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문예운동의 기수, 천융희 시인이 디카시 발현 20년을 맞아 경남일보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에 연재한 글을 묶어 디카시 해설집 『디카시 아카이브』(도서출판작가)를 출간하였다.
잘 알다시피 저자 천융희 시인은 초창기부터 디카시 문예 운동에 참여한 시인이다. 그런 만큼 디카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다. 그는 2011년 《시사사》로 등단하였으며, 시집 『스윙바이』, 디카시집 『파노라마』등의 저서가 있다. 2019년 유등작품상, 2020년 이병주국제문학 경남문인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시와경계》 및 《디카시》 부주간을 맡고 있다.
이번에 펴낸 천융희 디카시 해설집 『디카시 아카이브』는 그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신문에 연재한 작가들의 디카시를 읽고 좋은 디카시를 선정하여 그 느낌을 기록한 해설집이다. 아카이브(Archive)란 ‘가치가 있는 기록자료를 영구히 보존하는 장소(기관)’의 뜻으로 디카시 아카이브는 ‘디카시 모음집, 기억 저장소, 고전으로 널리 읽힐, 가려 뽑은 디카시’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4파트로 나누어져 총 64편의 수록 디카시에 각각 천융희 시인의 감각적이고 명징한 해설을 덧붙였다. 그는 ‘저자의 말’에서 “본격문학으로서 디카시의 미학적 가치는 이제 100년을 향해 거침없이 간다. 확신한다”라고 쓰고 있다. 저자의 이 확신에 찬 고백이야말로 세계로 뻗어가는 K-디카시의 현재와 미래를 예견하고 가늠케 하는 말이 아닐까.
선사시대에도 부부싸움이 있었다
그때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겼다
- 강옥(수필가), 「오래된 증거」
가린다고 가려지나
덮을수록 더 환하게 드러나는 법
- 김영주(시인), 「네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한 발 뒤에서 다시 보면
온몸으로 봄을 싣고 날아가는
새 한 마리
- 리호(시인), 「투영」
책을 펼치면 강옥(수필가)의, 「오래된 증거」 , 김영주(시인)의, 「네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 리호(시인)의, 「투영」 등 수록된 작가들의 다양한 디카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해설이나 감상 방식을 통해 읽어내는 천융희 사유의 안팎을 따라가는 일도 이 책의 백미다.
천융희는 꽃의 감정을 읽어 내거나, 자아의 시선에 응고된 존재의 내밀한 무늬를 응시하거나, 빛과 어둠이 상호작용을 하여 만들어내는 우주를 포착하거나, 어느 공간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일용직 근로자들이나, 도시 취약계층이 사는 달방으로 읽어내기도 한다. 얼마나 매혹적인가.
그는 “세상은 모든 순간이며 그 순간마저도 또한 지나간다는 사실”까지 환기한다. 이제 신문연재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의 독자는 물론 국내외 모든 디카시 독자들이 천융희의 ‘디카시 아카이브’와 새롭게 만날 차례다. 그녀가 읽어주는 매혹적인 디카시와 아찔한 사랑에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