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의 삶과 인도의 역사 속으로
김영언 시인의 인도 기행문 『노 프러블럼 인디아』는 시인의 감수성과 통찰이 빚어낸 책이다. 인도인의 문화와 삶을 섬세하게 읽어 내는 안목도 안목이지만, 인도에서 만난 유적을 시인의 감수성으로 표현해낸 것 역시 인도를 콘텐츠로 소비하는 경향과는 거리를 둔다. 저자는 인도 여행 중에 만난 인도인과 서슴없이 부대끼고, 흥정하고, 또 싸우고 웃는다. 그러면서 차츰 인도인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도리어 인도인을 거울삼아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미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이 세상에는 합법을 뛰어넘는 더 큰 법 같은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합법만이 합법이 아니며, 비합법이라고 반드시 비합법이 아니라는, 지극히 인도다운 관습의 논리라고나 할까. 쫓겨나던 인도인들이 남기고 간 분노에 찬 눈빛이 자꾸만 마음속에 따갑게 들어와 박혀 무언의 외침으로 우리를 일깨우고 있었다. 비합법적인 것이 몰지각한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것이 몰지각한 것이라는 것을.(50면)
이 진술은 기차 안에서 벌어진 소동을 배경으로 하는데, 소비자 권리에 길든 한국인들의 ‘합법 정신’에 대한 성찰이다. 저자는 한국의 여행자들이 인도 여행은 저렴한 여행이라는 편견에 젖어서 유럽 여행과는 달리 고자세임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물론 저자의 이런 인식은 전체 내용 중에 일부분이지만, 여행이 결국 자기에게로 가는 여정이라는 고전적인 통찰을 감안할 때 숙연한 태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유적지에서 만난 유물들에 대한 깊은 역사적 이해다. 문화재를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어째서 이렇게 존재하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묻는 점은 이 책이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일종을 인문 지리지라고 부르게 한다. 그 예로 두 군데만 들어보자.
그러고 보면, 공교롭게도 유럽인들의 인도 침탈 상징인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의 바로 옆에서 마치 그를 제압하고 있는 듯한 위용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이 건물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부도덕한 외세 자본의 횡포에 당당히 맞선 민족자본의 저항 의식의 상징이자, 나아가서는 유구한 역사를 영위해온 인도 대륙인들의 자존심 선언이었던 것이다. (24면)
세계사에 길이 남게 된 이 초호화 무덤 궁전은 페르시아 출신의 우스타드 이사를 비롯한 인도,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온 건축가들이 설계하였다. 그리고 ‘마할의 왕관’이라는 의미를 지닌 타지마할은 무려 2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2만여 명의 인부와 1000여 마리의 코끼리를 동원하고, 4,000만 루피(현재 미화 1달러는 약 40루피)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었다고 한다.(188면)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인도의 대표적인 문화재를 만나러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결국 인도인의 생활, 습관, 문화, 태도와 만나는 장면인데, 처음에는 인도인들이 이방인을 대하는 모습에 어리둥절하고 기가 막히지만 어느새 인도인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인도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노 브러블럼’이라고 외치는데, 이게 인도인 특유의 낙천성인지 아니면 자본주의 문화에 찌들지 않아서인지 그것은 확실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문제라도? 이렇게 묻는 인도인들에게 동화되는 저자의 모습은 의도치 않게 유머러스한 장면을 만들어내며 인도 여행 경험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인도의 복판에 서 있는 현장감과 생동감을 선사한다. 저자는 인도인들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노 프러블럼’이 어떤 뉘앙스인지 이해한다면 인도 여행은 성공한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인도는 결코 가난하지 않다
인도인의 삶과 인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서 만난 인도의 위대한 문화재에 대한 저자의 미적 감수성은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또한 ‘수준급’인데, 사진과 어울리는 저자의 섬세한 감상기는 유튜브 류의 인도 여행담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이는 시인의 감수성이 없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저것이 돌[石]인가 육[肉]인가?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아잔타 석굴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연화수보살 빠드마빠니와 흑인 공주 벽화가 있는 1번 석굴에서부터 인도 최대의 아름다운 열반상이 있는 26번 석굴에 이르기까지 경탄에 경탄을 연발하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 오랜 세월의 흐름이 믿어지지 않으리만치 다양하면서도 섬세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넘치는, 천장과 벽면과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들과 채색 벽화들은 말 그대로 신성한 아름다움과 엄숙함의 극치를 자아낸다.(92면)
타지마할은 동쪽, 서쪽, 남쪽에 있는 1차 출입문 중의 한 곳을 통과한 뒤, 다시 뜰의 남쪽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붉은 색 사암 정문에 들어서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정문의 천장 아치 주변에는 흰 대리석 바탕에 아름다운 꽃무늬가 아로새겨져 있고, 다시 그 둘레에는 사각형 띠 형태의 흰 대리석에 아랍어로 코란의 경구가 새겨져 있다. 대략 ‘오, 안식하는 영혼이여. 너의 주님 곁으로 돌아가 하느님으로 기뻐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하라. 내가 선택한 종들 속으로 들어와 나의 낙원으로 들라’ 정도의 의미라 한다.(184~185면)
앞부분은 아잔타 석굴에 그려진 1번 석굴 벽화 ‘연꽃을 든 보살’에 대한 것이고, 뒷부분은 이타지마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다. 물론 저자의 친절한 사진이 본문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서 독자의 감각과 느낌을 생생하게 도와준다. 이 감상의 앞과 뒤에는 그 역사적 연원을 밝혀서 인문학적인 가이드를 받는 실감을 준다. 즉 이 책은 인도인의 삶과 인도의 역사가 바탕이 된 예술작품의 감상문인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독자는 드디어 저자가 도달한 인도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와 동감을 얻게 된다. 여행은 동정이나 찬양을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듯, 자본주의적 합리성과 소비자 권리에 찌든 우리의 모습을 되비쳐주는 인도 여행은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사는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책의 말미에, 저자가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남긴 “인도는 가난하지 않았으며, 결코 가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인도에 대한 피상적인 견해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이는 인도와 인도인에 대한 존중이자 그것을 발견한 여행의 보람이기도 하다.
관찰과 묘사, 그리고 낯선 삶과 문화에 대한 사유가 담긴 전통적인 기행문 또는 여행기 대신 눈과 귀의 쾌락에 충실한 유튜브가 휩쓸고 있는 추세와 달리 김영언 시인의 『노 프러블럼 인디아-시인 김영언의 인도 기행』은 분명 묵직한 경험과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자이살메르 선셋포인트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소년(표지 사진)이 어쩌면 인도의 미래를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기우는 해를 향해 연을 날리는 인도의 소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