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몸짓과 생명의 시학
- 임영숙 시조집 「들판 정치」
계간 《나래시조》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임영숙 시인의 새 시조집 『들판 정치』가 작가 기획시선(Sijo Collections) 33번으로 출간되었다. 저자 임영숙 시인은 2014년 《나래시조》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풀잎의 흔들림이 내게 건너왔으니』, 『들판 정치』가 있으며, 〈나래시조 젊은시인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시의 근원을 찾아가는 내밀한 모험
이번에 펴낸 임영숙 시조집 『들판 정치』는 시조의 현대적 감각을 개성 있게 드러낸 총 79편의 가편이 수록되었다. 임영숙의 시조는 전통적인 시조의 문법을 기본으로 하지만 그 틀을 자유롭게 넘어서는 운율감을 큰 특징으로 한다. 이 운율상의 보법(步法)은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꽃과 바다와 같은 자연의 완상(玩賞)에서부터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운용되면서 우리 시조의 현대적 감각을 개성 있게 드러내고 있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이 호흡은 언뜻 정형시라고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들숨과 날숨, 밀물과 썰물처럼 자연스러운 리듬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사유와 정서를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임영숙 시인은 타자와의 교호交互작용을 통해 사랑의 일을 배우게 된다. 그의 시조는 자신의 내밀한 기억과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에서 출발해 타자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공명(共鳴)하는 일로 나아간다. 그렇게 임영숙의 시조는 하나의 소리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기울인 왼쪽 귀에 외계인이 사나 봐요.
집중하면 할수록, 조용하면 할수록
두 두 두 심장 뛰는 소리
어둠 속에 들려요
며칠을 품고 있어도 나올 생각 없는지
심장 소리 안고, 맥박 소리 달고
달팽이 이비인후과에
달팽이 의사 만나요
- 「귓속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요」 부분
시인은 갑자기 이명증(耳鳴症)이 생긴 모양이다. 며칠 동안 “왼쪽 귀”에서 “심장 소리”와 “맥박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기 시작하고 증상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내 “왼쪽 귀에 외계인”이 살고 있는 것과 같은 낯선 체험이다. 결국 시인은 “달팽이 이비인후과에/ 달팽이 의사”를 만나러 가게 되는데 이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마치 동시조와 같이 재밌는 상상력과 발랄한 문체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명증은 귓속 기관의 이상으로 생기는 병이 아니라 ‘나’ 아닌 이외의 것이 내안에 거주하면서 ‘나’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은 의미심장하다. “누구의 타전인지” 모르는, 내 안의 “동굴 속”에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모스 부호 같은 말들”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시인의 임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동굴 속”에는 “또 다른 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시는 일상어와는 다른 문법을 가지기에 내가 내 안의 다른 이질적인 목소리를 갖게 된다는 것은 곧 시인의 증표와 같다. 이명증이란 현실 세계에서는 고쳐야할 병이지만 시인에게는 시의 나랏말을, 그 방언의 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고통스럽지만 기꺼이 즐거운 증상이다. 임영숙 시인은 자기 내면의 “심장”과 “맥박”에서 솟구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스스로 몸의 리듬을, 그리고 시의 리듬을 찾는다. 그것은 시의 근원을 찾아가는 내밀한 모험이기도 하다.
