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어머니와 소망의 언어, 그리고 연륜의 숙성을 인식하는 감각
이번에 펴내는 디카시집 『아흔아홉 소녀의 꿈』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총 52편의 디카시를 수록하고 있으며, 시종일관 요양병원에 있는 일백이 세 어머니를 시적 인식과 대상의 중심에 올려두고 있다.
1부 〈아흔아홉 소녀의 꿈〉에 수록된 시들은 모두 그와 같은 방향성을 갖고 있으며, 하나의 집중적인 주제가 좋은 디카시로 서술부의 세항(細項)을 이룬 형편이다. 너무 연로하여 치매기가 있는 어머니가 새로운 꿈을 꾸고 소망을 표현하기는 어려울 터이지만, 그 어머니를 바라보며 시를 써나가는 딸에게 있어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세계의 모습이다. 기실 내일을 꿈꾸는 일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경의 요엘 2장 28절에서는 ‘너희 노인은 꿈을 꾸며’라는 구절이 있다. 이 시에서의 어머니는, 문필이 뛰어난 그 딸의 감각기관을 빌려 꿈꾼다. 눈동자와도 같은 모양의 나무 사이로 ‘내 새끼들’을 걱정하는 「모정」, 여리고 푸른 풀줄기 하나를 문틈에 두고 새로운 날의 걸음마를 유추하는 「아흔아홉 소녀의 꿈」이 그 예증이다.
이 시집의 2부 〈햇살 어머니〉의 시들은, 여전히 1부의 어머니 상념을 이어받고 있다. 다만 그 시각의 범주를 보다 넓게 개방하여, 연륜의 경과와 숙성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하고 또 그 감각을 예리하게 포착한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이 있고 늙는 날이 있다. 언젠가는 모두 경험하게 될 이 인생의 여정에서, 존장(尊丈)을 귀히 여기는 것은 그것이 결국 인식 주체의 내일을 말하기 때문이다. 햇살이 만들어준 그림자에서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찻잔 받침용 쟁반’을 소환하는 「오후 2시」, 도로변 하수구의 철망 사이로 초록색 풀잎들이 빛나는 「빠지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등은, 그 어디에나 시간의 경과를 관조하는 시인의 정제된 눈길이 뒤따르고 있다.
지난밤
고열로 잠 못 이루셨을 어머니 위해
하나님 물수건 올려주시네
─ 「요양원 전보」 전문
「요양원 전보」라는 시다. 사진의 중동을 가로지르는 공간에 나무 등걸 하나가 떠올라 있고, 그 나무 아래 부분에 물방울 둘이 나란히 맺혀있다. 동서고금의 많은 시인 묵객들이 나무를 사람의 생애에 비유해 왔으니, 여기 이 나무 또한 그 반열에서 비켜설 이유가 없다. 시인은 나무에서 또 어머니를 보았다. 그것도 지난밤에 ‘고열로 잠 못 이루셨을 어머니’다. 하나님이 그 어머니에게 물수건을 올려주셨다는 착상은, 사람의 의표를 찌르듯 예민하고 명료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손길의 이름을 절대자로 상정했다는 데 있다. 그만큼 시인에게 있어 어머니는, 물러서서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세상을 관찰하는 시인의 맑고 깊은 눈
3부 〈모든 꽃은 눈물로 핀다〉의 시들은, 여름날 맥고 모자처럼 흔하게 마주치는 일상의 경물(景物)들 가운데서 새롭고도 상찬(賞讚)할 만한 관점을 거두어들인 사례다. 시인을 시인이게 하는 힘은, 그가 범상한 사람들과 다른 각도의 눈을 가진 데서 촉발한다. 이는 선험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인 자신의 노력으로 가꾸어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짐작건대 황시언 시인은 이 양자를 다 갖추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기의 시들이 이토록 도전적이면서 안정적일 수 없다. 자동차 지붕 위에 날렵하게 올라앉은 고양이를 ‘가시 단 생명’이라고 한 「블랙박스」, 시인이 가장 잘 활용하는 빛의 그림자로 사소한 폐품들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는 「감사」 등의 시들이 그렇다.
