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점에서 만나는 애니미즘
인류세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늘의 사상으로서 애니미즘을 되살리다
폭넓은 경험과 시야를 가진 인류학자와
경이로울 만큼 명석하고 논리적인 불교학자가
서로의 이야기를 감싸며 새로운 존재론의 지평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흔하디흔한 존재로부터 펼쳐지는 장엄한 만다라
인류의 꽉 막힌 진로를 열기 위한 열쇠가 애니미즘에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저편 세계는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 만약 그 사이를 왕래하는 통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경험될까? 곰, 새, 엘크, 개구리, 풀, 나무 같은 다종의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인간은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인간 아닌 생명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며 무얼 말하고 싶은지, 이를 우리가 섣불리 환원하지 않고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을 살다 문득 온갖 만물과 이어진 ‘신’을 느끼는 일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평의 존재론과 연결될 때, 우리 삶과 세계의 흐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인류세의 특징들을 만든 고정된 이원론을 넘어서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시도는 무엇일까?
애니미즘은 우리가 자력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아님을 일깨우며, 우리를 무시무종의 세계로 이끄는 타력의 바람 속으로 안내한다. 그곳에서는 아주 작고 흔한 사물 혹은 생명에서도 저마다의 만다라가 피어난다. 어떤 존재든 영혼을 통해 여러 세계를 왕복 순환하고, 세상 만물은 저마다 독립해 있으면서도 서로를 포섭하며 잇달아 뒤얽힌다. 그렇게 흔하디흔한 존재로부터 장엄한 만다라의 그물망이 펼쳐진다.
인류는 우리 스스로 세계의 진로를 막아버린 과정을 냉철히 돌아보고 이제 막았던 통로를 열어야만 한다. 인류의 꽉 막힌 진로를 열기 위한 열쇠가 애니미즘에 있다.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
왕복하고 포섭하는 이야기들
『오늘날의 애니미즘』의 저자 오쿠노 카츠미는 인류학자이고 시미즈 다카시는 불교학자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힘을 합쳐 다양한 소재와 방법을 동원하고, 나아가 사유의 방법론 자체를 새로이 고안하면서 애니미즘이라는 거대한 주제와 씨름한다.
오쿠노 카츠미는 ‘존재론의 전환’이라 불리는 인류학 흐름을 연구하는 일본의 인류학자로서, 존재론의 인류학을 책, 잡지, 웹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왕성한 활동과 실력으로 일본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인류학자다.
시미즈 다카시는 불교학자이며 라이프니츠와 미셸 세르 연구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대승불교의 창시자인 나가르주나, 일본 헤이안 시대의 승려 구카이,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 도겐 등의 불교 철학 연구에 몰두한다. 수려하고 묵직한 논리 구사로 정평이 난 학자다.
두 사람은 연구 이력도 성격도 상반되는데, 이 책에서는 이 점이 오히려 논의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오쿠노 카츠미는 현장 연구 경험이 풍부한 인류학자답게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인도네시아의 푸난족, 시베리아의 유카기르족 등의 민족지적 사례를 통해 애니미즘 존재론을 논의한다. 시미즈 다카시는 초기 불교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는 사유 전통 속에서 이항대립 사고를 분석하는데, 특히 라이프니츠, 미셸 세르, 브뤼노 라투르, 그레이엄 하먼 등이 전개한 서양 철학을 분석적으로 끌어오는 한편 복수의 이항대립 조합을 사고하기 위해 ‘삼분법’을 제안한다. 삼분법이란 세 종류의 이항대립을 조합하여 그 연결을 변화시킴으로써 그것들의 이원성을 조정한다는 방법론이다. 초기 불교에서부터 이야기된 사구분별(四句分別)을 제4렘마, 혹은 테트랄레마로 해석하면서 초기 불교와 현대 철학의 교차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4장은 오쿠노 카츠미가, 2장과 5장은 시미즈 다카시가 썼으며, 3장과 6장에는 두 사람의 대담을 실었다. 오쿠노 카츠미가 애니미즘 존재론에서 왕복순환하는 영혼의 차원을 다룬다면, 시미즈 다카시는 상호포섭하는 세계의 차원을 다룬다. 두 사람이 각자 주목한 차원이 교차하며 애니미즘 지평의 구체성과 추상성은 더욱 풍성해진다.
동아시아 존재론으로서 애니미즘
이제 우리가 질문을 풀어갈 차례
이 책에서 불교 철학은 존재론의 위상을 갖는다. 동아시아의 불교 철학이 서양 철학과 동등한 형이상학의 지위를 갖는다는 뜻이다.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 속에서 새로운 인류학적 이론이 생성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우주론’을 논하기 위한 사상적 토대가 제시된다. 역자 차은정은 이 책이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 책은 인류학과 불교의 만남에서 어떤 앎이 생성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서로를 포섭하고 또 포섭당하며 끝없이 펼쳐지는 또 다른 그물망의 세계다. 생성의 인류학이자 존재론의 불교학이다. 이러한 존재론들을 앞으로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가 이 질문을 풀어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