각자의 울음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생의 숙명
꿈처럼 들꽃처럼 세상에 피고 지며
어릴 적 세상 밖을 걸어가신 당신이
한세상 이끌고 있다
그늘 속에 피는 꽃
- 「꽃피는 그늘」 전문
인간이 세상에 나와서 최초로 듣는 소리는 부모의 목소리일 것이다. 아이는 부모에게서 말을 배우고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다. 아마도 시인의 유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안방의 말소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척도였을 것이다. “새벽마다 두런두런 기도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잦은 기침, 어머니의 신경통”이 어린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던 듯하다. 그때 들었던 유년의 ‘소리’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평생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소리일 것이다. 시인의 몸에 새겨진 문신과 같은 언어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꿈처럼 들꽃처럼 세상에 피고 지며/ 어릴 적 세상 밖을 걸어가”셨다. 세상에는 빛과 어둠, 명암이 있고 꽃이 피고 지듯이 삶과 죽음이 서로 갈마드는 것이 우주의 이치이다. 시인은 ‘아버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억한다. “아버지 운동화 속 눅눅한 이끼 냄새/ 한평생 절뚝거리며 땀에 젖은 시간이다// 굵어진 종아리에 내력 돋는 푸른 힘줄/ 휘어진 등짐 따라 둥근 어깨 무거우면/ 불거진 핏줄을 따라 근력들이 자란다”(「천칭 저울」). “이른 아침, 아버지 풀 짐 지고 오신다/ 휜 등에 가득 담겨 환해진 논둑길이/ 기울 진 어깨에 실려/ 출렁출렁 따라온다”(「오월, 마음의 풀밭」). 쉽지 않는 삶을 살다간 아버지를 애도하는 시편들이 먹먹하다. 생이 감당하기 힘든 노동에 시달리는 육친의 이미지는 고통스럽고 애잔하다. 생生이 있는 빛의 자리에서 물러나 죽음의 자리인 “그늘 속에 피는 꽃”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암시하고 있다. ‘소리’를 가진 존재는 사라지지만 그 ‘소리’는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다. 그 ‘소리’는 “꿈처럼 들꽃처럼 세상에 피고 지”는 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노도 속 아버지의 삶/ 흙 속에 묻힌 생”(「끝나지 않는 시간」)이 세상에 남긴 것은 “울음 조각”(“울음 조각 넘나들며 서성이는 아버지”-「편경사」)이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세상과 싸우고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소리이다. “울음”은 죽음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뭇 생명들이 근원적으로 품고 있는 소리이다. ‘아버지’가 “그늘 속에 피는 꽃”이듯이 우리 도처에는 한순간에 피었다 지는 무수한 생명의 ‘꽃’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울음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생의 숙명을 타고 난다.
혹 주먹 솟아나도
잘라내지 말아줘요
지면 위로 뿌리 올려 버티고 있는 것은
무언의 남겨진 말을 외치는 까닭이죠
방어기능 상태조차 잘라내려 한다면
흔적없이 가는 길, 그 시간 기다려요
선 자리 울음 새기며
뿌리 깊이 내려요
- 「나무의 대화법」 부분
시인은 “숲속 길”에 있는 ‘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나무’가 어디가 아픈지 “깊고 작은 숨을 고르”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나무’가 그만 생장을 포기하고 스러질까 봐, 그 걱정스러운 마음을 부드럽고 간곡한 청유형의 서술어로 담아낸다. 「나무의 대화법」은 ‘나무’ 뿐만 아니라 ‘나’ 또한 피고 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의 생이 “바람에 흩어”져 사라지고 “흔적없이 가는 길”이 예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함께 피어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를 준다. 우리의 생을 쉽게 포기하지 말고 서로의 “울음”에 귀 기울이고 함께 보듬어 살아갈 것을 노래하고 있다.
어두운 그늘에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
또한 임영숙 시인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으로 나아간다.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서로가 밀어내다 떠밀려 휩쓸리고만” “사람들”(「이태원 비가(悲歌)」)과 “세월호 수학여행 길”이 “찬비 되어 내린 날”에 “동호와 정대가 맞잡은 젖은 두 손”(「사월 참척(慘慽)」)을 기억한다.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평화의 소녀상’, 그 “금이 간 석고상”을 지키기 위해 “그날의 빗속을 헤쳐/ 광장에 선 소녀들”(「기억의 시간」)의 연대를 지켜본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외면했던 힘없는 자들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일용할 양식 앞에 남루를 걸친 사람/ 어둠의 역 서성대는 외로운 그림자들”(「서성이는 사람들-수원역 무료 급식소」)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퇴근길 전철 안 사람들 사이를/ 지팡이 짚고 서성이는/ 눈먼 아이”가 “오늘도 바람결에 휘파람 날려가며/ 간절히 호소하는 기도송”(「휘파람 언어」)에 가슴 아파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밤낮없는 포탄 소리”에 “폐허 속 흔들리며// 국경선/ 꽉 끌어안고// 오열하는/ 노란 꽃”(「불안의 형국에서-해바라기」)을 바라보며 “빼앗은 자, 빼앗긴 자 서로 총을 겨누고 총소리 멈추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인 “돈바스 난민”(「밀밭 평원-우크라이나의 난민」)의 슬픔을 읽어낸다.