꽃이 졌다고 꽃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물은 최선을 다해 안아줍니다
누군가의 마지막 생을 빛나게 하는 것은
늘 소리 없는 기도의 눈물이지요
─ 「세상의 모든 꽃은 눈물로 핀다」 전문
밝고 화사하기 이를 데 없는 시다. 거기에다 사진 한 장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훈훈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의 모든 꽃은 눈물로 핀다」라는 시 한 편에서, 우리는 문득 정체 모를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정확하게 관찰해보면 길 위에 물이 고여 있고, 여러 빛깔의 낙화가 그 위에 분분하여 잘 조성된 연못을 연상하게 된다. 여기에 덧붙인 4행의 시가 일품이다. 시인은 낙화(落花)도 꽃이라고 강변한다. 물이 ‘최선을 다해 안아줄 때’에는 이렇게 아름다워진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의 마지막 생을 빛나게 하는 것이 ‘소리 없는 기도의 눈물’이라고 부연한다. 꽃이 지는 자리에서 우리 인생의 철리(哲理)를 발견한 공로가 이 시에 있다.
선물처럼 얻은 영상과 그 시어
디카시의 한 구성요소로서 사진은, 시인이 애쓰고 수고한 만큼 좋은 영상을 얻기 마련이다. 미상불 프로 사진작가들도 좋은 작품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한 각고의 분투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 어느 순간 선물처럼 빼어난 영상을 얻게 되는 체험이 여러 사람에게 있다. 시 또한 그렇다. 그 즉순간성의 사진에 몇 줄의 시어를 결합하고 이를 SNS로 실시간 소통하는 디카시의 정체성에 대해, 필자는 ‘영감과 섬광’이란 이해를 갖고 있다. 시인의 창작 역량과 노력에 영감을 더하고 섬광의 시간이 동시에 작동하는 예술형식이란 뜻이다. 이 시집의 4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말〉에 실린 시들은, 앞서 다른 시들도 그러했지만 그 축복의 선물 같은 시편들이다. 도로변 한쪽으로 바람에 밀린 낙엽들에 의해 새 주차선이 형성된 「아빠의 퇴근 시간」이나, 감나무 잎 위에 놓인 두 송이 감꽃을 ‘일백이 년 잘 살아주신 엄마’께 드리는 ‘하늘나라 아버지의 선물’이라고 보는 「결혼기념일에」 같은 시가 바로 그렇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꽃
그러나,
부활도 알리는 꽃
─ 「말씀의 꽃」 전문
「말씀의 꽃」이라는 시다. 사진은 백 년에 한 번 핀다는 대나무꽃이다. 일찍이 고산 윤선도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고 노래했으나, 대나무는 아열대 식물로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그 뿌리는 단단하고 깊이 엉켜서 성벽도 무너뜨릴 정도다. 성장판에 마디가 있어서 일정한 높이마다 매듭을 짓기 때문에, 공중에 뿌리를 둔 것처럼 자라 30미터까지 클 수 있다. 이 대나무에 사진과 같은 꽃이 피는 것은, 대체로 백 년에 한 번이라고 알려져 있다. 시인은 대나무에 얽힌 속설을 빌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알리는 꽃이라고 썼다. 이와 같은 모든 전설적 언사들을 결집하여 ‘말씀의 꽃’이라고 했으니, 이 한 장면과 그에 연대한 시의 중량이 그야말로 가볍지 않다.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황시언의 디카시들은, 우선 피사체를 붙들어 시의 소재로 편입하는 감각이 놀랍고 특히 그 와중에서 빛과 그림자의 영역과 효용성을 잘 활용한다. 그의 렌즈에 당착한 사물이 사진으로 변모할 때, 거기에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상징과 축약 그리고 전혀 방향이 다른 의미의 분화가 결부되는 때가 많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그의 시는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으며, 또한 그저 그런 온화한 언어의 나열을 수납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디카시는 새로운 경계(境界)를 여는 통과의례이며, 미처 다 말하기 어려운 담화를 사진의 그림자에 또는 시의 행간에 묻어두는 발화 방식”이라고 평한다.
이처럼 요양병원에 있는 일백이 세 어머니를 시적 인식과 대상의 중심에 둔 황시언 시인의 새 디카시집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고령사회의 동시대성과 그 이면을 대면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결코 물러설 수도 간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어머니’의 사랑과 그 이름을 다시 한번 아로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