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우도로 등단해 천만 관객 ‘관상’을 쓴 백금남 작가가 젊은이들을 위해 내놓은 청춘 일기. 저자는 초짜 상담 교수를 통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학생들과 걸음을 같이 한다.
젊음은 찬란하지만 가장 불확실한 시기다. 그러므로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그 불투명한 시기에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 젊은이들의 고민이 있다.
불안하기만 한 학교생활, 언제나 자행되는 획일적인 가르침. 죽으라고 알바를 뛰어도 모자라는 학비, 오르지 않는 성적, 불투명한 미래….
무지막지한 현실 속에서 오늘의 학생들은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도 없다. 현실은 여전히 버겁기만 하고, 다가온 멘토는 미래는 본래 불확실한 것이라며 절망하지 말라며 어깨를 토닥인다. 절망은 하지 말라고 해서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길을 걸었을 때 오는 것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걷는 길이 바른길인지 잘못된 길인지 잘 판단하지 못한다. 왜냐면 이 각박한 사회가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하다. 그 불안한 길을 초자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걷는다. 함께 걸으며 그들과 함께 절망하고 희망한다. 때로는 친구가 되고, 때로는 그들의 제자가 된다. 스승이 될 때는 커다란 화두를 주고, 그들을 이끌 때는 회초리가 된다. 결코 어깨나 토닥이는 멘토가 되어서는 오히려 그들에게 절망만 안겨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과 하나가 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리하여 이 사회 속의 살아내기를 시도한다. 그는 직업의식의 전환만이 살길임을 주장하며 그들에게 호되게 당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면서 전환의 세계를 모색해 나간다.
작가는 자서에 이 책의 핵심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이 글은 젊은이들을 대하면서 늘 가지고 있었던 속마음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계를 돌아보면 존경받는 주자들이 드문 것 같다. 반(反)기업 정서로 인해 사회적인 분위기가 성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아직도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한 몰지각한 주자들에 의해 이 나라가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폐해는 우리 젊은이들이 고스란히 지고 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터를 못 찾아 떠도는 인생이 수두룩하다. 기업의 도덕 불감증은 민망할 정도이고 나라를 운영하는 정치가들은 제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다.
중략
오늘을 살기 위해
아버지는 피를 팔고
어머니는 불판을 닦으러 다니고
자식은 실험실의 기니피그가 되어야 하는
혼돈의 시대.
절망할 것인가?
선택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다시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하고 싶은 말은 본문에서 다했다.
지금은 절망이 아닌 선택, 선택이 아닌 전환의 시대.
기도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지금은 돌일지라도 전환을 통해 하늘의 별이 되기를…….
‘천하의 지식인이여, 내가 와서 물으라’란 책을 출판하고 기자 간담회를 가진 자리였다. 어느 신문사 기자가 저자 백금남 선생님에게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계시냐고 물었을 때 ‘금강경’을 출판하려 한다고 대답했다. 그때 이미 피플워치에서는 작가 선생님의‘소설 금강경’을 편집하고 있었고, 선생님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청춘 소설을 얻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소설 금강경’을 출판하고 나서야 선생님의 소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작품이 바로‘멘토-일어서라 청춘아’였다. 평소 선생님이 글을 쓰면서 젊은이들에게 가진 속마음을 그대로 기록한 작품이었다. 제목 그대로 젊은이들의 절망과 희망, 그리고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져 이 혼란의 시대에 작가 선생님의 젊은이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식을 위해 피를 파는 아버지. 불판을 닦으러 다니는 어머니, 자식은 실험실의 기니피그가 되어 생사의 현장을 건너간다. 하지만 몰지각한 이 사회의 책임자들은 오히려 혀를 차고 있다.
작가는 묻고 있다.
절망한 것인가? 선택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작가는 대답하고 있다.
오로지 전환만이 필요하다.
이 소설의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여러 의견이 모아졌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이 충격적인 고발적 요소 때문에 출간되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대표는 다음의 말로 출간 이유를 분명히 했다.
-제가 이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조용한 공부방 하나 얻어주지 못하는 콩나물 장사 어머니와 공부하기 위해 조용한 곳을 찾던 학생이 전환을 통해 화해하고 상생하는 모습 때문이에요. 이 책은 그 절망적 삶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에피소드
책을 출간할 때마다 제목 때문에 갈등을 겪기 마련인데 이번에도 그랬다. 작가 선생님의 뜻을 존중하여 대부분 그대로 작업하기 마련이지만, 이해하기 힘든 제목이거나, 납득되지 않는 제목이 있으면 상의를 드릴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작가 선생님은, ‘멘토’라고 제목을 정해 주었는데, 군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부제목을 문제 삼은 것이다.‘일어서라, 청춘아’보다는,‘청춘아, 일어서라’가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어감상 어떤 쪽이 좋을지 선뜻 선택할 수가 없었다. 별것 아닌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매사 선택하고 살아야 하는 우리 인생사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작가 선생님의 뜻을 존중하여 그대로 가기로 했는데 그분의 말씀이 심상찮았다.
-선택이 삶 자체가 되어 절망이 되면 전환은 구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