우리의 현실은 문명과 자본이 공모하여 온갖 착취와 개발에 몰두하는 바람에 점차 인간성이 박탈된 디스토피아의 세계로 치닫고 있다. 현대인은 “크레인/ 로봇 춤 괴성”이 들리는 “시멘트/ 계획도시”의 한복판(「도심 속 기린」)에서 살아간다. “도시 외곽”은 “공장지대”와 “굴뚝 기둥”, “시멘트/ 미세먼지”로 채워지고 사람들은 “오염된 공기 들이켜 폐 속이 타들어간다”(「탄소 발자국」). “AI로봇/ 사차원 가상현실”이 만들어낸 “홀로그램”(「허공 포옹-홀로그램」)에 중독된 사람들은 진정한 만남의 의미를 상실한 채 가짜 행복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이 엉켜있”는 “플랫폼 문어발 세상”에 놓인 “노동자”의 “하루”(「플랫폼」)는 암울하기만 하다. 임영숙 시인은 이러한 날카로운 현실 비판을 통해 자본과 문명의 속도를 쫓지 말고 존재가 가진 본연의 소리에 깊이 천착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곧 자신의 울음과 타자의 울음을 듣는 것이 생명의 회복이고 인간성의 회복이다.
임영숙 시인은 타자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생의 무게를 가늠하는 자이다. 그의 시에는 꽃과 나무와 같이 지상에서 하늘로 솟은 수직의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상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 하나가 삶의 고통을 꿋꿋이 이겨낸 존재의 현현(顯現)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포함한 뭇 생명은 있는 그대로 손쉽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각자 세상에 날 때 자기 몫으로 받은 울음을 오랜 시간 안으로 삭이고 삭이면서 비로소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들판엔 저마다의 향기로 대화하는데
포자처럼 떠도는 말, 내 귀를 간질인다
나, 이제 투표할래요
꽃, 나무, 강, 바다에게
- 「들판 정치」 부분
“들판”에 멋대로 “피고 지는 꽃들”은 “민초들의 날 샌 파동”이자 “난장(亂場)”과 같다. 그리고 “들판”에 맺힌 “열매들”은 이 무수한 “울음들”이 모여 맺힌 결실이다. “들판”에 모여있는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의 향기로 대화”를 하고 ‘나’는 그 “포자처럼 떠도는 말”에 귀 기울인다. 세상에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삶 자체가 각자의 “울음”으로 쌓아 올린 “혁명”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우리의 생은 기적이고 혁명이다. 이처럼 임영숙 시인은 존재의 슬픔과 울음을 감별한다. “마음속 중심을 찾아/ 나를 채우는 소리”(「해금」)에 집중한다. “자기만의 빛으로/ 고요의 중심에서”(「별의 예(禮)」) “울음인지 노래인지 몸속에서 튕겨 나온/ 무성한 소리가 키우는 모호한 말”(「얼룩말 노래」)을 받아 적는다. 세상에는 “바람의 결을 따라 떠도는 소리”(「백색소음-폭설이 내리는 풍경 속에 내가 있다」)들로 가득 차 있고 그 울음소리를 받아적는 것이 곧 시인의 임무이다.
차성환 시인(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 『들판 정치』 에는 세상의 꽃과 울음이 가득하다. 꽃과 울음의 시학이라 할 수 있겠다. 울음은 존재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며 바로 이 울음을 통해 존재는 성숙해지고 한 송이의 꽃으로 피어난다. 울음 없이는 꽃도 없다. 고해(苦海)와 같은 이 세상에 서로의 울음을 돌보고 보듬는다면 우리의 존재는 생이 뜨거울 때 피는 꽃처럼 내내 아름다울 것이다. 서로에게 빛나는 꽃과 울음이 될 것”이라고 평한다.
생의 비밀이 담겼을 법한 임영숙 시인의 멀고도 아득한 행간 속에서, 우리가 미처 가닿지 못한 그리움이자 마주한 적 없는 아름다운 詩의 전언을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