이 책은 언론이 제시하는 뉴스의 방향성에 흔들리지 않고 1기 공수처의 공과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공수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다!”
법 없이 사는 삶에서 법과 더불어 사는 삶으로
이 책의 제목 『공수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제목을 차용했다. 그 이유는, 저자가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의 심사를 받으면서 지원 동기에 대한 자소서를 제출했을 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인용하며 자소서를 시작하고 끝맺기도 했기 때문이다. 새로 생긴 공수처야말로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산대사가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시에서 말했듯이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어지럽게 걷지 말고 바르게 걸으면서 길도 고쳐야 한다. 내가 오늘 가는 길이 뒷사람에게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초대 처장으로서의 심경을 대변했다.
지금처럼 사회가 복잡하고 전 세계적으로 실시간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에서는 더 이상 법 없이, 법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사는 삶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양창수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전 대법관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국가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대해 가능한 한 다양한 각도에서 가능한 한 평이하게, 그리고 여러 가지 실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공수처는 그 중에서 하나의 대상을 이룬다. 그러므로 법을 꼭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보없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법을 전공하려고 하거나 법률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법에 관심을 가지고 법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법과 관련하여 한 번쯤은 생각하고 고민할 만한 중요한 쟁점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