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마음속 어린아이를 깨우는 누에고치 요정의 마력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요정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자연의 정령, 숲속의 님프, 피터팬의 팅커벨,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 등 불가사의한 존재로서 갈래갈래 상상의 나래 속 주인공이 되었던 요정은 에스엔에스에서 아이코 작가의 ‘마유’를 만난 순간, 한없이 사랑스럽게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흰 눈가루를 뒤집어쓴 듯 온몸이 하얗고 부슬부슬한 이 인형 같은 요정은 정말 특이하게도 누에고치에서 태어났다. 누에와 누에고치에 대한 아이코 작가의 오랜 호기심과 사랑이 ‘마유’라는 캐릭터를 낳았고, 작가는 세상 어디에든 이렇게 작고 동그란 요정이 살고 있다는 믿음으로 일 년 열두 달, 매일매일 그들의 이야기를 사진 속에 담아 왔다. 이 사진 한 장이 요정을 그리워하던 순수한 동경을 단숨에 깨울 줄이야!
순백의 보슬보슬한 외양, 앙증맞게 푹 눌러쓴 조그만 빵모자, 동글동글한 체형은 보는 것만으로도 빙긋 웃음이 난다. 『오늘도 해바라기』는 이 무한 호감형 요정의 독백이 자아낸 고운 시와도 같은 그림책이다.
물기 없이 단단해진 마음에 촉촉하게 스며든 들풀 라이프
아이코 작가의 사진 속 마유 요정은 참 행복해 보인다. 봄이면 분홍빛 진달래꽃 사이에서 새초롬하게 얼굴을 파묻고, 커다란 나뭇잎 침대 위에 폭 안겨 낮잠을 자다가, 거미 친구의 도움으로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놀이를 즐긴다. 산딸기 열매를 꽉 부여잡고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가, 꽃향기에 버무린 햇살로 요기를 하고 별꽃 소금으로 이도 말끔히 닦아 본다. 때로는 시원하게 쏟아 붓는 폭포 아래서 더위를 피하고, 사락사락 내리는 눈발을 제치고 나뭇잎 썰매를 즐기기도 한다.
마유 요정의 소소한 일상은 숨 쉬듯 당연하게 바라봤던 것들에서 새록새록 경이를 발견하게 한다. 계절이 오고 또 가는 동안 우리 곁을 맴돌았던 꽃들의 시선, 바람의 온도와 감촉, 곤한 잠이 허락한 꿀맛 나는 개운함, 애벌레 친구들이 날개 달고 무사히 돌아오길 응원하는 마유 요정의 비뚤어진 데 없는 넓은 마음까지, 『오늘도 해바라기』는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로 이것이, 온종일 해바라기 곁에서 해바라기하며 햇살의 따스함을 느끼고, 알알이 맺힌 작은 열매를 보물로 여길 줄 아는 마유 요정의 소소한 들풀 라이프가 세상 어떤 부호보다 풍족해 보이는 이유일 테다.
어떤 행복을 꿈꾸시나요?
피로감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학습과 경쟁의 메커니즘 속에 피로감을 느끼고, 어른들은 사회의 틀 안에서 갖가지 피로감을 감수하고 있다. 『오늘도 해바라기』는 피로감에 젖은 이들에게 ‘행복'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다. 긴 병꽃풀밭에서 그네 타며 향기에 취해 봤냐고, 벚꽃 이불을 소복이 덮고 누워 봤냐고, 제철 완두콩을 배불리 먹어 봤냐고, 바위취꽃으로 예쁘게 치장하고 눈 감은 채 노을빛 받아 봤냐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자유롭고 풍요로움 가득한 상태가 행복일진데, 우리는 어떤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었을까. 『오늘도 해바라기』가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에고치 요정 마유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내 마음이 마유의 하얀 빛처럼 환해지던 그 순간을요.
한때 날개 달고 날아오르기를 꿈꿨던 누에였지만
고치 요정이 된 마유의 탄생 과정을 상상하며 가슴 아파하기도 했습니다.
마유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날개’에 연연해하지 않고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삽니다.
마유처럼 살고 싶은 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_윤여림 작가의 말 중에서