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달리면 안 보이고
뒤에 있어야만 보이는 것들을 찾아요!
초고속 디지털 시대,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 내야 하는 아이들이 부모님 눈에는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해요. 그러기에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도록 단단하게 훈련시키고, 남들을 앞설 때 칭찬으로 격려하고, 뒤처질 때 더 호되게 채찍질하며 아이들이 앞에서 달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지만 공부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그렇고 모두 오래도록 달려야 하는 장거리 달리기와 같아요. 마라톤처럼 오래달리기를 할 때 처음부터 전력 질주로 앞서 나가다 보면 금방 지쳐서 끝까지 달리기 힘들어요. 자신의 몸 상태에 맞춰서 꾸준히 달리는 것이 중요하지요. 게다가 함께 달리는 상대 선수를 살피며 자신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해요. 앞에서 앞만 보고 달리면 내가 어떤지조차 살필 수 없지만, 한 발짝 뒤에서 달리다 보면 사람이 보이고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나도 보이기 마련이에요. 일 등만을 향해 앞서 달리는 아이들에게, 치열하게 쉼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야만 하는 직장인에게, 아이들보다 더 발 빠르게 움직이며 경쟁하는 부모님에게 잠시 잠깐 “멈춰서” 나를 지나쳐 내 앞에 가고 있는 “사람”을 살피는 느림의 시간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거북이는 원래 빨랐다》는 앞서 달리는 것에만 집중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지 못하는 모든 이에게 잠시나마 느린 시선을 선물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느리다 못해 우화 속에서 토끼와 달리기 시합에서 늘 지기 일쑤인 거북이가 원래 빨랐다는 설정은 과학적으로라면 절대 믿기지 않지만, “선택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꽤 잘 달리던 거북이가 느린 걸음을 선택한 이유와 잘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넘쳐서 흘려버린 시간을 함께 돌아보는 과정은 내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값지게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전환점이 되어 줍니다. 작가는 달리기왕 쌩쌩거북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맨 앞에서 달리면 결승선만 보지만, 뒤에서 가면 모두를 볼 수 있으니까요.” 친구와 주변 사람들을 살피기는커녕 목표만 보고 앞서 달리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돌보고 살필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부모님과 함께 즐겁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동료를 도와 함께 힘든 일을 해내고, 가족과 함께 멋진 풍경을 눈에 담는 일 속에는 늘 ‘내’가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모든 일이 내 시간을 들여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하는 듯 보이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그들과 함께했기에 나를 돌아보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즐거움 속에서 그들의 고마움을 알고, 함께했기에 내가 얻은 행복한 시간을 깨닫게 됩니다. 잠시 멈춰서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세요. 잠시 멈춘 동안 내 옆에서 내 앞에서 가는 사람들을 둘러보세요. 흐르는 시간을 빨리 흘려보내지 말고, 그 속에 나와 내 마음을 담아 보세요.
세상에서 달리기를 가장 좋아하는
느림보 거북이를 알고 있나요?
거북이는 세상에서 달리기가 가장 좋아요. 토끼만큼 잘 달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눈만 뜨면 숲속 친구들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졸라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매번 일 등을 놓치지 뭐예요. 한눈파느라 일 등 못 했다고 “한 번 더.”, 기린에게 따라잡혀서 “한 번 더!”, 아슬아슬하게 졌다고 “한 번 더더~”. 자꾸 달리자고 조르는 거북이가 친구들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해가 질 무렵까지 열심히 달리기를 합니다. 거북이는 한 번도 일 등을 하지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해요. 한 번만 더 하면 꼭 일 등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거북이는 꼭 달리기 시합에서 이기고 싶어요.
그러다 난생처음 본 신기한 물건 덕분에 그토록 꿈꾸던 달리기왕 쌩쌩거북이 되지요. 거북이는 드디어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에서 일 등을 해요. 그 뒤로 거북이는 쉬지 않고 달렸어요. 잘 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거든요. 그 누구도 올라가 보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에 오른 달리기왕 쌩쌩거북은 정말 자신이 자랑스러웠어요. 그런데 참 이상해요. 그렇게 원하던 ‘일 등’도 했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고, 가장 높은 산에도 올랐는데 예전만큼 기쁘지 않았어요. 왜, 모든 걸 이룬 거북이는 기쁘지 않았을까요? 왜, 달리기왕 쌩쌩거북은 느릿느릿 거북이가 되었을까요? 거북이가 선택한 특별한 달리기 시합,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빨리 가야 할수록 천천히,
무거운 메시지일수록 가볍게
느슨한 마음의 소중함이 보이는 따뜻한 시간
미술을 전공하고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작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기에 멈춤과 늦춤에 대한 소중함을 온전하고 진솔하게, 더 많은 사람과 꼭 공유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빠른 삶과 느린 시선의 대조, 세상 느리다고 알려진 거북이가 원래는 빠른 동물이었다는 의미 있는 발상에 빗대어 달리기 시합이라는 소소한 놀이에 삶의 과정을 담고, 거북이가 흘려버린 일상에 관심을 두어야만 보이는 함께함의 기쁨과 고마움을 심었습니다.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는 힘든 무겁다면 무거운 주제이기에 이야기는 재미있고 발랄하게, 캐릭터는 귀엽고 친근감 있게, 장면은 밝고 생기 있게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앞서 달리는 이의 뒷모습을 보며 줄줄이 달리는 숲속 친구들의 행렬을 담은 첫 장면은 마치 무한 경쟁 초고속 시대인 지금의 우리 세상을 함축한 듯하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달리는 거북의 마음은 잊었던 기쁨의 순간으로 다가오고, 다 같이 앞을 보며 함께 달리는 숲속 친구들의 모습을 담은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 줍니다. 잠시 잊었던 주변의 소중함을 한 번쯤 돌아보며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따뜻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